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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화단 구석에서 작은 감자 몇 개를 캐냈다.
몇 달 전 집에서 먹다 남은 감자를 호기심 반, 옛날 고향 시골 텃밭에 대한 그리움 반으로 흙 속에 묻어두었다. 처음 싹을 틔우고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 이파리를 무성하게 키워낼 때만 해도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봄부터 지금까지 아침저녁 매일 물을 주면서 베란다 다른 반려식물 못지않게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베란다에 있는 다른 식물과는 달리, 감자는 자연이 흐름의 시간을 짧게 허락했다. 이제 막 여름의 시작점인데, 여름이 들어서자마자 그토록 무성하던 초록 잎들이 힘을 잃고 하나둘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몰려오는 무더움 속에서 유독 노랗게 변한 감자잎을 보면서 '이제 감자를 캐야 할 수확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베란다에서 물을 주고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화분에 있는 감자를 이제 캐야 하지 않겠냐고 먼저 말을 건넸다. 아내 역시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부부의 생각은 이렇듯 늘 같은 길을 걷는다.

▲누렇게 고개 숙인 줄기 아래로 고개를 내민 알감자들 ⓒ 김종섭
아내의 말을 듣고 곧바로 베란다로 나가 조심스레 노란 줄기째 손으로 당겼더니 단단하고 둥근 작은 감자들이 뿌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나왔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흙 묻은 알갱이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는 손맛이 짜릿했다.
송골송골 매달린 알감자 몇 개가 흙을 털고 마침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옛날 우리 부모님이 일구시던 밭처럼 넓지도 않고, 많은 수확량도 아닌 작은 감자 몇 개가 달린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마치 거대한 밭에서 수확해 내듯 온전한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커다랗고 매끈하진 않더라도, 직접 수확해 낸 온전한 감자라는 사실에 왠지 잔잔하게 뿌듯함이 차올랐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작은 모습이 마냥 커 보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감자를 바라보는데, 결실 뒤편으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 작고 소중한 감자들 앞에 문득, 자식을 낳고, 키우고, 마침내 성장시켜 부모의 의무를 끝낸 우리 부부의 지난 세월이 겹쳤다. 부모에게 자식 농사란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밭을 일구는 일과 같았다.
행여 시들까 전전긍긍하며 청춘의 에너지를 모조리 그곳에 쏟아붓는 일이 베란다에 매일 물을 주는 일과도 같았다. 그리고 오늘 캔 감자처럼, 우리 아이들도 단단하게 영글어 이제는 품을 떠나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번듯한 결실을 보았다는 기쁨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감자를 다 캐내고 텅 비어버린 화분을 마주하는 순간, 60대라는 나이가 주는 쓸쓸함이 마음을 두드렸다. 수확을 마친 뒤에 찾아오는 이 기묘한 공허함은 무엇일까.
돌아보니 내 마음의 텃밭에는 이제 더 이상 새로이 싹 틔워내고 애틋하게 가꿀 대상이 남아있지 않았다. 치열했던 의무의 시절이 끝나자, 이제는 더 이상 새로 싹 틔워가고 가꿀 수 없는 마음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것이 지금 내가 마주한 60대의 마음 텃밭이었다.
자연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이치를 배반하지 않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극히 평범한 상식이지만, 나는 오늘 베란다라는 작은 실전 현장에서 그 순리를 값진 교훈으로 생생하게 경험했다. 내가 정성을 쏟았던 자식 농사의 시절은 아름답게 끝이 났다.
저녁 식탁에는 이 작고 소중한 결실이 올라갈 예정이다. 땅속에 단단한 열매를 남겨두고 떠난 감자의 빈 화분을 바라본다. 의무로서의 농사가 끝난 빈자리에,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심고 채워야 할지 담담하게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