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수록 조문 가는 일이 많아졌다. 지난주 월요일에도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오랜 모임 동생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일요일에 받았다. 월요일 오전에 전통 놀이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출발했다.
동생의 안내로 빈소에 들어갔는데 영정 사진 속의 아버님이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니 오래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생각났다. 친정아버지는 내가 봄에 결혼하고 그해 11월 쉰두 살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다. 내 나이 스물다섯 살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셨는데 봄부터 소화가 안 된다고 하셔서 병원에 다니셨다. 주변에서 서울의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해도 여름 방학을 하고서야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하셔서 검사하셨다. 그땐 너무 늦어서 손조차 쓸 수가 없었다.
<나의 아빠 광호에게>(2026년 5월 출간)는 유보영 작가의 첫 에세이다. 아빠를 잃은 딸이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꾹꾹 눌러 쓴 글이다.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마음이 울적한 상태에서 책을 읽게 되어서인지 더 몰입 되었고, 저자의 마음이 내 마음처럼 느껴졌다.
스물한 살에 아빠를 잃고도 주변에는 밝은 모습만 보이며 살았다. 감춰진 감정을 달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 소개 중
갑작스러운 이별, 아빠를 향한 그리움

▲책표지 ⓒ 인생첫책
책 표지를 보는 순간 하얀 문으로 그 옛날 아빠 손을 잡고 걷던 어린 시절로 걸어 들어가게 했다. '우리 아빠도 딸 바보셨는데 왜 그리 일찍 돌아가셨을까?' 생각하며 잠시 추억 속으로 들어갔다가 정신을 차리고 책장을 펼쳤다.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손님들이 하나둘 빈소를 찾아왔다. 모두가 눈물을 훔치며 나를 마주했고, 어떤 분은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함께 울었다. -11쪽
저자의 아빠는 피부암으로 엄지발가락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였다. 발가락만 자르면 완치가 될 것 같았지만, 이미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어 머리를 열어 10시간이 넘는 수술을 했다. 희망을 가지고 투병 하셨지만, 40대에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 장면을 읽으며 저자의 아빠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셨는지, 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친정아버지는 간경화로 투병하시다가 52세에 집에서 돌아가셨다. 옛날에는 장례식장 문화가 자리 잡히지 않아서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이웃 분들이 오셔서 음식을 장만해 주시고 조문객도 집에서 맞이해야 했다. 그때 내 나이 스물다섯 살이었고 남동생 둘도 대학생이었다. 정말 처음 경험하는 장례식이라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인생에서 그때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저절로 눈물이 나기도 했으나 곡을 많이 해야 아버지가 좋은 곳에 간다고 해서 조문객이 올 때마다 시키는 대로 "아이고! 아이고!"하고 동생들과 곡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 발인 날은 11월이었는데 왜 그리 추웠든지, 일회용품이 없던 시절이어서 끓여간 미역국을 그릇에 담아 조문객들에게 드렸는데 국그릇에 손이 쩍쩍 달라붙었다.
저자의 아빠도 12월에 돌아가셨다. 아빠의 기일인 12월을 보내고 만든 '세 자매'라는 신년회 모임에는 다른 사람은 끼워주지 않고 엄마와 여동생, 저자 셋이서 만나 아빠를 기렸다. 첫 모임에서 셋이서 아빠가 좋아하셨던 술을 진탕 마시고 모두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며 아빠를 기리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더니 오랫동안 고여있던 슬픔이 점점 얕아졌단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아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엄마와 동생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31쪽
저자도 장녀였고 나도 장녀라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똑같은 생각을 하였다. 우리 집도 대학생이 둘이라서 한참 돈이 많이 들어갈 때였다. 한 번도 돈을 벌어보지 못했던 친정엄마가 집에서 고등학생들 하숙을 치게 되었고, 교사였던 나도 동생들 학비에 보태게 되어 남동생 둘이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였다.
저자는 맏딸로 가족을 책임지려고 하였으나 스물한 살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빠가 다니던 은행에서 직원 복지로 위로금이 나왔고, 그 돈으로 저자와 동생은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아빠가 남겨진 가족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애써주신 것 같다고 저자는 책에서 언급했다.
세상의 수많은 광호씨를 위한 위로
이 책에는 아빠의 투병기, 저자와의 에피소드 등이 가득 담겼다. 첫 장을 열었는데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스물한 살 딸에게 처음 술을 가르쳐주시며 "첫 잔은 원샷!"이 좋다는 아빠와의 추억, 아빠와 안산을 오르고, 아빠에게 '내 여자라니까' 노래를 가르쳐 주던 일, 대학에 합격했을 때 딸에게 백만 원의 용돈을 주신 아빠와의 추억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아빠가 계실 때 미처 아빠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후회도 들어있고, 아빠를 사랑한다고 더 요란법석을 떨지 못한 것도 후회된단다. 저자는 아빠에게 못다 한 말이 많아 책 말미에 '나의 아빠 광호에게' 편지를 썼다. 나도 저자처럼 착하기만 하셨던 '나의 아빠 순열 씨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우리 주변에도 가족을 위해 꿈도 포기한 광호씨, 딸들의 옷은 백화점에서 사주고 자신의 옷은 상설 할인 매장에 가서 딱 한 벌만 사는 단벌 신사 광호씨, 맛있는 것은 자식들에게 먹이고 집에 와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며 라면을 끓여 드시는 광호씨 등 세상에는 수많은 광호씨가 있다. 이런 광호씨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사셨으면 좋겠다.
이 책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뒤늦게 깨달은 고마움과 후회를 담은 책이다. 읽고 나면 마음 속에 묵직한 감동이 남는다. 책을 읽으며 세상의 많은 우리 아버지들, 각자의 광호씨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많은 분이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또한 부모님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를 바란다. 더불어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셨던 나의 아버지께도 그때는 못다 한 마음을 전해본다.
아빠, 많이 보고 싶어. 정말 진심으로.
-158쪽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영숙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