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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 중소 도시를 중심으로 산업폐기물처리장, 소각장, 매립장 등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지역주민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연재 '쓰레기와 싸우는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환경오염 시설과 맞서 싸우고 있는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정보 차단과 주민 배제의 현실을 진단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
지방선거가 끝났다. 전국 곳곳에서 새롭게 당선된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첫 출근을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다. 주민들의 표로 당선된 이들은 저마다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그 약속이 빈말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들어보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

선거의 열기가 끝난 지금 이 순간에도 농촌 마을 곳곳에서는 폐기물처리시설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새로 당선된 단체장과 의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마을은 조만간 폐기물 시설로 인한 갈등으로 전쟁터가 될 것이다. 이미 수많은 마을에서 반복되어 온 현실이다.

 2025년 9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이 '예산 조곡 그린컴플렉스 일반산업단지' 반대 대책위(좌측부터 조순희, 고의숙, 장동진)를 만났다.
2025년 9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이 '예산 조곡 그린컴플렉스 일반산업단지' 반대 대책위(좌측부터 조순희, 고의숙, 장동진)를 만났다. ⓒ 정보공개센터

충남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예림리 주민들이 겪은 일은 그 반복되는 현실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 드물게도, 주민들이 승리한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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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작은 교묘한 말장난이었다. 2021년 예산군과 SK에코플랜트가 '예산 조곡 그린컴플렉스 일반산업단지'(아래 조곡산단)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당시, 조곡산단 부지가 위치한 조곡리·예림리 주민 대부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일부 이장과 지주들에게만 정보가 흘러갔고, 마을에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오면 지역이 발전한다"는 뜬소문만 돌았다.

147만 제곱미터(약 44만 평) 규모의 이 개발 사업은 겉으로는 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걸었지만, 그 거대한 부지 한가운데에는 타 지역의 악성 쓰레기까지 모두 끌어모아 묻으려는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초창기 설명회에서 배포된 카탈로그 어디에도 '산업폐기물 매립장'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대신 '자원순환시설'이라는 순화된 표현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21년도 자료를 보면 '자원순환시설'이라고 딱 하나만 나와요. 이게 사실 매립장이라는 건데, 이렇게 써놓으면 주민 중에 누가 이걸 매립장인 줄 알고 질문을 하겠어요? 그냥 넘어가죠. 심지어 수질오염방지시설을 만들겠다, 이렇게 써있어서 다들 좋은 건가 하고 넘어간 거예요." - 조순희

주민들이 사업의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2023년 연말이었다. 80대 원주민 어르신이 공문 한 장을 들고 찾아오면서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조상 산소가 있는 땅 몇천 평이 산업단지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밭에서 일하던 복장 그대로 설명회 단상을 점거하며 항의했다. MOU 체결로부터 이미 2년이 지난 뒤였다.

거센 항의에 담당 공무원이 내놓은 답변은 어처구니없었다. "군청 홈페이지에 다 고시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벙쪄서 아무 말도 못 한 게 지금도 너무 억울해요. 70, 80 먹은 노인네들이 군청 홈페이지를 어떻게 봅니까? 그게 주민들한테 알린 건가요?" - 고의숙

4년 3개월의 기나긴 투쟁

 예산 조곡 그린컴플렉스 일반산업단지 합동설명회 개최 관련 자료
예산 조곡 그린컴플렉스 일반산업단지 합동설명회 개최 관련 자료 ⓒ 정보공개센터

이것이 현행 제도의 현주소다. 민간사업자가 추진하는 개발 사업은 초기 단계에서 주민들에게 정보를 의무적으로 고지하도록 하는 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자체 홈페이지나 관보에 형식적으로 게재하는 것이 전부다. 인터넷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촌 고령 주민에게는 사실상 '보지 말라'는 통보와 다름없다.

