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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가 열렸다. 한 산업의 부상 뒤로 다른 산업이 붕괴하는 시기가 실시간으로 닥쳐온다. 보이지 않는 칸막이로 나눠진 대중이란 뭉뚱그려진 집단이 인식하지 못하는 새, 수많은 애니메이터가, 광고 산업 종사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제는 다음 차례다. 2026년 6월, 혁신이란 이름으로 불어닥친 또 한 줄기 칼바람이 한 산업 부문을 강타했다. 바로 운송업이다.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펩시코(펩시) 소속 무인트럭 35대가 공장과 창고, 소매점까지 자사 제품을 운송하는 일에 전격 투입된 사실이 보도됐다. 인간 운전자가 필요 없는 무인트럭이 자율주행을 통해 운송에 나선 것이다.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자율주행 단계 '레벨4', 즉 인간의 주시 없이도 항시적인 자율주행 및 자동제어로 100% 무인 운행을 구현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개별 차량은 물론 시스템조차 인간 통제가 필요치 않는 레벨5를 제하면 가장 높은 단계다. 펩시코 사례가 성공으로 돌아가면 미국, 나아가 전 세계 운송업은 일대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전 세계에서도 존재감 강하기로 유명한 미국 트럭운전자들이 십 수 년 후에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으리라 내다보는 이는 채 한 줌이 되지 않는다.

태평양 건너 편의 일인 것 같은가? 이달 한국에서도 전격적인 자율주행이 첫 발을 뗐다.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려는 정부의 정책적 주도 아래 서울부터 진천까지 112km에 이르는 고속도로 구간에서 무인 화물운송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서울진천 간 고속도로 외에도 전주와 강릉, 대구 등에서 자율주행 화물운송을 허가할 방침이다. 미국과 달리 올해까지는 사람이 운전석에 탑승하긴 하는 상태로 자율주행이 시작되지만 실제 개입은 않는 사실상의 레벨4단계에 해당한다. 한반도 남쪽 절반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주행에서 시속 90km까지 유상 화물운송이 허가된 사례로, 완전 대체 또한 시간문제로 보인다.

디지털은 운명이다 책 표지
디지털은 운명이다책 표지 ⓒ 아름드리

변화하는 시대를 대하는 모범적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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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은 운명이다>는 급변하는 시대와 마주해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자세를 보여준다. 기술혁신이 불러올 문명의 미래상을 낙관적으로 신뢰하며, 기술격차에 낙오되지 않고 변화하는 흐름을 따라잡을 의지를 진작하는 것이다.

저자는 숀 두브라박, CTA(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미국소비자기술협회)의 전신인 CEA(Consumer Electronics Association·미국가전협회) 수석 경제학자다. CEA는 한국 주요 언론도 앞다퉈 찾는 세계적 권위의 기술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의 주최사다. 두브라박은 협회장인 게리 샤피로와 함께 이 행사가 단순히 가전제품 박람회를 넘어 문명을 혁신하는 아이디어와 기술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담당했다. 오늘날까지 로봇이며 각종 AI기술과 관련해 언론에서 그 이름을 종종 보게 되는 건 단순히 경제학자에 머무르지 않고 몸담은 조직이 변화하는 미래상과 경향을 진단하고 그에 기여하도록 이끌어온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일 테다.

<디지털은 운명이다>는 두브라박의 역작이다. 출간 직후 미국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세계 여러나라에 번역돼 소개됐으나 한국에선 별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바라보자니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제와 문제의식이야말로 진실로 집중해 다루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닥쳐온 흐름 앞에서 떠밀리듯 변화를 강요받고 있는 오늘의 상황이 책의 진단과 문제의식, 또 마땅히 알아야 하지만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는 지식의 가치를 도드라지게 하는 때문이다.

원제 'Digital Destiny'를 직역한 제목 '디지털은 운명이다'가 곧 책의 주제다. 디지털은 운명, 곧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책이 쓰인 10년 전에도 아직 그 변화의 파고가 충분히 닥치지 않았단 게 저자의 분석이다. 돌아보자면 참으로 옳은 분석이지만 당대엔 도리어 코웃음 치는 이가 많았을 수밖에 없는 얘기다.

뒤처졌다 여겨졌던 이 책의 반전

왜 아닐까. 디지털의 반대는 아날로그다. 10년 전이면 시공간에 실재하는 자연신호인 아날로그를 완전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로 바꾸는 흐름이 벌써 20년 쯤 진행된 때다. 대부분의 영화가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찍어 상영되고, 집집마다 브라운관이 아닌 디지털TV가 놓여 경쟁하던 시절이다. 1가구 1컴퓨터도 옛말, 노트북과 스마트폰, 태블릿 보급으로 사람마다 여러 대의 컴퓨터를 가진 시절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디지털의 진짜 변혁이 오지 않았다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처럼 느껴졌을 수 있겠다. 한국서 제법 깨었다는 이들조차 때늦은 책이 아니냐고 웃어넘긴 이가 적잖았는데, 바로 그와 같은 이들의 뒤늦은 인식을 깨부수는 데 이 책의 효험이 있는 것이다.

