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6.06.25 13:08최종 업데이트 26.06.25 13:08

[주장] 교사는 왜 법정 앞에 서게 되었나

공교육 사법화의 책임을 묻는다

  • 본문듣기
 자료사진
자료사진 ⓒ ivalex on Unsplash

근래 일각의 학부모 단체에서 교원단체를 비판하고 나섰다. 요지는 이렇다. 교원단체가 '교권 대 학생 인권', '교사 대 학부모'라는 대립 프레임을 만들어 반목과 혐오를 키웠고, 학생 간 갈등 해결을 교육청과 사법기관에 떠넘기면서 소송 비용까지 교육청에 떠안기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교사가 늘 피해자인 것은 아니며, 문제 학부모가 있는 만큼 문제 교사도 있으니, 이제 대화와 공동체 회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동체 회복이라는 지향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결론에 이르는 길목에 놓인 사실 판단 몇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도 틀리기 때문이다.

먼저 '프레임'에 관한 오해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본래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사단체가 그 둘을 대립시키는 프레임을 '만들어냈다'는 진단은 사실과 다르다.

교사들이 호소해 온 것은 학생의 인권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정당한 지도권한이 함께 설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받는 구조에 항의한 쪽과, 그 구조를 만든 쪽은 다르다. 대립을 지적하는 일과 대립을 만드는 일을 뒤섞으면, 그 비판이야말로 또 하나의 단선적인 오해를 조장하게 된다.

문제의 뿌리는 다른 곳에 있다

AD
문제의 뿌리는 다른 곳에 있다. 20세기의 교실을 지배하던 폭력과 통제를 걷어낸 것은 정당했다. 체벌과 모욕으로 아이를 다스리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교사는 이제 없다. 그러나 낡은 권위를 제거하는 데까지는 갔으면서, 그것을 대신할 정당한 지도권한을 법률과 제도와 사회적·도덕적 합의의 영역에서 새로 세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정부도, 교육부도, 사회도 그 자리를 비워 두었다. 권위는 사라졌는데 그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규범은 오지 않았다. 학생의 인권을 강조하는 논리와 법률이 설계될 때, 그것이 오용되지 않도록 막는 안전장치는 함께 마련되지 않았다.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조례의 존재 자체는 정당할 수 있다. 아동의 존엄을 명문화하는 일은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작동하는 맥락이다.

교사의 지도권한이 악성 민원과 소송 위협 앞에서 사실상 무력해진 상황에서는, 학생의 명백한 잘못조차 지적하고 바로잡는 일이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그 공백을 비집고, 인권이라는 정당한 언어를 방패가 아니라 창으로 쓰는 오남용이 발생한다. 조례가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오남용될 때 이를 걸러낼 자정 장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교사가 갈등 해결을 교육청과 사법기관에 떠넘긴다'는 비판은 인과를 거꾸로 읽은 것이다. 교사들은 범죄가 아닌 다툼을, 교육적이고 회복적인 방식으로 지도하고 조정하기를 원한다. 그것이야말로 교사가 본래 하고 싶은 일이다.

그런데 아이들 사이를 중재하려 손을 대는 순간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고, 민원이 들어오고, 전화와 메신저로 폭언이 쏟아진다. 감당할 수 없으니, 권한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책임 있는 기관이 맡으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소송 비용을 대 달라는 요구도 마찬가지다. 부당한 소송 앞에 홀로 선 교사가, 최소한 방어할 수단이라도 달라는 호소일 뿐이다.

순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순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애초에 교육청이 악성 민원과 부당한 소송으로부터 교사를 막아 주었다면, 학부모를 향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어 주었다면, 정부와 국회가 입법과 제도와 캠페인으로 뒷받침했다면, 교사들이 사법의 옷자락을 붙잡을 일도 없었다.

오해는 없어야 한다. 교사 가운데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극소수도 있다. 누구도 그들을 변호해 달라고 한 적 없다. 그런 잘못은 마땅히 가려지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때로는 사소하게 생기는 마찰마저 곧장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가 교사를 벼랑으로 모는 일이 만연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악성 민원을 일삼은 일부 학부모와, 그것을 오래 방치한 교육부와 정부에 있다.

교원단체, 내지 교사들이 지난 세월 제대로 공교육의 가치를 세웠다면 교육 현장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으리라는 진단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은 인과의 무게를 엉뚱한 곳에 얹는 말이다.

위의 주장을 정당화한다면, 그에 맞게 되물어야 할 것이 있다. 학부모 단체들은 사태가 여기에 이르는 동안, 학부모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교육과 캠페인에, 공교육을 존중하는 문화를 세우는 일에 얼마나 진심을 다했는가.

교육 3주체를 말하면서, 책임은 비워 둔 채 권리만 앞세우지는 않았는가. 악성 민원과 소송을 끝없이 길어 올리는 입시 경쟁에, 시민을 기르는 대신 갑질하는 고객을 길러 내는 서비스화된 교육 정책에, 학부모 단체는 제대로 된 비판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는가.

공동체의 회복은 옳은 목표다. 그러나 회복은 책임의 소재를 흐리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비워 두었고, 누가 그 빈자리를 악용했으며, 누가 그것을 방치했는지를 똑바로 본 다음에야, 비로소 교사도 학부모도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

#교권#학생인권#공교육#참교육#교육사법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배제와 혐오의 논리를 넘어서 개인의 입장이 모두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현직교사로서 교사노조연맹, 부산교사노조, 중등교사노조의 일원으로서 공교육정상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대의원 -중등교사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부산교사노동조합 대변인 겸 부위원장 -부산 기장고등학교 교사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