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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도망 다니던 때가 있었다. 현실이 너무나 힘들 때면, 나는 히말라야로, 지리산의 품으로 향했다. 어디든 메이지 않고 언제든 원하는 때에 떠날 수 있는 것이 자유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전에는 몰랐던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진정한 자유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걸림 없는 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영국 회고전
유영국 회고전 ⓒ 이정현

꿈과 이상을 찾아 헤매던 청춘을 지나, 마흔이 넘은 중년이 되고 나니 굳이 먼 곳을 가지 않아도 지금 여기서의 행복한 길을 찾게 된다. 그래서인지 유영국 작가의 <산은 내 안에 있다>라는 전시 제목이 너무나 와 닿았다. 마치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선명한 원색이 대비되는 작품을 보는 순간 강렬한 끌림이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전시관에서 하고 있는 전시였다. 표를 구입하려고 보니 입장권도 따로 없는 무료 전시였다. 망설일 이유도, 기다릴 이유도 없었다.

그의 추상화가 뿜어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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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등교 시킨 뒤 버스를 타고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 왠지 여행을 떠날 때처럼 마음이 설렜다. 전시장에서 가까운 시청역 10번 출구에서부터 많은 사람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었더니 나무가 우거진 길을 지나 전시장이 나왔다. 오픈 시간에 맞춰 온 사람들의 행렬이 꽤 길어 입구부터 사람들이 붐볐다. 그래도 전시 공간의 층고가 높고, 공간이 넓고 작품이 많아서 혼잡한 느낌은 없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마치 야수파의 그림들처럼 강렬한 색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생명력을 뿜어내며 피어나는 여름의 새빨간 장미처럼 진하고, 선명한 채도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찬찬히 그림들을 보다 보니, 초기 추상화가인 몬드리안이나 점·선·면을 활용한 그림으로 유명한 칸딘스키의 작품이나, 실제 유영국 작가와 오래 가깝게 지냈던 김환기 작가의 작품도 떠올랐다. "사물을 단순화해서 아주 다 없어진 다음에 새로 나타나는 것을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추상화의 특징과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낡은 소파에 쌓여있는 고뇌와 기쁨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 이정현

전시장의 마지막엔 작가의 생전 모습 어록, 가족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영상을 통해 유영국 작가가 일본 유학을 다녀와 결혼을 하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어업과 양조장 등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삶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시기가 있을 정도로 그 기간에는 거의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 이러다 평생 그림을 못 그릴까 걱정되어 울기도 했다는 일화는 무척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여전히 현실과 이상 사이, 생계와 꿈 사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갈등 속에서 고민하고, 고뇌 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갈등과 혼란을 넘어, 작가는 86세로 눈을 감기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여러 번의 수술을 했음에도 병상에서 돌아오면 바로 작업실로 향하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작품 전시장에 함께 전시되고 있는, 낡은 소파들이 결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세월의 흔적으로 닳아있고, 때가 탄 소파를 바라보다 보니 그 자리에 앉아 작품을 구상하고, 고민하고, 그림을 그렸을 작가의 모습이 저절로 상상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상의 마지막 즈음에 "창작 과정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에 나는 항상 뚫고 나갈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작품은 다음 작품을 위한 과정이고 계속적으로 작품을 해야 되는 근거가 된다"라는 작가의 말이 나왔을 때는 마치 가슴 한편에서 물감이 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말과 작품들을 통해, 바쁜 현실 속에서도 창작과 예술을 이어나갈 수 있는 힘과 영감이 내 안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산으로 올라가는 법

 유영국 작가의 작품과 소파
유영국 작가의 작품과 소파 ⓒ 이정현

유영국 작가의 자녀들은 입을 모아 '아버지는 일에 대해 종교같이 생각하셨던 분' '마치 수도자나 구도자 같은 분'이라는 표현을 했다. 또한 미술을 전공하는 딸이 사실화를 잘 그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쭤보자 "산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가지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한다.

실로 미술 안에도 회화, 조각 등 여러 분야가 있고, 회화 안에서도 너무나 다양한 화풍과 기법 등이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예술과 삶의 방식들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방향은 하나로 모아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정상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행복과 자유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평생 산을 그린 걸까. 그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작가의 말에서 그가 느꼈을 자유를 만난다.

"그림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남의 눈치 안보고 간섭을 받지 않는 자신의 세계를 살아오는 것이다. 그것이 화가의 자유이다."
전시 정보
전시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
전시 기간 : 2026년 10월 25일까지
전시 시간 : 평일(화–목) 오전 10시–오후 8시/매주 금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주말 및 공휴일 오전 10시~오후 7시
관람료 : 무료
도슨트 : 매주 화~일 오전 11시(현장 선착순 20명)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유영국#RM#서울시립미술관#7월전시#RM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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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dalia35) 내방

일상예술가로 살아가며 교육, 예술, 심리에 관한 기사를 씁니다. @school_d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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