책은 디지털의 역사를 소개하는 걸 시작으로, 폭증하는 데이터와 맞물려 디지털이 갖게 될 힘과 효과를 비춘다. 이 책이 가진 여러 미덕 중 하나는 변화하는 시대 위에 살면서도 제 시대가 터 잡고 있는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수 대중의 현실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 있다. 실제 급속히 발달하는 기술이 두 가지 측면에서 대중을 낙오케 하는 것이 시대적 문제로 떠오른 게 현실이다. 하나는 기술활용의 격차로, 새로운 기기며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디지털 문맹'이 늘어나 사회적 비용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둘째는 더 근본적으로, 기술지식의 격차다. 디지털이며 인터넷, 데이터, 트랜지스터나 반도체와 같은 말은 들어보았으나 그것이 진짜로 무얼 뜻하는지, 어떻게 기능하고 어떤 효과를 발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해 큰 변화의 흐름 앞에 무방비할 뿐더러 최소한의 영향력조차 갖지 못하도록 한다. 나는 이 시대 한국사회에 그와 같은 이들이 거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라이프니츠가 최초로 기계식 계산기를 위해 2진법을 고안한 게 4세기도 훨씬 더 전의 일이다. 그동안 모든 것을 0과 1로 변환하는 디지털은 실리콘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전기전자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의 표준으로 자리했다. 아날로그 세계가 이룩할 수 없었던 통합과 확산이 디지털을 통해 가능해졌다. 디지털 위에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혁명보다도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내는 변혁이 실시간으로 쓰이고 있는 실황을 책은 역사적 보폭으로 거닐며 독자 앞에 펼쳐낸다. 폭증하는 데이터와 갈수록 무력해지는 검색엔진들, 데이터를 다루는 새로운 기술적 접근과 그로부터 펼쳐질 각 분야의 미래상이 하나하나 실현되는 모습이 놀랍기까지 하다.

119만 명의 사망자란 명분, 노동의 증발이란 위협

특히 흥미로운 것은 두 부문, 자율주행과 원격의료로 표현할 수 있는 항목들이다. 급격히 발달한 센서 등의 기술이, 또 기술을 지원하는 경제성이 두 가지 부문을 반대를 무력화하며 변혁하게 되는지를 서술한다. 압도적이라 해도 좋을 데이터가 효과적으로 분류되고 처리되는 디지털 시스템 아래 자율주행을 가능케 하는 과정은 그가 내다본 것과 꼭 그대로의 속도, 또 정도로 현실화되고 있다. 불필요한 정보의 생성과 정보침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매년 백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위험을 해소할 요구가 훨씬 더 큰 것이 사실이다. 택시기사며 트럭기사 등 일자리를 잃을 위협에 놓인 이들의 저항이 무력할 밖에 없단 것을 책은 아프게 지적한다.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급속한 기술발전 아래 불행히도 선택권조차 갖지 못할 국가와 지자체, 또 개인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 선택의 기회를 갖는다 해도 필요한 충분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이는 드물다. 기술 앞에 낙관할 것이냐, 위험을 과장할 것이냐 하고 책은 질문한다.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시각에서 살피자면 기술발전이 가져올 편익이 상실보다 훨씬 더 크다는 책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무조건적 저항보다도 대중이 기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달라질 사회에 마찰 없이 적응하도록 이끄는 일이 긴요하다는 입장에도 동의한다.

다만 책이 놓친 가치가 있지는 않느냐고 되묻게 된다. 기술발전과 떨어뜨려 볼 수 없는 환경파괴와 기후붕괴, 또 세계적 불평등 같은 문제 말이다. 데이터센터를 식히기 위해 드는 전력과 물부터, 이를 두고 발생하는 갈등이 국가 간, 또 국가 내에 전에 없던 위기를 발생시키고 있다. 또한 한 순간 갑자기 직업과 벌이를 잃고 만 사람들이 곧장 다른 업으로 이동할 만큼의 역량과 정서를 가지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이 운명이라면 그 운명은 과연 아름다운가. 어떤 이는 그 운명 앞에 저항하려 하지 않겠는가. 디지털이 불러올 데이터 혁명이란 운명이 낙오케 하고 핍박하는 것들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이 끝까지 지켜야 할 자세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 책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은 시각에서조차 긴요한 지식과 지혜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는 점일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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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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