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의 로스앤젤레스(LA) 국제공항 근처에서 이 글을 쓴다. 6월 29일 저녁 비행기로 귀국할 예정이고 21박 23일의 북중미 월드컵 현지 원정을 마무리하기 직전이다.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글도 아니고 국가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대한민국 축구를 응원하는 팬의 입장에서 원정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전히 대한민국 축구를 응원하는 서포터의 역할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주변 숙소에서 바라본 하늘이 붉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마음이 정처 없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주변 숙소에서 바라본 하늘이 붉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마음이 정처 없다. ⓒ 이창희

나의 첫 월드컵 직관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축구 팬으로서 월드컵 4강은 믿을 수 없는 성과였고, 내게 그 이후의 월드컵을 쫓아다니게 하는 아주 중요한 시발점이었다. 그렇게 나는 2006년의 독일, 2014년의 브라질, 2018년의 러시아와 2022년의 카타르에 있었고,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힘들게 헤치고 오늘까지 왔다. 원정이란 게 매번 험난했지만, 이번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이다. 이유를 알아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속상하다.

돌이켜보면 이번 월드컵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월드컵 참여 주체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대한축구협회이기 때문에, 축구협회 내부 분란은 월드컵과 분리되기 어려웠다. 한마음으로 신뢰를 보낼 수 없던 상황에서도 내가 보내고 싶었던 응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뛰는 선수들을 향해 있었다.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그라운드에서 상대국을 응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원정 준비는 느리긴 했지만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4년에 한 번 월드컵을 준비하며 만나는 친구들은 원정 여행을 위한 숙소를 정하고 이동 편을 미리미리 준비했다. 다른 월드컵과는 다르게 '유동 가격제(Dynamic Pricing)'와 티켓 재판매 시스템이 활발하게 연동된 이번 대회는 티켓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마저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붉은 악마의 도움으로 간신히 대한민국 예선 세 경기와 32강의 조건부 티켓까지 손에 넣었다.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처음으로 방문하는 멕시코를 즐기는 일만 남아 있었다.

멕시코의 치안 불안과 대표팀 경기력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출국일은 긴박하게 다가왔다. 6월 11일 첫 경기를 위해 6월 9일에 출국했고, 미국 LA를 거쳐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도착하니 어두워져 있었다. 아직 대회가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먼 길을 돌아온 여행객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의 첫 숙소에도 대한민국 곳곳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월드컵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렇게 만나고 나니 남아 있던 걱정은 사라지고 첫 경기를 기대하며 쿵쿵대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응원단이었지만, 첫 경기 승리의 환희는 거부할 수 없었다. 여행에 대한 불안도, 축구협회나 감독에 대한 불만도 순식간에 잊게 되는 순간.
얼마 되지 않은 응원단이었지만, 첫 경기 승리의 환희는 거부할 수 없었다. 여행에 대한 불안도, 축구협회나 감독에 대한 불만도 순식간에 잊게 되는 순간. ⓒ 이창희

첫 경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경기장을 찾은 붉은 악마의 숫자는 실망스러웠지만, 다양한 스폰서 티켓과 국제축구연맹(FIFA)의 티켓 구하기 난관을 뚫어낸 관중들이 군데군데 붉은 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중석은 멕시코 유니폼을 입은 현지 관중들이었지만, K-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그들의 응원도 대한민국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월드컵에서 16년 만에 값진 승리를 거머쥐었다. 선수도 응원단도 절대 멈추지 않았고 끝내 이겼다. 수많은 걱정을 한 번에 떨쳐낼 수 있을 만큼의 놀라운 환희였다. 나의 북중미 월드컵도 순식간에 찬란해졌다.

친구들과 함께 과달라하라의 풍부한 식재료로 만들어진 타코를 충분히 즐겼고,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멕시코 최고 특산품인 테킬라 산지도 방문했다. 테킬라 투어를 즐길 때는 공교롭게도 패배한 체코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일행들과 함께하며, 조금은 거만하게 승자의 여유까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너무 방정맞은 거만함이었지만.

월드컵에서는 불가능한 기대

 멕시코 서부 차팔라 호수 근처 아이힉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뛰쳐나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멕시코인들의 환대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멕시코 서부 차팔라 호수 근처 아이힉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뛰쳐나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멕시코인들의 환대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이창희

원정은 순조로웠다, 두 번째 경기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두 번째 경기까지 1주일을 즐기면서 우리는 점점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혹시라도 2차전에서 홈팀인 멕시코에 무승부 이상의 결과를 얻는다면, 16강까지의 모든 경기가 멕시코시티에서 열릴 수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미국에 대한 불만으로, 미국에서 열리는 경기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일정이었다. 물론 홈팀을 홈에서, 그것도 1600미터 이상 고지대에서 이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2차전 전반까지는 기대가 현실이 될 거라는 믿음마저 갖게 했다.

AD
하지만 홈에서 멕시코 관중이 내뿜는 압박은 굉장했다. 붉은 악마 응원단은 1차전보다 많아지기는 했지만 2층 꼭대기에 보이지 않을 만큼 적은 숫자였다. 4만 7천 명이 들어올 수 있는 과달라하라의 경기장은 4만 5천여 명의 멕시코 관중이 내뿜는 열기로 뜨거웠다. 그래도 대한민국 대표팀도 응원단도 주눅 들지 않았고, 몇 차례의 결정적인 찬스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마저 갖게 했다. 하지만 골키퍼가 놓쳐버린 공에 끝까지 집중했던, 멕시코의 첫 골이 터지자마자 분위기는 급하게 반전되었다.

