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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 갔지?"

가방을 뒤집어도 없다. 혹시 바닥에 떨어져서 책장 아래로 굴러갔나 싶어 허리를 숙여 찾아봐도 없다. 식탁 위에도, 거실 작은 탁자 위에도 없다. 오후 4시에 약속이 있었다. 30분 전에 외출 준비를 마치고 자동차 열쇠를 가방에서 꺼내려는데 잡히질 않았다. 약속 시각은 다가오는데 찾을 길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불러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양해를 구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엔 온통 자동차 열쇠가 어디에 갔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추리하고 추리해보니 일은 그때 일어난 것 같았다. 지난 금요일(6월 26일), 친정 형제자매가 모였다. 6남매 중 맏이인 구미에 사는 언니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대구에서 받았다. 이튿날 퇴원을 앞두고 대구에 사는 남매들과 밥 한 끼를 하자며 모인 것이다.

장소도 우리 동네였다. 평상시 시장을 보거나 간편하게 외출할 때 들고 다니던 지퍼 없는 작은 손가방을 들고 나갔다. 별생각 없이 카드와 자동차 열쇠만 담긴 가방에 휴대전화만 쏙 넣고 나간 것이다. 밥을 먹은 후 카페로 이동하는 중에 차 키가 빠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갔던 식당과 카페에 전화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는 말뿐이었다. 3일이 지난 후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걸어온 동선을 거꾸로 되짚어갔다. 눈을 크게 뜨고 길 위를 샅샅이 뒤지고 벤치마다 족족 다 찾아봐도 없었다. 머리가 하얘지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봉고차내부 열쇠 가게를 옮겨놓은 듯한 차 안에 자동 기계가 열쇠를 만들고 있어요.
봉고차내부열쇠 가게를 옮겨놓은 듯한 차 안에 자동 기계가 열쇠를 만들고 있어요. ⓒ 황윤옥

내가 지금 타고 다니는 차는 경차다. 이 차에는 아들의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 원래 아들이 결혼 초기에 사서 타고 다니던 차였는데, 내가 타고 다니던 차가 몇 차례 '급발진' 사고를 겪은 적이 있었다. 그때 아들은 엄마가 다칠까 봐 걱정되었는지 주문해 놓고 기다리던 새 전기차를 취소하고 중고 전기차를 샀다. 그러고는 아들이 타던 경차를 나에게 물려주었다. 자식을 키워놓으니 이제는 자식이 엄마의 안전을 이토록 살뜰히 챙긴다. 그 애틋한 차를 받을 때부터 예비 키는 없었다.

'보이는 ARS' 말고 상담원 연결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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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차 안에 두고 문을 잠가 보험회사 긴급출동을 부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열쇠를 통째로 잃어버린 것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생각나는 건 보험회사 고객센터뿐이었다.

고객센터에 전화했더니 보이는 ARS로 번호를 누르라는 안내가 나왔다. 자동차 문을 여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열쇠를 분실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상담원 연결 번호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챗봇 상담을 눌렀더니 전화가 바로 끊겼다. 그러고는 금세 카톡으로 AI 챗봇 서비스 창이 열렸다.

"자동차 열쇠를 분실했어요."
"앗, 안내에 따라 버튼을 선택해주시거나 제시된 형태로 입력해 주세요."

챗봇은 열쇠를 분실했다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상담원 연결이 되었다면 원하는 대답을 단박에 들었을 텐데, 소통도 안 되는 챗봇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려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다음날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일이 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때 갑자기 동네에 다니던 카센터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마음이 급했던지 도통 상호가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P 카 월드'라는 전화번호를 찾았다. 얼마나 반갑던지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시계는 오후 5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카 월드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여쭤볼 게 있어서요. 제가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보험회사 전화해서 잠금장치 해제해 달라고 하세요."
"해제하고 나서 열쇠를 다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상담원 연결이 안 되어서 아예 물어볼 수도 없어요."
"일단 고객센터에 전화하시고요. 긴급출동 서비스받겠냐고 하면 위치 정보 동의하라고 나올 겁니다. 그때 동의하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거나 거부 버튼을 누르세요. 그러면 상담원으로 연결됩니다. 그렇게 해 보세요."

