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고민한다. 어떤 남편이 될 것인가. 가정을 둘러싼 가치관은 빠르게 변한다. 과거의 묵직한 책임감은 소통의 부재라는 한계에 부딪혔다. 그 반성 위로 다정함과 공감의 파트너십이 새 지향점으로 떠올랐다. 기술과 자본의 변화까지 맞물렸다. 남편의 얼굴은 더 복잡해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남편들>은 이 복잡한 유형들을 한 스크린 위에서 충돌시킨다.
기술적 완성도는 아쉽다. CG는 조잡하다. 액션의 가위질은 거칠고, 서사의 나사는 풀려 있다. 웰메이드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관객의 혹평은 당연하다. 박규태 감독의 연출 한계도 명백하다. 자본의 스케일에 매몰되어 코미디 특유의 촘촘한 대사 맛을 놓쳤다. 개연성과 완성도라는 잣대로는 분명한 과락이다.
그러나 화면의 얄팍함이 캐릭터까지 삼키진 못했다. 평단의 냉소에도 <남편들>은 넷플릭스 주간 차트 1위에 올랐다. 가족 구출이라는 가혹한 스트레스 테스트. 그 무대 위로 한국 사회 남편들의 다양한 민낯이 격돌한다. 관객이 환호한 지점은 여기다. 매끈한 서사 대신 불완전한 캐릭터들이 부딪치며 빚어내는 날 것의 앙상블에 반응한 것이다. 캐릭터 설정과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코믹 소동극이다.
방패가 된 거친 꼰대

▲넷플릭스 오리지널 <남편들> 스틸컷 ⓒ 넷플릭스
진선규가 연기한 전남편 '충식'은 구세대 가장의 초상이다. 말투는 거칠다. 매사에 윽박지르고 서열부터 따진다. 권위주의 꼰대의 전형이다. 딸에게 '애플워치' 대신 짝퉁 '파인애플 워치'를 사다 줄 만큼 감각도 투박하다. 마약반 형사라는 직업 탓에 가족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다. 이혼 사유는 황당하다. 밤마다 "이를 갈아서" 쫓겨났다. 거친 겉모습과 대조되는 강력한 해학적 장치다.
하지만 위기는 숨겨진 장점을 깨운다. 충식에겐 날 것의 행동력이 있다.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는다. 가족이 위험에 처하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맷집도 좋다. 어떤 난관도 끈질기게 버틴다. 거친 외피 속에 가장의 책임감이 날 것으로 살아 있다. 말은 거칠어도 행동은 묵직하다. 딸을 향한 진심만큼은 진짜다. 이혼한 아내 시내(강한나 분)조차 그 진심만큼은 높이 산다.
영화는 충식의 결함을 코미디로 비튼다. 전략 없이 주먹부터 내지르다 낭패를 본다. 호기롭던 목소리는 위기 앞에 해학적인 비명으로 바뀐다. 진선규의 일그러지는 표정은 슬랩스틱의 진수다. 낡고 투박하지만, 위기 앞에선 가장 먼저 방패를 자처하는 구세대 남편의 처절한 진심이 실소를 자아낸다.
야생 앞에 무너진 다정함

▲넷플릭스 오리지널 <남편들> 스틸컷 ⓒ 넷플릭스
공명이 연기한 현 남편 '민석'은 그 대척점에 선다. 스마트하고 세련된 남편의 전형이다. 외모부터 깔끔하다. 말투엔 자상함이 배어 있다. 수의사로서 유기견을 구조할 만큼 정이 많고 책임감도 넘친다. 아내의 감정을 세심하게 살핀다. 현대 가정이 요구하는 이상적 파트너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크다.
문제는 그의 다정함이 평화로운 일상 안에서만 유효하다는 점이다. 규칙이 무너진 야생에서 민석의 스마트한 센스는 무력하다. 가혹한 현실 앞에 온화한 문법은 길을 잃고 찌그러진다. 폭력과 마주하는 순간, 일상의 완벽함은 인간적인 허당미로 전환된다.
여기서 반전의 코미디가 발생한다. 늘 든든해 보이던 남편이 야생 앞에서 주춤하며 당혹감을 드러낸다. 충식의 무대포를 경멸하다가도 진짜 위기 앞에선 제 밑천을 쿨하게 인정한다. 공명의 맑은 눈망울은 세련된 가장이 겪는 현실적 균열을 사랑스럽게 포착한다. 결말에 이르러 두 남자의 혐오는 봉합된다. 다만 그 화해가 인물의 변화에서 온 것인지 아내를 구해야 한다는 목표가 떠밀어 낸 장르적 봉합인지는 끝내 모호하다. 코미디는 화합을 서둘러 선언하지만 그 봉합선은 보이는 것만큼 매끄럽지 않다.
아내가 키운 '온달' 빌런

