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 토지와 재원을 지원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한때 청년들의 안심 거처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26년 봄, 대표적인 민간 운영사 녹색친구들이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서 사회주택 지점 다섯 곳은 순식간에 전세사기 현장으로 변했다.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놓인 이들만 약 80세대, 피해 규모는 최대 100억 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깊숙이 관여한 '공공 주도' 사회주택에서 어떻게 이런 비극이 발생했을까. <오마이뉴스>는 공공의 방치와 구조적 결함 속에서 예견됐던 이번 사태의 내막을 세 편에 걸쳐 짚어본다.

▲녹색친구들 삼송점 세입자들이 건물 출입구에 현수막을 내걸고 보증금 미반환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세입자들은 공공이 주도한 사회주택 사업에서 피해가 발생했다며 LH와 HUG의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했다.
ⓒ 유성호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 골목에 자리잡은 4층짜리 회색 건물, 겉보기엔 반듯해 보였다. 1층 커피숍과 깔끔한 택배함, 정문 안쪽에 자리 잡은 엘리베이터까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편 벽면에 달린 화이트보드에는 입주민들의 활기찬 인사와 건물 수칙이 적혀 있었다. 사회주택이 지향해왔던, 입주민들 간 소통과 서로를 향한 신뢰가 깃든 공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일그러진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 벽면은 섬뜩한 공고문들로 덮여 있었다. 지난달 18일, 한국사회주택협회가 붙인 '운영 정상화 안내문'이었다. 이 곳을 관리하던 민간 운영사 녹색친구들이 경영 악화로 운영을 포기했다는 알림이었다. 바로 아래쪽엔 청소업체가 붙인 A4 용지 한 장짜리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종이엔 "수개월(동안) 비용을 받지 못해 더는 관리가 어렵다"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세입자들은 불과 몇 달 전까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저 공공이 주도한 사업이란 사실에 안심하고 믿었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공공의 방치 아래, 보증금 미반환이라는 덫에 빠지게 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을 주관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토지를 소유한 녹색친구들 삼송점에서 올해 봄, 전세사기가 터졌다. 지난 16일 저녁 <오마이뉴스>는 이곳에서 피해 세입자들 만나 그들이 경험한 일들과 현재 상황을 들어봤다.
공공의 이름으로 입주한 집은 어떻게 청년들의 '덫'이 됐나
▲공공주택 믿은 청년 "전세사기 피하려 왔다가 되레 속았다"
유성호

▲세입자 박근호씨가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 녹색친구들 삼송점 내 자신이 거주하는 주택을 바라보고 있다. LH가 사업을 주관하고 HUG가 토지를 소유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하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박씨는 주거와 생계에 대한 불안을 호소했다. ⓒ 유성호
"전세사기 피하려고 일부러 찾아 들어왔는데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가던 이지수(30·가명)씨 얼굴에 순간 허탈함이 스쳤다. 이 주택을 '살 집'으로 고른 이유를 이야기할 때다. 이씨가 이 집을 고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가 새 보금자리를 찾던 2023년은 전세사기 소식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그때 이씨 눈에 들어온 건 공공이 검증을 마쳤다는 사회주택. 그는 '전세사기를 피하기 위해' 이곳에 입주했다.
박근호(36)씨는 이 건물과 한층 더 인연이 깊다. 앞서 녹색친구들이 운영하는 다른 지점에 살다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사왔고, 재계약도 했다. 일반 주택 청약에 당첨돼 2028년 이사할 예정이었던 그는, 원래대로라면 이곳 보증금 1억 3000만 원으로 잔금을 치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보증금이 묶이면서 그의 미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졌다.
현지환(58·가명)씨는 22살 딸의 명의로 불과 석 달 전 이곳에 자리잡았다. 보증금 1억 4500만 원은 지인에게 차용증까지 써 빌린 돈이었다. 코로나 시기, 사업이 무너지며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은 이곳에서 다시 모였다. 현씨가 믿은 건 토지주인 'LH'였다. 계약 당시 만난 녹색친구들 직원도 "나라 땅인데, 잘못될 일이 있겠냐"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가족의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이 건물을 선택한 이유는 세 사람 다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공기업을 믿었다는 것.
물이 차오르고, 연락이 끊겼다... '전세사기'의 전조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 녹색친구들 삼송점 건물 주차장 천장에서 누수 피해가 발생해 마감재 일부가 떨어져 내부 구조가 드러나 있다. ⓒ 유성호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 녹색친구들 삼송점 건물 주차장 천장에서 누수 피해가 발생해 마감재 일부가 떨어져 내부 구조가 드러나 있다. ⓒ 유성호
이제 와 돌이켜 보니, 사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전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위기를 감지한 건 이씨였다. 작년 8월 집에 있던 어머니로부터 "현관까지 물이 차오른다"는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급히 119를 불렀고, 소방대원들이 전기를 차단한 뒤 수도관이 터진 사실을 확인했다. 건물 관리 상태에 의구심이 들어 재계약을 망설였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결국 지난해 10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박씨는 지난 3월, 입주민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낌새를 챘다. 녹색친구들 직원이 함께 있던 단톡방에 서울시 사회주택의 보증금 미반환 문제를 지적한 한 서울시의원 기사 링크가 올라온 뒤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입주민이 등기부등본을 떼어보자 법인의 세금 압류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4월 초 직접 녹색친구들 사무실을 찾은 입주민들은 사무실이 텅 빈 것을 확인했다.
하필 그날은 현씨가 녹색친구들로부터 '임대료 독촉'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 고지서가 나오지 않아 임대료를 내지 않고 기다리던 중 '돈을 부치라'며 계좌번호를 보내왔던 것. 하지만 그후로는 연락이 끊겼다. 녹색친구들 대표는 입주민과 나눈 마지막 통화에서 '관리비를 받는 통장이 압류됐으니 세입자끼리 알아서 관리하라'고 했다고 한다.