카센터 사장님이 알려준 대로 했더니 진짜로 번호 안내에도 없던 상담원이 짜잔 하고 연결되었다.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잠금장치를 해제해야 하고, 견인해서 열쇠 가게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견인비는 10킬로까지 무료라고 했다. 굳이 견인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다시 카센터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사장님, 고객센터에서 견인도 신청해준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견인하지 마시고요. 금방 긴급출동 기사님이 연락 올 겁니다. 그러면 '열쇠특공대'를 연결해 달라고 하세요."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보험회사 기사님께 연락이 왔다. 카센터 사장님이 알려준 대로 말했다.

"네, 고객님. 제가 열쇠특공대에 전화해서 열쇠 제작 가능한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열쇠특공대와 이야기가 잘 되었는지 출장비 포함해서 15만 원이라고 알려주었다. 다음날 볼일을 보려면 차가 꼭 필요했기에 그 금액이면 다행이다 싶어 바로 진행해 달라고 했다.

열쇠특공대의 엄청난 정체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긴급출동 기사님을 기다렸다. 그동안 덜렁대는 통에 얼마나 자주 차 문을 잠가 버렸는지 그 기사님 얼굴이 무척 낯익었다.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사신다는 것까지 기억날 정도였다. 잠금 해제는 금방 끝났지만, 열쇠를 제작하는 분을 기다려야 해서 주차장에 계속 서 있었다. 올여름 처음으로 모기들에게 혹독하게 헌혈식까지 치렀다.

20여 분이 지나자 봉고차 한 대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출장으로 와서 열쇠를 어떻게 제작할지 의문스러웠는데, 봉고차 내부를 보고 나니 의문은 단숨에 사라지고 믿음이 확 올라왔다. 저녁 식사를 하다가 나오셨다는 열쇠 사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컸다.

"예비 키도 없으신가요?"
"네."
"그럼 오늘 예비 키도 하나 더 만들어 드릴 테니 잘 가지고 있다가 쓰세요."

사장님은 이마에 전등을 달고 자동차 문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셨다. 번호를 네 방향으로 나누어 적으시더니 봉고차로 들어가셨다. 그 안에는 온갖 열쇠와 자동 열쇠 제작 기계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열쇠 가게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했다.

열쇠 사장님 열쇠 특공대 사장님이 이마에 전등을 끼우고 열쇠 번호를 맞추고 있어요.
열쇠 사장님열쇠 특공대 사장님이 이마에 전등을 끼우고 열쇠 번호를 맞추고 있어요. ⓒ 황윤옥

내 차는 2012년식이라 스마트 키가 아닌 일반 열쇠 형태이다. 리모컨을 등록할 때는 해당 자동차 회사 시스템과 연계하는 듯했다. 패드를 꺼내 이리저리 설정을 맞추는 사장님의 손길은 마치 도망치던 열쇠를 꼼짝 못 하게 붙잡는 진짜 열쇠특공대 같았다. 게다가 사장님은 그 모든 작업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꼼꼼히 기록하셨다. 자동차 보안 시스템과 연계하는 중요한 기술인 만큼 철저하게 증빙을 남기는 프로의 모습에 신뢰감이 한층 더 두터워졌다.

봉고차 내부 열쇠사장님이 패드로 리모컨을 등록하고 있어요.
봉고차 내부열쇠사장님이 패드로 리모컨을 등록하고 있어요. ⓒ 황윤옥

"걱정하지 마세요. 차 번호는 지울 겁니다."

요즘은 집마다 디지털 잠금장치를 쓰니 열쇠 가게도 많이 사라졌다고 사장님은 씁쓸하게 웃으셨다. 그래도 26년을 열쇠공으로 일해오셨다는 70대 사장님의 손길은 그 어떤 첨단 기계보다 정교하고 완벽했다.

뜻밖의 소동 덕분에 출장 열쇠 서비스라는 신세계를 알게 되었고, ARS의 두꺼운 벽을 넘는 방법도 배웠다. 물론 가장 큰 수확은 내 덜렁거림을 되돌아보며 가방 속 아들이 준 자동차 열쇠를 한 번 더 만지작거리고 확인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자동차열쇠제작출장#열쇠특공대#AI챗봇#보험회사#상담원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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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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