▲넷플릭스 오리지널 <남편들> 스틸컷 ⓒ 넷플릭스
김지석이 연기한 빌런 '마도준'은 소동극의 원흉이자 기묘한 남편이다. 평단은 후반부 마도준이 원조 두목 용강(윤경호 분)에게 허술하게 무너지는 플롯을 혹평했다. 플랫폼 마약 사업가라는 거창한 설정에 비해 인물이 너무 허약하다는 지적이다. 이 허술함은 각본의 결함이 맞다. 제 손으로 쌓아 올린 것 없이 빌런이 무너지니 후반부의 긴장이 헐거워진다. 굳이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그 결함 위로 흥미로운 징후가 겹쳐 보인다. 마도준이라는 인물 설정 자체가 권력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풍경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마도준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아내 혜란(이다희 분)이 길러낸 '온달'에 가깝다. 열정은 넘치나 실현 능력은 모자랐다. 유능한 아내의 기획력과 첨단 기술이라는 날개를 달고서야 성공했다. 잘나가는 아내 덕에 올라선 남편의 초상이다. 진짜 브레인은 아내 혜란이다. 마도준은 화려한 껍데기를 두른 행동대장일 뿐이다.
그의 치명적 단점은 아내 덕에 쥔 권력을 제 능력으로 착각한 오만이다. 과거 시장을 장악했던 원조 포식자 용강을 하대하고 무시한다. 플랫폼 권력만 믿고 현장의 야생성을 건드린 대가는 참혹하다. 아내의 방패가 사라진 마도준의 민낯은 허술하다. 그가 허망하게 털리는 장면은 빌려온 권력이 얼마나 쉽게 바스러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지친 한국의 무중력 도피
영화 속 세 남편은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듯하다. 충식은 투박하고, 민석은 세련됐으며, 마도준은 오만하다. 우리 사회가 복잡하게 품은 남편들의 민낯이다. 공통점이 있다. 셋 다 완성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임감만으로는 소통에 실패하고, 다정함만으로는 야생을 견디지 못하며, 권력은 끝내 빌려온 것이었다. 어느 가장도 홀로 온전하지 못하다. 바로 여기에 이 코미디의 진짜 무게가 있다.
생각해 보면 가장의 자리는 더 이상 안정된 좌표가 아니다. 어떤 모범답안도 위기 앞에서는 절반만 작동한다. 세 남편의 허둥거림은 가장이라는 역할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의 자화상이며, 그 불안은 스크린 밖 현실과 고스란히 포개진다. 세대와 성별과 계층의 갈등이 동시에 끓어오르는 사회에서 급격한 변화는 끝없는 생존 경쟁을 강요하고 그 피로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정답이 사라진 자리에서 모두가 조금씩 지쳐 있다.
평단의 혹평 속 아시아 주요 국가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라는 역설은 그래서 읽을 만하다. 관객은 정교한 서사를 보러 오지 않았다. 나처럼 불완전한 남편들이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몸을 던지는 풍경을 보러 왔다. 개연성을 따지기보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팝콘 무비가 더 절실한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완벽한 영웅 대신 불완전한 인간들의 연대. 거기서 지친 마음이 잠시 풀린다.
<남편들>의 흥행은 웰메이드의 성취가 아니다. 갈등에 과포화된 대한민국이 택한 일시적 '무중력 도피'다. 부실한 서사와 조잡한 만듦새는 이 영화의 분명한 유통기한을 가리킨다. 화제성은 곧 식고 기억에서 빠르게 휘발될 것이다. 그러나 조악한 소동극에 잠시 안식을 의탁한 대중의 무의식만큼은 선명한 사회적 징후로 남는다. 완성형 가장이 사라진 시대의 피로가 불완전한 남편들의 소동극을 끝내 1위로 밀어 올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4indie)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