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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암 대성계곡의 맑은 물이 바위를 깎아 만든 포트홀(바위구멍). 최치원이 귀를 씻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명소다.
세이암대성계곡의 맑은 물이 바위를 깎아 만든 포트홀(바위구멍). 최치원이 귀를 씻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명소다. ⓒ 문운주

(이전 기사 : 지리산에 이런 곳이? 신선의 말이 남긴 발자국)

청학동 테마길의 여운을 뒤로 하고, 다음 여정은 신라 말 혼란한 세상을 떠나 지리산에 은거한 고운 최치원의 흔적과 천년고찰 칠불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범왕리 푸조나무와 세이암, 칠불사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자연과 역사, 전설과 수행이 한데 어우러진 지리산의 깊은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지난 6월 25일 오후 3시, 화개로를 따라 달리다 신흥1교에서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 방면으로 접어들자 대성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개천에서 가장 긴 계곡인 대성계곡은 여러 골짜기의 물줄기가 모여 풍부한 수량을 이루고,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맑은 계곡물이 어우러져 사계절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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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계곡 상류에는 높이 약 100m의 대성폭포와 영신대가 자리해 웅장한 절경을 이룬다. 예로부터 기도처로 이용되며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 왔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희생이 있었던 비극의 역사를 함께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대성계곡을 따라 300여m를 걷다 보면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에 닿는다. 교문 앞에는 경상남도 자연유산인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가 묵묵히 서 있다. 거대한 줄기와 넓게 펼쳐진 가지는 오랜 세월 계곡과 마을,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지켜본 듯 듬직한 풍경을 만든다.

푸조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푸조나무로 알려져 있다. 수령은 약 500년, 높이 25m, 둘레 6.25m에 이르며, 사방으로 펼쳐진 웅장한 가지가 마을을 넉넉히 감싸 안는다.
푸조나무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푸조나무로 알려져 있다. 수령은 약 500년, 높이 25m, 둘레 6.25m에 이르며, 사방으로 펼쳐진 웅장한 가지가 마을을 넉넉히 감싸 안는다. ⓒ 문운주

혼란한 세상을 떠나 지리산으로 향하던 최치원이 이곳에 지팡이를 꽂고 떠났는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돋아 오늘의 푸조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는 떠나며 "이 나무가 살아 있는 한 나도 살아 있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나 또한 죽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푸조나무는 오늘도 푸른 잎을 틔우며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무에 깃든 최치원의 이야기도 천 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까지 이어진다. 그의 흔적은 푸조나무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대성계곡에는 물길이 오랜 세월 빚어낸 포트홀과 '세이암(洗耳巖)'이 남아 있다.

'세이암(洗耳巖)'은 최치원이 이곳에서 세속의 번잡한 소리를 들은 귀를 씻은 뒤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지금도 세이암은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새로운 삶을 찾고자 했던 최치원의 정신을 전하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일곱 왕자가 부처가 된 절, 칠불사

칠불사 대성계곡을 지나 마주한 칠불사.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전설이 깃든 이곳은 화려함보다 고요함이 먼저 다가오는 지리산의 대표 수행도량이다.
칠불사대성계곡을 지나 마주한 칠불사.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전설이 깃든 이곳은 화려함보다 고요함이 먼저 다가오는 지리산의 대표 수행도량이다. ⓒ 문운주

칠불사 영지 허황옥 왕비가 수행 중인 일곱 왕자를 그리워하며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연못이다. 전설에 따르면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이 이 물에 비쳤다고 한다.
칠불사 영지허황옥 왕비가 수행 중인 일곱 왕자를 그리워하며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연못이다. 전설에 따르면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이 이 물에 비쳤다고 한다. ⓒ 문운주

대성계곡의 맑은 물과 세이암에 깃든 최치원의 흔적을 뒤로 하고 발걸음은 칠불사로 향한다. 지리산 반야봉 아래 자리한 칠불사는 화려함보다 고요함이 먼저 다가오는 천년 수행도량이다. 이곳은 금관가야 김수로왕과 허황옥 왕비의 일곱 왕자가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해 모두 성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절 이름인 칠불사(七佛寺) 또한 '일곱 부처가 난 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허황옥은 수행 중인 아들들을 만나지 못한 채 절 아래 연못을 팠고, 그곳에 성불한 일곱 왕자의 모습이 비쳤다고 한다. 이 연못이 오늘날 칠불사의 영지(影池)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전설을 품은 칠불사는 화려한 장엄보다 깊은 고요가 먼저 다가오는 절이었다.

조선 후기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도 칠불사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칠불암에 머물며 참선과 차를 함께 닦았고, 지리산의 맑은 물과 고요한 숲 속에서 선다일여(禪茶一如)의 정신을 실천했다. 칠불사에서의 수행은 우리 차 문화와 선불교가 만나는 중요한 발자취로 전해진다.

▲ 칠불사 아자방(亞字房). 한 번 불을 지피면 오랫동안 온기가 이어지는 독특한 온돌 수행공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불사의 대표적인 수행문화 유산이다.
▲ 칠불사 아자방(亞字房).한 번 불을 지피면 오랫동안 온기가 이어지는 독특한 온돌 수행공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불사의 대표적인 수행문화 유산이다. ⓒ 문운주

▲ 초록 숲이 감싼 칠불사 경내 말없이 포행하는 스님의 발걸음이 천년고찰의 적막을 더욱 깊게 한다. 자연과 수행이 하나 되는 지리산의 고요가 경내에 잔잔히 스며든다
▲ 초록 숲이 감싼 칠불사 경내말없이 포행하는 스님의 발걸음이 천년고찰의 적막을 더욱 깊게 한다. 자연과 수행이 하나 되는 지리산의 고요가 경내에 잔잔히 스며든다 ⓒ 문운주

칠불사에는 독특한 온돌 수행 공간인 아자방(亞字房) 이 남아 있다. 한 번 불을 지피면 오랫동안 온기가 유지되는 이곳은 겨울철에도 수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든 선방이다. 한국 불교 수행문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초의선사 역시 1828년 이곳에서 정진하는 여가에 <동다송>의 기초를 다진 것으로 전해진다.

몇 분의 스님이 경내를 조용히 포행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행은 참선 후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천천히 걸으며 수행하는 불교의 수행법이다. 말없이 이어지는 발걸음은 수행 그 자체였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숲을 스치는 바람은 칠불사의 적막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지리산#청학동#범왕리푸조나무#세이암#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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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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