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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6.27 14:47최종 업데이트 26.06.27 14:47

어둠 속에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덤으로 사는 인생 여적(餘滴)] 제53화: 저녁 산책길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책길, 원주 치악산 밑 옛 중앙선 철로가 이전하여 지금은 산책 길로 변했다.
산책길,원주 치악산 밑 옛 중앙선 철로가 이전하여 지금은 산책 길로 변했다. ⓒ 박도

1.
저렇게 많은 별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이번 주는 참으로 힘든 한 주였다. 지난 화요일(23일)은 오래전 고향 후배(박준홍)으로부터 귀한 행사에 초대 받고 일찌감치 열차표를 예매해 두었다.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열차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려고 하다가 시간이 넉넉하기에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곧 전광판에는 버스가 5분 뒤에 도착한다는 문자가 떴다. 그 순간 이른 아침에 일어나 휴대용 다기에 채워둔 차를 빠트린 게 떠올랐다. 다시 집으로 가려다가 '그래, 편의점도 장사가 돼야지' 라는 말을 혼잣말처럼 하고는 정류장 옆 편의점에 가서 생수 한 병을 사서 가방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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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역에서 오전 11시 1분에 출발하는 KTX 열차를 탔다. 열차가 정규 정거역도 아닌 도중 양평역에 섰다. 기관사는 "팔당 ~ 덕소 사이의 정전 사고 여파로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친절한 안내 방송을 했다. 곧 출발할 줄 알았더니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열차가 움직였다. 그날 행사는 오후 1시 30분이기에 그래도 바로 가면 되는데, 시간이 빠듯하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와는 달리 점심은 행사 후 해결하기로 했다. 객실 내에서 차창 밖 여름 풍경을 완상(玩賞) 하면서 상경하는데 KTX 열차가 정규 정차역도 아닌 팔당역에 또 섰다.

기관사의 멘트다. 정전 사고로 여러 상행 열차가 팔당역에서 대기 중, 순차적으로 출발하기에 기다린다고. 곧 출발할 줄 알았는데, 30분이 지난 후에야 출발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후배에게 정전 사고로 늦어진다는 문자를 보냈다.

30분이나 정차 후 출발한 열차는 계속 쉬엄쉬엄 달리면서 도중에 한두 번 더 정차하더니 두 시간이나 늦게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하차 후 급히 서둘러 지하철을 타려는데 주머니에 손 전화가 없었다. 손 전화기에는 돌아가는 열차표를 비롯하여 여러 전화번호와 결제 등 내 필요한 모든 정보와 돈이 다 들어있지 않은가. 되새겨보니 손 전화기에 충전한다고 열차 내 충전기에 꽂고는 그대로 하차한 실수였다. 그 순간 아찔한 생각에 곧장 청량리역 플랫폼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내가 타고 온 열차는 그새 차고지로 떠난 뒤였다.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낙담을 하자 안동행 무궁화호 열차 기관사가 영문을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자 친절하게도 청량리 역무실로 전화한 뒤 , 곧 역무원이 올 테니 그분에게 부탁하란다. 플랫폼에서 조금 기다리자 역무원이 나타나 역무실로 친절히 안내했다. 그러면서 오후 2시 30분 이후에 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를 묻는데, 내 언저리 친지 전화번호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70년 전 부산의 집 전화번호(4815)는 여태까지 기억하면서도 요즘의 가족 친지 전화번호는 먹통이었다. 그 까닭은 그 번호들이 모두 내 손전화기에 저장돼 있기에 굳이 기억할 필요도 그 전화번호 버튼을 일일이 누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행사장에 가려다가 도착해도 이미 두 시간 이상 늦었기에 어쩌면 행사가 끝났을 것 같았다. 그날 다음 약속도 손 전화가 없으면 불통이라 다시 청량리 역무실로 되돌아온 뒤 간단히 요기를 한 다음 두어 시간 뒤 역무실로 가자 담당 직원이 비밀번호를 확인한 다음 내 손 전화를 돌려주었다.

곧장 후배에게 그런 사정과 함께 불참을 통보한 뒤 다음 볼일을 차질 없이 마치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날 밤, 하루 일과를 반성하는데, 하루 종일 정신없이 헤매던 가운데도 다행히 신체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리하여 밤하늘을 향해 "사랑의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2.
그 다음 날(24일)은 바깥 출입도 삼간 채 집안에서만 지냈다. 그런 가운데 나의 오랜 단골인 치악산 들머리 산채 밥집 사장님이 얼굴 잊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점심시간에 맞춰 치악산 구룡사 어귀로 갔다. 시내버스에서 내리려는데 버스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아마 '가방 주머니나 나의 다른 주머니에 있을 테다'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버스에서 내려 밥집에 도착한 뒤, 가방과 모든 주머니를 다 뒤져도 버스 카드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점심상도 밀친 채 도로로 나와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순간 갈증이 몹시 났다. 아마도 카드 분실로 열을 몹시 받아 그런 모양이었다. 그래서 밥집으로 가서 물을 마시려는 데 그 순간 시내버스가 후딱 지나갔다. '아뿔싸!' 그리하여 밥 집 사장님을 졸라 그 집 차로 출발한 버스를 뒤쫓는데 그날 따라 신호등마다 걸리는 데다가 도중 정류소에 손님이 없는 탓으로 버스는 거의 논스톱으로 달려 시내 중심지에 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앉았던 자리의 승객이 버스 카드를 챙겨줬다. 나는 그분에게 90도로 절을 한 다음, 버스에서 내려 밥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속이 무척 상했다. 하지만 낙상을 하거나 다친 데는 없기에 일진이 나쁜 날이지만, 이는 천지 신명께서 어여삐 보살펴 주신 은혜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도 밤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모아 감사의 인사를 깊이 올렸다.

아마추어 악사들의 연주회 원주 치악산 밑 수변공원 공연장에서 아마추어 악사들이 색소폰 연주에 심취돼 있다.
아마추어 악사들의 연주회원주 치악산 밑 수변공원 공연장에서 아마추어 악사들이 색소폰 연주에 심취돼 있다. ⓒ 박도

3.
어제 금요일(26일)은 아침부터 꼼짝 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러다가 저녁에는 동네 한 바퀴로 가벼운 산책에 나섰다. 단골 산책 길인 옛 중앙선 철로 길을 따라 치악산 밑 수변공원으로 가자, 아마추어 악사 다섯 분이 야외 무대에서 신나게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자보다 관중이 더 적었다. 그래도 그분들은 텅 빈 객석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네 악기 연주에 도취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분들에게 인생을 배웠다. 앞으로 나의 삶도 저 분들처럼 무욕 무심(無慾無心), 스스로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고.

고백, 반성하건대 그동안 나는 뭔가 쫓기듯이 정신없이 살아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세속적인 욕심이었을 것이다. 그 물거품 같은 헛된 욕심... 그러면서 앞으로 남은 삶은 내 생활을 즐기면서 내가 평소 애송하는 김광섭 선배(중동학교)님의 '저녁에' 한 구절처럼...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이 세상에서 조용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박도 페북에도 실립니다.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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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parkdo45) 내방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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