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원 ⓒ 이정민
검찰이 '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사건'이라는 거대한 프레임을 짜면서 가장 공을 들인 축의 하나는 동료 심사위원들의 진술이었다. 점수를 고치지 않은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점수를 고친 위원들과 방통위 직원들 사이에 '밀실 모의'가 있었음을 입증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서 드러난 실체는 전혀 달랐다. 법정에 나온 증인들은 수사기관의 유도와 사실상의 강압을 폭로하거나 자신의 진술이 '주관적 느낌'에 불과했다며 한 발 물러섰다.
모두 7명의 동료 심사위원이 법정에 섰지만 검찰의 기소 내용을 입증할 결정적 증언은 누구로부터도 나오지 않았다.
검찰이 집요하게 밀어붙인 '핵심 문구'
"전날 제출한 심사평가표를 다음날 수정했다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므로 제가 그때 그런 상황을 들었다면 당연히 기억이 날 텐데 현재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이 문장은 검찰 공소 사실의 뿌리이자 핵심 무기였다. 일부 심사위원들이 다른 위원들 모르게 어느 곳에선가 은밀하게 모여 점수를 고쳤다는 '밀실 조작' 프레임을 입증하기 위해 동료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감사원과 검찰이 집요하게 들이민 유도 신문이었던 것이다. 이런 검찰의 논리는 증언대에 나온 다수의 심사위원들에 의해 부정됐다.
먼저 검찰이 쳐놓은 이 꼼꼼한 그물망을 찢어버린 인물은 2025년 1월 24일 증인으로 출석한 A 심사위원이었다. A 위원은 조사 당시 감사원이 밀어붙인 이른바 '필수 구성요소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질문 사항 중 "이례적인 상황은 지워달라"고 강력히 요구해 해당 문구를 삭제한 뒤에야 마지못해 서명했다.
법정에서 A 위원은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 "한 번도 (점수 수정을)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어차피 심사가 최종 종료되기 전에 수정을 한 것이니까 행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수정할 수 있으면 당연히 수정하게 하는 게 맞다"라며, 이것이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정말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추가로 할 말 없느냐는 재판부(서울 북부지방법원 제 13형사부, 재판장 나상훈)의 질문에 "대충 점수를 매기는 것보다 밤을 새워서라도 또 고민해서 수정하는 분들의 노력이 훨씬 더 존중받아야 한다. 평가를 끝까지 고뇌하며 수정했던 부분들을 범죄로 몰아세우며 문제를 삼으면 절대 안 된다"고 정면으로 검찰을 비판했다. 검찰이 의도한 '몰래 고친 이례적 범죄' 프레임이 심사위원의 주체적인 거부와 상식적인 증언 앞에서 완전히 무너진 순간이었다.
"지금도 감사원을 만난 것과 확인서에 사인한 거 대단히 후회"

▲서울 도봉구 도봉동 서울북부지검 모습 ⓒ 연합뉴스
A위원처럼 감사원 감사를 정면으로 거부하지 못한 다른 심사위원들은 법정에서 감사원과 검찰 조사과정을 떠올리며 '후회성 폭로'를 이어갔다. 2024년 9월 법정에 출석한 B 심사위원은 "감사원에서 결론을 정해놓고 질문을 했고 의견을 강요하는 게 있었다"라며 "내가 이렇게 주시면 사인 안 하겠다고 버텼지만 결국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해서 사인해 준 것"이라고 증언했다.감사원과 검찰이 '원하는 대답'에 수동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상의 강압적인 환경을 고백한 것이다. C 심사위원 역시 감사원 조사에 대한 극도의 불쾌감으로 검찰 조사를 전면 거부했다고 증언했다.
"감사원 조사관이 이미 확인서를 다 작성해놓고 나에게 읽어본 뒤 서명하라고 했다. 대단히 불쾌했다."
그는 "저는 지금도 감사원을 만난 것을 후회하고 거기에 사인한 것을 대단히 후회한다. 제가 진술한 워딩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 의해 쓰인 문장인데 제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었겠느냐"라며 법정에서 분통을 터트렸다.
"법조인이 함부로 사인하면 안 되는데 서명한 게 큰 실수였다."
2024년 11월 출석한 D 심사위원의 증언도 비슷했다.
D 심사위원은 "다른 심사위원들 확인서에도 이 문구가 대동소이하게 포함되어 있다면 사전에 (수사기관이) 작성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법조인이 함부로 사인하면 안 되는데 서명한 게 큰 실수였다. 끝까지 거부했어야 했는데 그쪽에서 하도 요청을 해서 썼다"며 감사원의 '사후 진술 제조'를 증언했다.
검찰에 우호적 증인 E조차 "포괄적이고 주관적 느낌의 표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건물의 모습. ⓒ 연합뉴스
"내 주관이 게재된 추측이자 과장된 표현이었다."
검찰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가장 유리한 '우호적 증인'으로 꼽았던 E 심사위원조차 법정에서 선서를 한 뒤에는 검찰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증언을 내놓았다.
2024년 7월 26일 법정에 선 E 심사위원은 감사원과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재승인 심사가 끝난 2020년 3월 20일 아침에 방통위 간부 3명과 심사위원 2명이 모여서 뭔가를 심각하게 논의하는 걸 F 심사위원과 함께 봤다"고 진술한 인물이다.
"모여서 목소리를 낮춘채 조용히 뭔가 논의하는 장면을 봤다."
"무언가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였다."
E 심사위원이 5명을 봤다는 장소는 심사장 1층 식당에서 회의실 가는 길에 있는 의자였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E 심사위원은 또 감사원 조사 당시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 일부 심사위원들이 방통위측과 가깝게 지낸다는 느낌, 뭔가 편을 만들어서 공정하지 못하게 심사위원회가 운영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 근거를 묻는 질문에 대해 "확인서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기재돼 있지는 않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저의 주관이 게재돼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하나하나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포괄적으로는 주관적인 느낌의 표현인 것 같다"고 한 발 후퇴했다.
2024년 4월 26일 법정에 나온 F 심사위원은 "5명이 모여 있는 걸 본적이 없다"며 E 심사위원의 증언도 부인했다. 결국 법정에 나온 동료 심사위원들은 증언을 통해서도 '재승인 점수 밀실 조작'이라는 검찰의 공소 사실은 입증되지 못한 셈이다.
다음 제 4편에서는 당시 방통위원들의 법정 증언을 소개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