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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복 몽골 후레정보통신대학교 부총장, 22일 몽골 UBS방송국으로부터 '몽골 UBS 방송국 해외자문위원 위촉장' 을 받았다. 이 부총장과 함께 후레대 전 교수 등 4명이 같은 날 위촉장을 받았다.
이재복 몽골 후레정보통신대학교 부총장, 22일 몽골 UBS방송국으로부터 '몽골 UBS 방송국 해외자문위원 위촉장' 을 받았다. 이 부총장과 함께 후레대 전 교수 등 4명이 같은 날 위촉장을 받았다. ⓒ 이재복

버스는 달리고 또 달렸다. 버스가 덜컹할 때마다 잠시 눈이 떠졌다. 그럴 때마다 푸르고 너른 몽골 초원이 무거운 눈꺼풀을 비집고 들어와 피로를 풀어줬다.

버스가 멈췄다. 목적지 무룬(Murun)에 도착한 줄 알고 눈을 떴더니 신호등도 없는 도로 한복판이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예상했던 대로 소와 말, 양 수백 마리가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미 세 번째 몽골 여행이라 내게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버스에서는 경적이 울리지 않았다. 참으로 무던한 운전기사다. 예전, 성질 급한 운전기사는 경적을 울려 양들의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몽골 사람들은 대체로 소와 말, 양들에게 너그러운 편이다. 그들이 도로를 가로지르든, 상점이 밀집한 읍내 한복판을 거닐든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호기심 많은 소가 몽골어로 집이란 의미인 '게르'를 기웃거려도 소리치며 쫓거나 하지 않는다. 알아서 물러날 때까지 기다린다. 소와 말, 양이 가족 같아서 그런 게 아닐까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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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 공항에서 무룬까지 꼬박 14시간이 걸렸다. 버스에서 하룻밤을 보낸 일행들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쌓였다. 인솔 대장 이재복 후레대 부총장 얼굴에서는 그래도 생기가 도는 편이었는데, 막중한 책임감이 준 긴장 때문인 듯했다.

몽골 사람들로부터 '몽골의 신(보르항)'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은 이재복 후레정보통신대학교(아래 후레대) 부총장과 함께한 5박 6일 여행(6월 15~21일)이었다. 그와 함께 후레대를 일군 전 후레대 교수들, 또 이병수 아람북스 대표(대한출판협회 부회장) 등 10여 명이 여행길에 동행했다.

후레대학은 몽골 내 유일한 한국어와 IT특성화 대학이다. 이 부총장은 대학에서 오랜 기간 행정업무를 하다가 몽골에서 교육자이자 민간 외교관으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보르항이라는 별명은 교육 활동 외 장학 사업과 의료 복지 사업을 열정적으로 한 덕분에 얻게 됐다. 특히 양 사육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양 천 마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몽골 도지사와 군수 등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난 몽골에서 펼쳐진 그의 '인생 2막'을 글로 옮긴 바 있다(관련 기사 : 퇴직 후 '몽골의 신'이 된 한국인... 그가 그리는 큰 그림 https://omn.kr/2g8fa).

몽골 여행을 권하며 그는 "그저, 편하게 쉬다 오세요"라고 거듭해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몽골'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어 여행자의 눈으로만 몽골을 볼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관찰자의 시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가 '몽골 홀릭(holic)'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몽골 사람들이 그에게 '보르항'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선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이병수 아람북스 대표, 도지사 훈장... 무룬에서의 하룻밤

 홉스굴 아이막 가족·아동 청소년 발전보호국장과 이병수 아람북스 대표(왼쪽)
홉스굴 아이막 가족·아동 청소년 발전보호국장과 이병수 아람북스 대표(왼쪽) ⓒ 이민선

 가슴에 훈장을 단 이병수 아람북스 대표
가슴에 훈장을 단 이병수 아람북스 대표 ⓒ 이민선

몽골 최고 관광지 중 하나인 홉스굴 호수로 가기 위한 관문 같은 도시인 무룬에서의 하룻밤은 몽골 사람들의 환대로 무척 뜨겁고 분주했다. 호텔에 도착해 옷도 갈아입기 전 한 쌍의 남녀가 방문을 열었다. 그들은 이 부총장과 반가운 포옹을 나눈 뒤 알아들을 수 없는 몽골어로 환담을 나눴다. 그들이 이 부총장을 얼마나 반기는지는 표정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상봉 의식'이 마무리된 뒤 이 부총장에게 그들의 정체(?)를 물으니 '전 홉스굴 아이막(행정구역 단위, 한국의 광역 자치 단체 격) 부지사 부부'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홉스골 국립보호지역 관리청장이다. 그의 이름은 바트빌궁, 부인 이름은 토야다. 토야는 무룬 국제공항 운영관리자다. 그들은 그날 밤 축하 잔치와 뒤풀이까지 함께 했다. 다음 날 무룬과 2시간 거리 홉스굴까지 찾아오는 정성을 보였고, 그다음 날 우리 일행이 무룬을 떠날 때는 한국식당까지 찾아와 배웅하며 술과 초콜릿을 선물했다.

