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회의 여성노동전문상담실인 '평등의전화'는 매년 상담사례를 분석,발간하고 있다. '평등의전화' 상담활동가들은 6월 한 달 동안 '2025년에 접수된 상담 사례'를 분석해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번 연재는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총 다섯 편에 걸쳐 게재되며, 상담 현장에서 포착한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성차별의 실태를 드러내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출산전후휴가는 알아서 신청하고 가세요."
임신 8개월의 한 노동자가 회사에서 들은 말이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였지만 회사는 어떤 안내도 하지 않았다. 급여는 어떻게 지급되는지, 절차는 무엇인지 설명조차 없었다. 결국 그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보를 찾다가 평등의전화 상담실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 모·부성권 제도는 존재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스스로 찾아서 써야 하는 권리'로 남아 있다.
늘어난 제도, 커지는 혼란
최근 몇 년 사이 모·부성권 제도는 빠르게 확대됐다.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 확대, '6+6 부모육아휴직제'까지 제도만 놓고 보면 분명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다르다. 정책이 바뀔수록 상담은 오히려 늘어난다.
"저도 이번 제도 대상인가요?"
"육아휴직 급여는 얼마나 받을 수 있나요?"
"복직 후에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나요?"
문제는 이런 질문에 대해 즉각적이고 명확한 답을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제도를 집행하는 기관조차 변경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있고, 그 혼란은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제도는 확대됐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반복된다.
임신과 출산은 여전히 불이익의 시작이 된다
법은 노동자의 임신과 출산 시기를 보장하며 고용의 단절 없이 일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했지만 "업무 공백이 생긴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거나, 출산을 앞두고 퇴사를 압박받는 사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출산휴가는 알아서 쓰라"는 말에는 회사의 무관심과 책임 회피가 담겨 있다. 권리는 존재하지만, 사용 과정은 온전히 노동자 개인의 몫이 되는 것이다.
특히 계약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취약하다. 임신 사실이 알려진 뒤 계약 연장이 되지 않거나, 사실상 퇴사를 강요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현장에서 모·부성권은 법적 권리라기보다 '회사 눈치를 보며 협의해야 하는 문제'처럼 취급되고 있다.
육아휴직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육아휴직은 2~3개월만 쓰세요."
"복귀하면 다른 부서로 가셔야 합니다."
직접적인 거부가 아니더라도, 사용 기간을 제한하거나 복귀 후 불이익을 암묵적으로 예고하는 방식은 노동자들의 선택을 위축시킨다.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도 승진, 인사평가, 계약 연장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한다. 제도가 있어도 마음 편히 쓰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2026년에도 유지되는 '6+6 부모육아휴직제'는 부모 각각 최대 월 450만 원까지 지원하도록 설계됐지만, 현장 체감은 기대만큼 크지 않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육아휴직 기간의 소득 감소 부담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불이익을 방치하지 않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은 이제 많은 노동자들이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제도가 됐다. 하지만 실제 사용 방법까지 충분히 안내받는 경우는 드물다.
급여는 얼마인지, 회사 부담은 있는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이어서 사용할 수 있는지, 육아휴직 기간 중 연차는 어떻게 되는지.
상담 현장에서 비슷한 질문이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제도가 노동자들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내가 대상인지조차 모르겠다"고 말한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감독과 실효성 있는 제재다. 현재도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사용을 이유로 한 불이익 처우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인사상 불이익, 계약 미연장, 퇴사 압박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노동자 개인이 이를 직접 문제 제기하고 입증해야 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사용 거부나 불이익이 발생해도 "괜히 문제를 키우기 어렵다"며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단순히 제도를 만드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 사업장에서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감독해야 한다. 육아휴직·출산휴가 사용을 이유로 한 불이익에 대해서는 보다 신속하고 강력한 조사와 제재가 필요하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제도 안내와 행정 지원이 부족한 만큼 정책 홍보와 현장 점검 역시 강화되어야 한다.
제도는 있는데, 왜 나는 쓰지 못할까
상담 현장에서는 지금도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제도는 많은데, 왜 나는 쓸 수 없을까요?"
모·부성권 제도는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다. 노동자가 일과 삶을 함께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기본 권리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육아휴직을 신청하며 퇴사를 걱정하고, 복귀 이후 불이익을 우려한다. 제도가 존재해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면, 그 제도는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새로운 제도가 실효성 있게 노동 현장에 적용되려면, 이미 존재하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사용될 수 있는 사회인지 점검해야 할 때다.
제도는 이미 충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묻고 있다.
"정말, 나는 이 권리를 쓸 수 있는 걸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부산여성회 평등의전화 상담활동가입니다. 여성노동자회는 전국 11개 지역의 평등의전화에서는 근로조건, 직장 내 성차별, 성희롱, 모성권 침해, 직장 내 괴롭힘 등 여성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표번호(1670-1611)를 이용하면 전국 어디서 전화를 해도 가장 가까운 지역 상담실로 연결되어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