인허가 절차도 요식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설명회가 무산되었음에도 군청은 "주민 반대로 무산된 경우 서류로 대체 가능하다"며 아무런 논의 없이 사업을 환경영향평가 단계로 넘겨버렸다. 행정 절차가 주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업자의 속도를 높여주는 윤활유로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싸움이 길어지자 행정과 자본은 농촌 마을에 '갈라치기'와 '힘 빼기' 작전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관변 성향의 이장과 부녀회장들만 참석시킨 '상생협의회'를 꾸려 반대파 주민들을 철저히 배제했고, 군청 공무원들의 태도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업체 측의 '안전하다'는 논리만 앵무새처럼 펴는 담당 과장에게 "당신이 예산군 공무원이냐, SK 직원이냐"고 따져 묻자, 돌아온 대답은 참담했다. "시골 노인네들이 뭘 알아서 반대를 하느냐." 심지어 집회에서 확성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조곡산단반대주민대책위원회 장동진 위원장에게 3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이 되는거죠. 시골 사람들은 관에서 오라는 통지만 받아도 벌벌 떨잖아요. 벌금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압박 수단으로 쓰는거죠. '너네 가만히 있어, 떠들지 마' 이런 협박이나 마찬가지인 거지." - 고의숙

행정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도 주민들은 고립되지 않았다.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하승수 변호사와 환경운동연합 등과 연대하며 반격의 카드를 준비했다. 환경영향평가 공청회에서 주민 측 전문가들은 SK 측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고, "계획을 다시 보완하라"는 판정을 이끌어냈다.

여론이 악화하자 김태흠 당시 충남도지사가 개입해 지자체의 지분 51% 참여를 승인 조건으로 내걸었다. 수익의 절반을 떼어주게 생기자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품고 있던 '황금알'의 가치가 사라졌다. 결국 2024년 11월, SK 측은 "조곡산단 내 폐기물 매립장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기업의 꼼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조곡산단 규모가 50만 제곱미터 이상이면 법적으로 언제든 나중에 매립장이 다시 들어올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공단을 짓고 싶으면 아예 매립장이 들어올 수 없는 '50만 제곱미터 미만의 농공단지'로 축소하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 고의숙

2024년 11월 5일, SK에코플랜트는 예산군과 충남도에 '조곡산업단지 조성 사업 포기' 공문을 공식 제출했다.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조곡2리 마을회관에서는 4년간의 아픔을 씻어내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 "대책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고 이제 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꿈만 같습니다." 장동진 위원장의 선언으로 4년 3개월의 기나긴 투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예외적인 승리'가 아니려면

 충남 예산군 신암면 예림리 일대에 걸린 조곡산업단지 반대 현수막
충남 예산군 신암면 예림리 일대에 걸린 조곡산업단지 반대 현수막 ⓒ 정보공개센터

조곡산단 대책위의 승리는 통괘하지만, 아직까지는 '예외적인 승리'이기도 하다. 동네에 환경오염시설 인허가 신청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알기 어렵고, 인허가는 충분한 심의나 지역 주민들과의 논의 절차 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정작 피해를 입는 주민들은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사실을 알게 되어,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첫 단추부터 달라져야 한다. 인허가가 신청되는 순간부터 주민들에게 알리고,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절차를 열어야 한다. 주민들이 처음부터 함께 결정할 수 있어야 갈등이 줄어들고, 불가피하게 시설이 들어서더라도 환경오염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주민 건강을 위한 조치 등 꼭 필요한 논의를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인허가가 끝난 뒤에야 주민들이 뒤늦게 알고 거리로 나서 싸워야 하는 구조는 행정과 주민 모두를 소모전으로 몰아넣는 최악의 방식이다.

새로 당선된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에게 묻는다. 환경오염이나 주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시설의 인허가 신청을 주민들에게 미리 알리는 조례가 당신의 지역에 있는가. 인허가를 결정하는 회의에 주민이 참관하고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절차가 있는가.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첫걸음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정보공개센터는 '쓰레기와 싸우는 사람들'의 힘이 되기 위해 '아무리 덮어봐라 우리가 파헤치지'라는 이름의 서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난개발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주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서명 캠페인에 함께 합시다. https://team-sigol.kr


#폐기물매립장#산업단지#알권리#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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