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가 6.3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자 4일 새벽 3시 부산 서면 선거캠프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4만여 표 차이로 상대인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를 눌렀지만, 북구갑을 포함한 광역의회와 기초단체장 선거가 예상과 달라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는 "일하고 또 일하겠다"라며 과제부터 강조했다. ⓒ 김보성
인수위원회 가동에 이어 민선 9기 준비에 여념이 없는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자의 입에서 협치나 소통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고 있다. 이번 6.3 지방선거로 부산에선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시의회는 국민의힘'이라는 유례없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험난한 시정 예고에 전 당선자는 일단 통합 시정으로 이를 돌파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일각에선 실용을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의 기조와도 맞닿아 있단 평가를 한다.
전재수 당선자가 취임 전 가장 많이 낸 목소리는?
경쟁이 치열했던 지방선거 이후 인터뷰를 마다했던 전 당선자는 이번 주가 시작돼서야 언론과의 접촉면을 크게 늘렸다. KBS·KNN·CBS 등 연달아 방송사 인터뷰에 나선 데 이어 부산시청 기자단과도 만나 공개적으로 시정 운영 방향을 설명하기도 했다.
정책공약 실현 다짐 외에 눈길을 끄는 건 협치를 크게 부각하고 있단 점이다. 여소야대 국면을 의식해 먼저 손을 내미는 모양새다. 8년 만에 부산시장직 탈환에도 더불어민주당은 광역의회 다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전체 의석 48석 가운데 민주당 소속 당선 의원은 11명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압도적 우위에 전 당선자는 숨을 고르는 중이다. 선거시기 각을 세웠던 퐁피두미술관 부산분관,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 백지화 등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를 내세우고 있다. 인수위원회에 참여하는 복수의 관계자는 이구동성 "제대로 된 보고와 파악이 먼저"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러한 발언은 전 당선자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CBS 라디오 <부울경 투데이>에 출연한 그는 선거결과에 대해 "시민들이 변화를 선택해 주셨다"라면서도 "전임 시장이 추진해 온 사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선거 시기 중단을 약속했던 논란의 사업 역시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라는 게 이날 입장이었다.
부산시의회와는 진정성을 통한 관계 설정을 강조했다. 그는 "만나서 대화하고 머리를 맞대겠다"라며 "모범적인 협치 모델을 마련한다면 국민의힘 시의원들도 다수당의 지위만 가지고 집행부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와는 또 달라진 차기 부산시의회 정치 지형. 국민의힘이 37석으로 여전히 압도적 다수이지만, 11석의 민주당 의원이 의회에 입성한다. 사진은 자료사진. ⓒ 김보성
지역의 여러 단체로 꾸려진 이기대난개발퐁피두분관 반대대책위가 인수위 앞을 찾아 조속한 백지화 촉구 기자회견을 연 15일에도 그는 KBS부산 뉴스 <대담한K>에서 '행정은 예측 가능해야 하며 연속성이 필요하다'라는 점을 부각했다.
전임 시장 지우기식 반대... 그러나 "유권자와 약속도 지켜야"
전 당선자는 "이 대전제 하에 (퐁피두 분관과 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 사직야구장 재건축 등이) 검토가 될 것"이라며 "이전 시장의 중요한 공약(사업)이었다고 백지화한다든지 하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라고 온도 차를 보였다. 지난달 그는 취임 후 예산 집행정지 사업 중 하나로 퐁피두 등을 꼽았다.
같은 날 부산시청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선 신중한 모습이 더 도드라졌다. 대전제 이야기를 다시 꺼낸 전 당선자는 "이를 뒤집어 버리면 행정 자체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무너진다"라고 우려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건 아니라면서도 그는 "이해관계자와 정책 담당 공무원, 전문가, 시민단체 그룹까지 절차 과정을 철저하게 거치겠단(진행하겠단) 의미"라고 부연했다.
6.3 부산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어느 한쪽에도 힘을 싣지 않았다. 거대 양당이 부산시장, 광역의회로 양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국민의힘이 대부분을 독점하는 구도였고, 한차례 달랐던 2018년도 민주당이 의회와 행정 권력을 모두 장악했다. 그러나 이제는 견제가 불가피한 시점에 와 있다. 전 당선자가 시정을 밀어붙일 수도 있지만, 시의회도 언제든 제동 걸 수 있는 위치다.
전문가와 민주당, 시민단체는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다. 박재욱 신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당선자가 된 상황에선 내용을 더 세밀히 들여봐야 해 "(이런 태도가)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대화 노력이 당연하단 얘기를 꺼냈다. 박 교수는 "그동안 부산은 협치라는 게 사실상 없었다. 어쩌면 진정한 지방정치가 시작되는 시험대, 전 당선자의 정치력을 보여줄 기회"라고 진단했다.
기초의회에서 재선에 성공한 한 민주당 구의원도 "상대가 전임 시장 흔적 지우기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데, 합리적으로 숙고하는 시간이 더 필요한 건 맞다"라며 "당선자 얘기에 공감이 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용을 내건 이재명 정부 기조와도 연결 부분이 있다고 봤다. 이 의원은 "이념이나 정쟁보단 시민을 중심에 놓고 실용적으로 시정을 펼치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그렇다 해도 이보름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부산경실련) 의정감시팀장과 황재문 부산YMCA 시민중계실장은 전 당선자가 공약을 어겨선 안 된단 태도다. 이보름 팀장은 "지금 나온 발언 만으론 선거용에 그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절차적 정당성 문제는 정치 지형과는 무관한 만큼 바로 잡아야 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동시에 '해양수도 부산' 등의 비전은 야당도 부정하는 게 아니어서 서로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단 말도 던졌다. 이 팀장은 "시장과 의회가 충돌만 거듭한다면 그 피해는 시민이 받을 것"이라며 전 당선자뿐만 아닌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황재문 실장 또한 한 표의 의미를 짚었다. 그는 "협치 속에서도 유권자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