바트빌궁 부부와 이 부총장과의 인연은 이 부총장이 지난 2021년 홉스굴 호수 지키기 운동을 하면서 시작됐다. 주민들에게 재봉틀을 기증, 에코백을 만들게 해 비닐 사용을 억제하는 환경 사업이었다. 이들의 인연은 그 뒤에도 계속됐고 바트빌궁이 홉스골 호수와 땅 관리를 하는 '홉스골 국립보호지역 관리청장'으로 지난 2024년 임명되면서 더 깊어졌다고 한다.

버스 안에서의 14시간 여독을 풀 새도 없이 호텔에서 정장으로 갈아입고 '어린이 문화원'으로 향했다. 어린이 문화원 개관식 행사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일정표에는 없었지만, 이병수 아람북스 대표(대한출판협회 부회장)이 감사장과 함께 훈장을 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김광호 전 몽골 톨가학교 교장과 이 부총장의 소개로 한국어 그림책을 어린이 문화원에 2500여 권이나 기증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홉스굴 아이막 가족·아동 청소년 발전보호국장으로부터 감사장을, 홉스굴 도지사로부터는 훈장을 받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몽골에서 '훈장'이 갖는 의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게 이 부총장 설명이다.

실제로 여행 마지막 날 난 울란바토르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훈장을 가슴에 주렁주렁 매달은 노인을 여럿 목격할 수 있었다. 손주 대학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인 듯했다. 훈장에 대한 몽골인들의 남다른 명예 의식을 엿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우수한 작품들을 선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동의 상상력과 독서에 대한 흥미, 배움에 대한 열정을 발전시켜 주며, 세계의 문화와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받은 감사장에 적시된 글귀다. 이 대표가 기증한 책은 어린이 문화원 서고에 빼곡히 꽂혀 있었다. 상을 받은 직후 이 부회장은 "몽골 아이들이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앞으로 몽골에서 진행되는 아동 교육 프로그램에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글 말하기 책, 그리고 12월에 장애인 관련 책이 출간되면 더 기증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가수 세라 노래 부르자 제비들의 군무가 펼쳐지고

 가수 세라와 몽골 전통 가창 예술 후미 공연자
가수 세라와 몽골 전통 가창 예술 후미 공연자 ⓒ 전인호 배재대 교수

 배 위에서 노래하는 가수 세라
배 위에서 노래하는 가수 세라 ⓒ 이민선

 몽골 전통 춤 공연.
몽골 전통 춤 공연. ⓒ 전인호 배재대 교수

어린이 문화원 개관식 직후 호텔로 이동하자 축하연이 준비돼 있었다. 우리 일행을 반기는 현지인들 마음이 담긴 행사였다. 호텔 방을 급습하듯 찾았던 바트빌궁 부부와 가수 세라 등 이 부총장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많은 이들이 참여해 공연을 즐기며, 담소를 나눴다.

14시간 넘게 우리와 동행한 가이드의 정체를 이 축하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유명한 몽골 오페라 가수였다. 한국 배재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고 후레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몽골 문화예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재능 많은 여성이다. 이 부총장과는 한국 배재대학에서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은 몽골에서 더 끈끈하고 강하게 이어졌다.

세라의 몽골 이름은 '남난수렝 세르즈먀타브'이다. 홉스골 아이막 출신으로 몽골 성악을 대표하는 예술가다. 몽골국립문화예술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홉스골 아이막 음악극장 수석 성악가로 활동했다. 2007년 평양에서 열린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몽골 대표로 참여해 1위를 차지했다. 몽골 국가공인 문화공로자(MUSTA)이자 국가훈장 수훈자이다.

황송하게도 그는 축하연 자리에서 의상을 갖춰 입고 무대에 올랐다. 방송국 카메라도 없고 관객이라고는 꼴랑(겨우) 스무 명 남짓인데도 말이다. 그는 이 부총장이 작사한 '추추추, 바닷가에서'와 한국 노래 홀로 아리랑 등을 열창했다. 그와 함께 몽골 홉스굴 예술단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몽골 가창 예술 '후미'와 전통 춤 등을 선보였다.

가수 세라는 이틀 뒤 홉스굴 호수에 있는 몽골의 유일한 배 위에서도 홉스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노래 '대지의 푸른 눈동자'를 불렀다. 그가 노래를 부르자 수십 마리 제비가 마치 군무를 하듯 배위를 날았고, 노래가 끝나자 모두 사라졌다. "제비도 음악을 느끼기 때문"이라 분석했지만 일행들은 믿지 못하는 표정을 보였다. '사실인데' 라는 말이 입속을 맴돌았다.

홉스굴 호수보다 더 파란 몽골 아이들

 파란 물 넘실대는 홉스굴 호수.
파란 물 넘실대는 홉스굴 호수. ⓒ 전인호 배재대 교수

 도로를 가로 지르는 소와 양떼들
도로를 가로 지르는 소와 양떼들 ⓒ 전인호 배재대 교수

홉스굴 호수와 하늘은 유난히 파랗다.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질 정도다. 하늘에 떠 있는 별 역시 소문대로 크고 밝다. 북두칠성이 두 배 정도 커 보인다고 하면 상상이 될까. 하지만 이보다 더 파랗고 밝게 빛나는 것은 친절한 몽골 아이들이었다.

