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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구 I '불이(不二)_무무명 아크릴 물감 130×162cm 2024. 불이(不二) : 둘이 아니다.
이종구 I '불이(不二)_무무명 아크릴 물감 130×162cm 2024. 불이(不二) : 둘이 아니다. ⓒ 이종구(학고재)

이종구는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소외된 농촌의 현실을 고발하고, 대추리 평화 예술 프로젝트와 탄핵 촛불집회 등 역동적인 현대사의 현장을 누벼온 작가다. 그러나 그의 인생 후반을 보여준 <사유(思惟: Pensive)>전은 학고재 본관과 학고재 오룸(온라인)에서 20일(토)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22~2026년 사이에 작업한 38점을 선보인다.

그동안 정치·사회적 현실을 날카롭게 시각화해 온 작가는 최근 팬데믹과 정년퇴임, 투병을 겪으며 삶의 전환을 맞는다. 이후 사찰 순례와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몸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평생 견지해 온 현실 비판적 시선을 인간 존재와 생명의 근원에 관한 성찰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그의 작업은 사회적 문제 자체보다 삶과 죽음, 생명과 평화 등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는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시선을 옮겨갔다.

최근 그는 중앙박물관을 다니면서 더 가까워진 반가사유상을 통해 사유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는 단순한 불상이 아니라 사유하는 존재의 상징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를 뜻한다. 작가는 전쟁과 폭력과 고통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세상을 고요히 응시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했다. 과거 농촌의 현실을 응시하던 시선이 이제는 인간과 자연, 생명과 우주로 향한 셈이다.

'불이(不二)'사상과 '몸의 사유'

 이종구 I '사유-항마촉지(降魔觸地)2' 아크릴 물감 130×162cm 2023. '항마촉지(불교용어)' :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 마귀를 항복시키고 이를 땅의 신에게 증명하게 한 모습
이종구 I '사유-항마촉지(降魔觸地)2' 아크릴 물감 130×162cm 2023. '항마촉지(불교용어)' :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 마귀를 항복시키고 이를 땅의 신에게 증명하게 한 모습 ⓒ 김형순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은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이다. '불이'는 문자 그대로 '둘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너와 나, 생과 사, 선과 악, 인간과 자연 등 대립적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이다. 화폭 속 반가사유상과 거친 세속 풍경(물결, 불꽃, 군중, 병든 육체)의 병치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실체임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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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不二)'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도 지정된 추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다. 이 난초 그림에는 추사의 불교적 세계관이 담겨있다. 여기서 추사는 그림과 선(禪)이 둘이 아님(불이)을 밝힌다. 이번 전시가 언급하는 불이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이 전시의 핵심어는 '사유'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는 사유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자주 등장하는 나체도 단순한 인체 표현이 아니라 성(聖)과 속(俗), 초월과 현실, 정신과 물질이 그 경계를 뛰어넘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이다. 병들고 늙는 신체의 경험과 기억이 삶을 이해하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역설에 담긴 깊은 진실

괴로움(고통)으로 깨달음(즐거움, 구원)을 얻는다는 역설은 불이사상과 다르지 않다. 서양 '계몽주의'에서 말하는 "빛으로 어둠을 이긴다"는 이원론적 대결의 개념이 아니라, 동양의 '태극사상'에서 말하는 "빛으로 어둠을 품는다"는 일원론적 포용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 태극기에 그려진 '태극사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사상'이나 같은 것이다. 종파와 사상을 화쟁으로 통합하려 한 '원효'나, 사랑과 민족, 불교 정신을 함께 바라본 '만해'나 동양과 서양,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어 하나로 융합하려 한 '백남준'의 사유방식과도 같다.

 이종구 I '예토(穢土)_무무명 아크릴 물감 130×162cm 2024. 예토(불교용어) :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 찬 '더러운 세상
이종구 I '예토(穢土)_무무명 아크릴 물감 130×162cm 2024. 예토(불교용어) :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 찬 '더러운 세상 ⓒ 김형순

이제 몇 작품을 감상해보자. 아래 '사유_예토(穢土)'는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질병과 전쟁과 환경 파괴 속에서도 작가는 생명과 결합, 끈을 놓지 않고, 평화의 지향을 추구함을 보여준다.

작가는 고통과 번뇌의 현세인 '예토'를 전쟁과 학살로 신음하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으로 표현했다. 단순히 참상을 고발하는 걸 넘어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의 연대와 존엄을 담았다. 과거 농민을 향했던 그런 시선이 이제 인류 전체로 확장된 셈이다.

 이종구 I '사유_생로병사2' 아크릴 물감 130×130cm 2024
이종구 I '사유_생로병사2' 아크릴 물감 130×130cm 2024 ⓒ 김형순

그리고 '사유_생로병사2'는 작가의 두 번의 수술과 병고를 겪으며 마주한 실존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질병과 죽음의 문턱을 통과하며 변화한 자신의 병든 모습마저 숨김없이 드러낸다. 육체를 통해 존재의 진실을 탐구하며 '몸의 사유'라는 주제를 날 것으로 전달한 작품이다.

 이종구 I '나무3-소풍' 아크릴 물감 193×130cm 2025
이종구 I '나무3-소풍' 아크릴 물감 193×130cm 2025 ⓒ 김형순

그리고 '나무3'은 천지인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형상화했다. 거목 아래 아이, 중년, 노인과 식물인 나무와 동물인 진돗개 등 우주 만물에 깃든 불성(佛性)을 보여주며 통합된 세계관을 제시했다.

식물인 나무와 동물인 진돗개 모든 우주 만물에 불성(佛性)이 담겨있다는 통합된 세계관을 암시한다.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이 자연의 순환계 속에 같이 공존하는 생명체임을 보여준다.

미술비평가 '김준기'는 이종구의 세계를 "가장 특수한 것(농민·농촌)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인간·생명·우주적 영성)을 끌어내는 진화의 과정"으로 봤다, 두 영역이 결코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불이'의 세계임을 깨닫게 해준다고 평했다. 작가의 창작 동기는 또한 관념적 세계가 아닌 '몸의 기억'에서 사유가 출발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김준기는 이종구의 회화세계를 눈앞의 자연을 세밀히 관찰해 우주의 비밀을 깨우치려 했던 사상가 서경덕의 격물치지(格物致知) 사상과 기(氣) 철학과 연결해서 읽어냈다.

사유의 지평을 우주적으로 확장

 이종구 I '사유_월인천강' 아크릴 물감 180×180cm 2026
이종구 I '사유_월인천강' 아크릴 물감 180×180cm 2026 ⓒ 김형순

결국, 이번 전시는 사회 현실을 응시해 온 한 민중미술가가 인간 존재와 생명의 근원, 그리고 우주적 연결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 여정으로 보여준다. 반가사유상은 그 여정의 상징이며, 불이 사상은 그가 도달한 철학적 지평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상흔이 가득한 땅이라도 생명과 평화의 온기와 인간 존엄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내비친다.

작가의 '전시 글' 중 끝부분을 인용한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반가사유상은 더욱 존엄하고 숭고한 빚을 낸다. 나의 작업은 반가사유상을 위한 장엄(莊嚴)이자 평화를 위한 사유라고 하겠다"

[작가소개] 이종구 작가는 1954년 충남 서산 출생으로, 중앙대 교수와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청와대, 한국은행 등 주요 기관에 대거 소장되어 한국에서 미술사적으로 독보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학고재 홈페이지 http://www.hakgojae.com


#반가사유상#불이사상#태극사상#민중미술#몸의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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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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