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아일체(物我一體)는 물체와 내가 구별 없이 하나로 어울린다는 뜻이다. <주말마다 손주 육아하는 할머니>를 출간한 유영숙 작가를 보고서 '글아일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봤다. 이 작가는 삶이 글이 되고 글이 곧 삶이었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작가의 글을 먼저 접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끊임없이 글을 발행하며 몇 권의 출간 작업도 해낸 작가적 삶이 굉장하다. 일상이 곧바로 글이 되는 분이었다. 그래서 이 책 서두에 실린 작가의 아들, 쌍둥이 아빠가 쓴 글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주말마다 손주 육아하는 할머니>손주 육아 기록을 넘어선 책이었다. ⓒ 차상순
어머니는 훌륭한 교육자이자 '존경하는 엄마'이며, 지금은 '손주 돌보기 프로 할머니'라는 명함까지 획득하셨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니에게 가장 빛나는 아이덴티티는 '작가 유영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쓰는 단어는 담백하면서도 '허투루' 사용되는 것이 없으며, 문장에선 당신의 따뜻한 마음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한껏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글은 읽는 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 8P
쌍둥이 엄마인 작가의 며느리가 쓴 글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잘 드러났다. 며느리의 글이 시어머니인 유영숙 작가의 품성을 가늠케 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 그리고 사랑을 알고 배워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희 부부는 부모님께 더할 수 없이 큰 빚을 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사랑으로 채워 주신 시간이 아이들에게 평생 따뜻한 등불이 될 거예요. -12p
사실, 이 책이 출간됐다는 정보를 1년 전에 접했다. 그러나 곧바로 책을 읽지 않았다. 손주 육아하는 이야기라면 손주 없는 내겐 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손주가 없다. 요즘 인간관계와 라이프 스타일은 손주 유무로 나뉜다고들 한다. 인생의 경험과 시각은 '손주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무한한 내리사랑을 경험하는 집단, 그리고 아직 자녀 양육에 집중하거나 개인의 삶에 몰입하는 집단으로 나뉘는 세태를 짚어주는 말이다.
그래도 작가의 진솔한 글을 늘 읽어오던 터라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손주 육아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었다. 금요일 저녁이면 찾아오는 쌍둥이 손자를 무려 7년이나 돌보셨다는 작가의 끈덕진 사랑 앞에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 현직에 있으면서도 황금 같은 주말에 손주를 돌보며 보내는 할머니의 찐 사랑이 묻어 있는 책이었다.
쌍둥이 손자가 올 때마다 조용하던 집은 어린이집처럼 북적북적하게 변신하지만, 이 소란스러움이 마냥 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주말마다 쌍둥이 손주가 할머니 댁에서 2박 3일을 지낸다. 그러구러 쌍둥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런 사랑둥이 '지우, 연우 추억 이야기'를 엮어서 만든 책이었다.
이 책의 매력은 초등교사 출신 할머니가 전하는 실질적인 육아 노하우가 스며 있다는 점이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쌍둥이 손주들과의 일화가 무궁무진하다. 쌍둥이들은, 태어나보니 할머니가 교장 선생님, 브런치 작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에, '올해의 뉴스 게릴라 상' 수상자라면 어떨까? 흙수저,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라는 말이 있는데 이 손주들은 실리콘 수저나 방짜 유기 수저라고 해도 되겠다.
한평생 교육 현장에서 쌓았던 교육 비법을 손주에게 그대로 쏟아부었으니 손주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알뜰살뜰 양육을 잘 받은 셈이다. 그 손길은 손주들의 미래에 크나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모습을 요즘 쉽게 접한다. 그러나 자녀를 키운 지 오래된 할머니는 다 늦게 마주한 어린 손주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라 당황하거나 요즘 젊은이들의 육아 방식과 달라 고민이 많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런 분에게 이 책이 할머니 손주 육아법 교본이 될 것 같다. 손주 육아의 본질을 보여주는 손자병법이랄까.
작가가 현직에 있으면서 친정어머니를 모셨다는 글도 있었다. 모친이 주간 보호 센터에 다니기 전까지는 작은아들이 재택근무 하면서 할머니를 돌보거나 작가가 조퇴하여 돌보셨다. 그 와중에 주말이면 쌍둥이 손자도 들이닥치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을 것 같다. 그렇게 1년 8개월 동안은 모친을 모시면서 동시에 손주까지 돌보셨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냈으니 쌍둥이가 때때로 왕할머니를 찾는다는 대목에서 맘이 울컥했다. 연세가 많았지만 비교적 건강이 좋으셨던 작가의 모친은 천식으로 입원하셨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현직에 있으면서 부모를 봉양하고 손주를 돌본 작가는 이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현숙한 여인상인 듯하다.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삶의 자세다. 이 책은 손주를 육아하는 교본을 넘어 제대로 된 삶이란 어떤 것이라는 것을 글로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이 책에서, 저출산의 원인이 여러 가지겠지만, 정부에서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작가는 제언한다. 금전적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육아 휴직 제도와 아이 돌보미 등 좋은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혼부부의 주택 문제도 개선하여 많은 청년이 결혼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42년 6개월을 교직에서 헌신한 작가가 늘그막에 쌍둥이 손주를 육아하신 이야기를 담은 <주말마다 손주 육아하는 할머니>라는 책 제목만으로도 감동이 된다. 훌훌 털고 자유롭게 오대양 육대주를 누벼야 할 무렵에 온 우주보다 귀한 두 손주를 품고 걸어오신 여정을 그린 손주 육아 기록에 한 사람의 인생관이 오롯이 드러나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