저녁 식사 뒤 소화도 시킬 겸 훈장을 받아 기가 충만한 이병수 대표와 작은 운동장에서 배구공을 주고 받는 놀이를 즐기는 중이었다. 몽골 전통 복장 등을 차려 입은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다가와 함께 하자는 제스처를 취해 기꺼이 승낙했다. 내심 기다리던 터였다.

열여섯 살, 중학교 3학년 정도의 나이였다. 그 나이에 아버지뻘 어쩌면 할아버지뻘(몽골은 결혼을 대체로 빨리한다) 아저씨들에게 함께 놀자고 제안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해 보니 난 열여섯에 50-60대 아저씨에게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는 그 또래 아이들에게 그런 제안을 받은 적도 없다. 더군다나 우린 외국인 아니던가.

아이들 배구 실력은, 좋았다. 기회만 되면 하늘로 솟구쳐 올라 스파이크를 했다. 배구 실력 못지 않게 배려심도 남달라 경기 분위기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내 뒤에 있는 덩치 큰 아이가 공을 받지 못하고 연달아 실수하면서, 표정이 시나브로 시무룩해졌다. 다가가 등을 두드리며 "괜찮아"라고 하자 아이들이 모두 떼창 하듯 "괜찮아"를 연호했다. 덩치 큰 아이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외국 아저씨인 나와 이병수 대표가 공격이나 수비에 성공하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손을 마주쳐 줬다.

경기를 마치고 헤어질 때는 일일이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눴다. 한 아이는 달려와 번역기를 통해 "정말 즐거웠어요"라고 말해 주었다. 몽골 아이들이 원래 모든 이들에게 이렇듯 친절한지, 우리가 한국인이라서 특별한 친절을 베풀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포함해 몽골 여행 중 만난 대부분이 우리 일행에게 친절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특히 사제지간의 정이 두텁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었다. 이 부총장과 후레대 전 교수들의 제자를 곳곳에서 만났다. 연락이 돼 찾아온 제자도 있고 홉스굴 등 관광지에서 우연히 만난 제자도 있다. 하나 같이 조상님이라도 만난 듯 반갑게 얼싸 안았다. 사제지간 정이 두터운 이유를 이 부총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처럼 몽골 사람 역시 정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고요. 또 1학년 담임이 5년간 바뀌지 않고 아이를 지도하는 제도 덕분이기도 하지요. 한국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6학년 담임이 이후 4년간 담임을 하고, 그다음 3년도 담임 선생이 안 바뀝니다. 한마디로 '스승과 제자'라는 끈끈한 관계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눈 내린 몽골을 떠나 33도 무더위가 기다리는 한국으로

 눈 내리는 몽골, 울란바토르 인근.
눈 내리는 몽골, 울란바토르 인근. ⓒ 전인호 배재대 교수

 칭기스칸 박물관에 있는 칭기스칸 동상.
칭기스칸 박물관에 있는 칭기스칸 동상. ⓒ 이민선

몽골 여행을 함께 한 전 후레대 교수들은 모두 이 부총장이 내민 손을 기꺼이 잡고 인생 2막을 몽골에서 펼친 이들이다. 이들이 몽골에 뿌린 씨를 이번 여행으로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면면은 엿볼 수 있었다.

몽골 국민 가수 세라가 기꺼이 가이드 역할을 해 준 것. 또 관객이라고는 우리 일행 10여 명과 현지인을 포함해 스무 명 남짓인데도 무대복까지 갖춰 입고 열창하는 환대를 보여 준 것.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모든 게 이 부총장과 전 후레대 교수들이 뿌린 씨앗이다.

그 뿐인가,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찾아와 환대해 준 현지인, 특히 제자들. 이 모든 게 몽골에서 꽃핀 인생 2막의 결과물이다. 이병수 대표 같은 사업가가 기분 좋게 몽골에 책을 기증하고 한국어 보급에 발 벗고 나선 것 역시 큰 성과다.

이재복 부총장은 몽골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컴퓨터 등을 가르치는 새로운 대학을 세운다는 큰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 대학 세울 자리를 보러 다니는 중이다. 난 그에게 힘내라는 말 대신 "와서 보니, 한국인이 몽골에 와서 한 사업 중 가장 성공한 게 한국어 교육"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풋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몽골에 핀 아름다운 꽃 '한국어 교육'이 더 크고 아름답기를 바라며 눈 내리는 울란바토르를 떠나 33도 무더위가 기다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6월에 내린 눈과 홉스굴에서 본 커다란 별, 호수보다 더 파란 친절한 몽골 아이들 얼굴이 눈에 아른거린다.

 전 홉스굴 아이막(행정구역 단위, 한국의 광역 자치 단체 격) 부지사 부부, 바트빌궁과 그의 부인 토야.
전 홉스굴 아이막(행정구역 단위, 한국의 광역 자치 단체 격) 부지사 부부, 바트빌궁과 그의 부인 토야. ⓒ 전인호 배재대 교수




#이재복후레대#몽골#홉스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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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보다 화려한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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