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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파트를 짓기 전에 계약을 통해 미리 분양받는 선분양제를 유지하고 있다. 시민들은 모델하우스를 둘러본 뒤 건설사를 믿고 아직 지어지지 않은 주택을 계약한다. 건설사는 선분양을 통해 사업 자금을 확보한다. 선분양제가 문제없이 운영된다면 모를까, 허위·과장광고와 부실시공 등 각종 폐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집으로 가는 먼 길>의 저자 이종수 회장도 이러한 문제를 직접 겪었다. 그는 2008년 경기도 고양시 덕이동 일산 파밀리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분양 당시 홍보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시행사는 제2자유로 덕이IC 설치와 단지 내 영어마을 조성 등을 홍보했지만, 덕이IC 사업은 이미 취소된 상태였고 영어마을 역시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이종수 회장은 입주자협의회장으로 선출돼 수분양자들(분양받은 사람들)과 함께 시행사와 협상을 진행하고 부실공사 문제를 감시했다. 2011년 부실시공 현장이 확인되자 수분양자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3천여명이 고양시청 앞에서 촛불집회까지 열었다. 이후 계약자들은 허위분양과 공사지연, 하자문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잔금납부와 입주를 거부하고 시행사를 상대로 각종 소송에 나섰다. 2012년 시행사와 일부 합의를 통해 입주가 이뤄졌지만, 금융기관들로 구성된 대주단의 반대로 소유권 이전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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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시행사가 파산하면서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분쟁 상대는 시행사를 넘어 금융기관과 국세청,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으로 확대됐다. 국세청은 시행사 측의 미납 세금을 분양계약자들의 잔금으로 충당하려 했다. 법원의 파산관재인은 모든 분양계약자를 상대로 개별 잔금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이종수 회장과 수분양자들은 흔들리지 않고 국세청·파산관재인의 행동에 대처하고, 여러 소송들에서 승소하며 법적우위를 확보해 나갔다.

수차례 조정과 협상 끝에 2023년에 이르러서야 입주자협의회와 파산관재인·시공사가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추가 비용 없이 소유권을 이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국 수분양자들은 분양계약 체결 후 15년, 즉 5475일 만인 2024년 아파트 소유권 등기를 마무리하며 긴 분양사기 투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소송과 협상, 갈등을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경실련은 <집으로 가는 먼 길>의 저자 이종수 회장을 만나 그 긴 투쟁의 과정과 의미를 들어보았다.

이종수 회장 경실련 방문 경실련 방문 모습. 왼쪽부터 경실련 경제정책팀 오세형 부장, 경실련 토지주택위원회 조정흔 위원장, 이종수 회장, 바틀비 출판사 조시현 대표
이종수 회장 경실련 방문경실련 방문 모습. 왼쪽부터 경실련 경제정책팀 오세형 부장, 경실련 토지주택위원회 조정흔 위원장, 이종수 회장, 바틀비 출판사 조시현 대표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무려 15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처음 시작은 '괘씸해서'였어요. 시작을 했는데 제가 한번 꽂히면 끝을 보겠다는 성향이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돈 쓰면서 하다 보니 노후 걱정도 들고, 우울증도 오고 잠도 잘 못 자기도 했었죠.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어떻게 꼼수를 부리고 하나' 생각이 나는 거죠. 결국 제가 싸움을 끌고 간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는 그 싸움이 저를 끌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 380세대가 끝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상하게 굉장히 저에 대한 신뢰가 많이 쌓여졌습니다. 설명을 제가 쉽게 잘해서 그런 것 같았어요. 법률 내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남녀노소 다르고, 성장배경과 교육수준도 다르다 보니 똑같은 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듣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모든 설명을 최대한 쉽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읽어보고, 중장년 사람들도 다 알 수 있을까 다시 풀어 써보고, 집사람에게도 읽어보게 하고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글로 공지해 놓고, 토요일에 설명하고 그랬어요. 설명을 잘하니 신뢰가 쌓이고, 또 실제로 성과들이 나오면서 결국 많은 분들이 끝까지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 이번 소송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마지막에 판사에게 편지를 쓰고 직접 연락했던 순간이 가장 결정적이었습니다. 제가 파산관재인 보고서를 보니, 지체보상금 2560억 원가량 있었는데 파산관재인이 시공사에 청구를 안 했습니다. 완전 배임행위죠. 그래서 제가 판사에게 편지를 썼어요. 우리 사정을 줄줄 쓰고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느냐, 나를 좀 만나 달라. 그리고 판사실에 전화를 했죠. 비서가 전화를 받았는데 판사를 연결해 달라 해서 통화를 했죠. 이건 분명히 배임행위고 판사님은 관리부실이라고 말했죠. 그러더니 판사가 다 조사를 해보고 내 말이 다 맞다고 봤나 봐요. 결국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시공사와 파산관재인, 수분양자 모두 합의를 보고 끝내 소유권 이전 절차가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 책에는 국세청의 압류와 법원 파산관재인의 전세대 대상 소송 등 국가가 수분양자들과 갈등하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법과 제도가 시민의 편이 아니라 돈과 권력의 편이라고 느끼셨을 것 같아요.

"사람들 모두 소장을 받았을 때는 말 그대로 '멘붕(충격)'이었죠. 저희는 파산관재인이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어요. 여러 과정에서 은행과 건설사, 국가가 얽혀 있는 구조도 확인하게 됐습니다. 특히 파산관재인이 시공사에 청구했어야 할 2560억 원 규모의 지체보상금을 청구하지 않았어요. 우리나라는 누가누가 시민들을 더 잘 속이고 더 사기를 잘 쳐서 돈을 빼먹나 라는 게임의 장 같아요."

- 분양사기에 당한 다른 시민들도 법률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가 끝까지 집중해서 내용을 이해하고 파는 것이에요.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변호사는 법률 전문가이지만 사건의 세부 내용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압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료를 검토하고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 앞으로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선분양제도 개선과 허위홍보에 대한 지자체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분양 제도는 우리나라와 중국밖에 없어요. 후분양 제도가 바람직하지만 갑자기 갈 수 없으니 단계적으로라도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도 보면 시행사가 제2자유로 덕이IC 설치와 영어마을 조성으로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지자체가 그게 허위일지 몰랐겠습니까? 지자체는 쉽게 검증할 수 있지만, 보통의 시민은 나중에야 알 수 있습니다. 지자체가 사업승인 내주기 전에 허위홍보 관련해서 확인만 해줘도 분양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실련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경실련#사기#부동산#분양#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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