이후 2주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그 순간 경기장의 진동을 떠올리면 두렵다. 4만 5천여 관중들은 경기장이 무너져라 뛰었고 승리를 외쳤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진동은 서로가 공명이라도 한 듯, 경기장을 날려버릴 만큼 증폭되었다. 우리는 채 2천 명이 안 되었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그들의 열기를 뚫고 나갈 수 없이 미약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멕시코시티에서의 본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꿈이었는지 깨달은 것이. 갑자기 위장이 부글거렸고 토할 것 같았다. 월드컵이 더 이상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 인식은 몸에도 영향을 미쳤다.

원정 친구들은 2차전 후 새로운 희망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약체로 여겨졌던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3차전에서 지지만 않는다면, 본선은 K-타운의 최전선인 LA에서 열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시작했다. 이미 원정을 결심한 이상, 대한민국팀을 응원하는 것은 멈출 수 없으니까 말이다. 미국 월드컵을 보이콧하던 나마저도, 'LA는 괜찮아. 거긴 한국이잖아'하며 엉뚱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미국의 친구에게 연락해 LA 부모님 댁에 신세를 지기로 하면서 차근차근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대가 아니라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기대가 크면 배신감도 크다. 배신감이 크면 절망하게 되고 복수심마저 생긴다. 3차전의 이해할 수 없는 경기력은 복수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이기려는 목적으로 뛰고 있던 남아공을 상대하며 우리 팀은 비겨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동네 축구에선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최고의 선수들이 겨루는 월드컵에서는 불가능한 기대였다.

 멕시코 몬테레이의 새로 지은 경기장에 수많은 관중이 몰려들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대감을 다 버리지는 못했다.
멕시코 몬테레이의 새로 지은 경기장에 수많은 관중이 몰려들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대감을 다 버리지는 못했다. ⓒ 이창희

제3경기가 열리는 멕시코 몬테레이에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해서인지, 관중석이 붉은 유니폼으로 빼곡하게 채워졌고, 한국에 호의적인 멕시코 관중들이 더해져 홈경기 못지않은 뜨거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루한 경기는 멕시코 관중들의 야유를 불러내었고, 한국이 1 대 0으로 밀리는 후반 20분 동안 경기장을 채운 멕시코 관중들의 관심은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자국팀의 승리로 옮겨져 버렸다. 더 이상 대한민국은 몬테레이 스타디움의 주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결국 경기에서도 응원에서도 처참하게 져버렸다. LA에서 우리 팀을 기다리던 교민들의 기대감도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원정단의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대한민국을 응원하던 친구들은 32강 진출이 최종 결정되는 27일까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월드컵 난민' 신세였다. 여행이라면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면 될 것이지만, 우리는 대표팀의 경기를 쫓아야 하는 신세 아닌가? 23일 경기 이후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LA로 이동해 32강이 열리는 도시가 결정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고, 나는 친구에게 잠시 몸을 의탁하기로 했다. 원정을 떠난 친구들도 대표팀에 대한 실망은 컸지만, 32강을 응원하는 것이 대표팀에 지킬 수 있는 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27일 콩고민주공화국이 우즈베키스탄을 이겨버리면서 우리의 32강 진출은 좌절되었다. 더 이상 월드컵 난민의 지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젠 32강 진출이 좌절된 대한민국 월드컵 원정 여행자의 신분일 뿐이다. 선택도 단순해졌다. 7월 4일까지 휴가를 냈으니 남은 기간 여행을 즐기거나 아니면 돌아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마음이란 게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여행도 내키지 않고 돌아가겠다 맘먹어지지도 않는다. 30년 넘은 축구 팬의 입장에서 처참하게 비난받고 있을 대표팀을 견디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아무 일 없는 듯 지금을 즐기는 것도 되지 않는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나도 대한민국 월드컵의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 축구 응원하는 모두의 관심 필요

 두 번째 경기 직전 멕시코 과달라하라 시민들이 뜨개질로 준비해 준 태극기 아래에서 몇백 장의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기대감이 컸다.
두 번째 경기 직전 멕시코 과달라하라 시민들이 뜨개질로 준비해 준 태극기 아래에서 몇백 장의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기대감이 컸다. ⓒ 이창희

많은 것들이 실망스러웠던 2026년 월드컵 원정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동질감으로 함께하며 응원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이렇게 비난만 하며 놓아버리는 것도 안타깝다. 지금의 세상에서 대한민국을 함께 외치는 일이 월드컵만큼 쉬운 것도 없지 않은가? 폭풍 비난으로 축구를 버리는 것은 가장 손쉬울 수 있는 선택이지만,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내기를 원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더 자랑스러워질 수 있고,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시간이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오랫동안 방치한 축구 시스템이라는 것에 고쳐야 할 것이 한두 가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가 감독 한 사람이 어정쩡하게 물러난다고 해결되는 것은 더욱더 아닐 것이다. 대통령도 나선 마당에 이번에는 제대로 한 번 해결하겠다 마음먹으면 어떨까?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얽혀있어 쉽지 않겠지만 결심하면 못 할 것은 아니다.

축구협회가 제대로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 동작하도록 바꿔보자. 모든 문제가 그렇듯, 이것은 축구계 종사자들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대한민국 축구를 응원하는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그 관심을 여기서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비난에서 한 발짝 더 나가, 관심으로 방향을 바꿔주기를 말이다. 그래야 지금처럼 비참한 마음으로 대륙을 떠도는 신세가 더 이상은 되풀이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제발, 이번엔 그러기를 바란다.

원정 마지막 날, 창밖으로 보이는 LA 하늘이 흐리다. 지하철을 타고 K-타운의 순두부찌개라도 먹어야겠다. 싸움이든 관심이든, 일단 먹고 힘을 내야 하니까. 대한민국 파이팅, 한국 축구 파이팅!

#2026북중미월드컵#월드컵원정여행#축구팬의입장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2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