▲세입자들은 녹색친구들의 경영난과 운영 포기 소식을 접한 뒤 마포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았지만 내부는 비어 있었고 직원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 유성호
이후 입주민들은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공공 지원 주택'이라는 이름을 믿고 들어 온 이들이었기에 이들의 민원도 즉시 공공기관을 향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그들이 낸 민원은 LH, HUG를 사이를 지루하게 오갔다.
LH 담당자와의 통화는 더욱 기가 막혔다고 한다. 권한이 2022년 HUG로 이관되며 관련 부서가 폐지돼 담당자조차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LH는 공모지침서 내용마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입주민들이 직접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지침서를 LH에 역으로 공유해야 했다. 자료를 확인한 LH 직원조차 '이렇게 부실하게 공모했는지 몰랐다'며 황당해 했다는 전언이다.
HUG가 내놓은 답변은 한층 더 기계적이었다. 박씨가 제기한 민원에 대해 "보증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어서 법적 책임 범위가 없다"는 무미건조한 말을 반복했다. 선정과 관련해선 "LH에 문의하라"라고 했고, 실질적인 대책을 묻는 이씨에겐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로 가라"는 대답을 내놨다. HUG가 설계한 구조로 인해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했던 입주민에게 내민 답변이었다.
"설거지 한 번에 6시간 사투"... 오수가 역류하는 집에서 사는 이들

▲세입자 박근호씨 집에서는 설거지만 하면 욕실 배수관에서 오수가 역류한다. 박씨는 배관을 타고 역류한 음식물 찌꺼기가 욕실 바닥을 뒤덮어 악취로 일생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 녹색친구들 삼송점 내 건물 복도의 누수로 인해 세대 내부 벽면에 곰팡이가 광범위하게 번져 있다. ⓒ 녹색친구들세입자 제공
취재진이 방문한 날, 건물 안에는 현실적인 위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먼저 공용 전기 요금이 수 개월째 미납돼, 당장 다음 주 공용 현관에 전기가 끊긴다. 청소업체는 이미 떠났고 소방 점검은 수개월째 중단됐다. 엘리베이터 업체는 선의로 점검을 이어오고 있지만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각 세대가 겪는 피해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박씨 집에서는 설거지만 하면 욕실 배수관에서 오수가 역류한다. 배관을 타고 역류한 음식물 찌꺼기가 욕실 바닥을 뒤덮으며 악취를 뿜어냈다. 물이 완전히 빠지기까지는 꼬박 여섯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박씨는 욕실 사용을 포기하거나, 설거지를 조심하며 하루를 버틴다.
꼭대기 층에 사는 현씨는 이사오던 날 도배업자에게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니 항상 그릇을 받쳐두라"는 황당한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이씨 방 두 곳에는 곰팡이가 피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다. 도배를 새로 했지만 또 곰팡이가 생겼고, 이제는 스스로 곰팡이를 긁어내는 상황에 다다랐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들은 스스로를 원망했다. 현씨는 말했다.
"보증보험도 안 되고 건물엔 이미 9억 근저당이 잡혀 있었지만, 공공기관이 토지주라는 사실 하나만 믿었습니다. 국가 기관이 끼어 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나 싶었죠. 주변에 '국가 지원 주택'이라고 자랑까지 했는데, 다 제가 무식해서 당한 일이죠."
박씨 역시 인터뷰 말미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재계약하자고 아내를 설득한 게 저였거든요. 사회주택이라 일반 임대인보다 안전할 거라고, 전세사기 걱정 없다고 장담했는데…."
건물 밖, 누수가 타고 흘러내린 자국이 외벽을 따라 길게 뻗어 있었다. 페인트가 뜯겨나간 자리로 드러난 철골은 앙상했다. 공공을 믿고 보금자리를 튼 이들의 보증금은, 오늘도 무너져 가는 건물 안에 위태롭게 묶여 있다.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 녹색친구들 삼송점 건물 현관에 수개월간 대금을 지급 받지 못해 더 이상 관리가 어렵다는 청소업체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유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