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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장승포 옛 여객선터미널 자리에 흥남철수기념관이 문을 연다. 1950년 그해 겨울, 어디에도 닿지 못한 1만 4005명을 거제가 품었던 기억을 75년 만에 한자리에 모은 공간이다.
<거제신문>은 기념관 개관에 맞춰 '흥남에서 거제까지' 시리즈를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1부에서는 기념관에 담긴 그날의 역사와 공간의 의미를 짚고, 2부에서는 직접 기념관을 찾아 전시를 따라 걸으며 마주한 장면과 감상을 탐방기로 전한다. 흥남철수가 단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오늘의 거제를 이루는 기억임을, 그 공간에 선 한 사람의 눈으로 독자와 함께 확인하고자 한다.

▲흥남철수기념관. @백혜인 ⓒ 거제신문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 중공군의 공세에 밀린 피란민들이 마지막 배에 매달렸다. 정원 60명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무려 1만4000명이 올랐다. 60명을 위해 만든 배에 그 수백 배가 올라탄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는 절박한 결단이었다.
배는 사흘을 항해했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온기도 없는 혹한의 갑판 위에서 단 한 사람의 목숨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다섯 생명이 새로 태어났다. 흥남을 떠날 때 1만4000명이던 사람은, 거제에 닿았을 때 1만4005명이 돼 있었다. 세상은 이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렀다.
그 기적이 닿은 항구가 거제 장승포다. 그로부터 75년, 그 겨울의 기억을 온전히 담은 공간이 옛 장승포항에 들어선다. 거제시는 오는 6월 26일 장승포동 옛 여객선터미널 부지에 조성한 흥남철수기념공원 내에 '흥남철수기념관'을 개관한다.

▲흥남철수기념관 전경. @거제시 제공 ⓒ 거제신문
부산에 닿지 못한 1만4005명, 거제가 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항해는 흔히 알려진 것보다 멀고 험했다. 12월23일 흥남을 떠난 배는 이튿날인 24일 부산항에 닿았다. 그러나 부산은 이미 국군과 유엔군, 앞서 도착한 피란민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끝내 배는 부산에 들어가지 못했다.
갈 곳을 찾지 못한 배는 다시 거제로 뱃머리를 돌렸고, 크리스마스인 12월25일 마침내 장승포항에 사람들을 내렸다. 어느 항구에도 닿지 못하던 1만4005명을 끝내 품어 안은 것이 거제였다.
이 항해는 배 한 척으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세계 최고 기록으로 2004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러나 거제 사람들에게 이 숫자는 기록 이전에 이웃의 이야기다. 배에서 태어난 '김치 1호'부터 '김치 5호'까지. 이 아이들 중 일부는 지금도 거제에서 살아가고 있다.

▲흥남철수기념관. @백혜인 ⓒ 거제신문
피란의 도시, 그 역사를 담을 자리
기념관이 들어서는 옛 장승포항 일대는 그 역사의 현장 그 자체다. 거제시는 장승포동 687번지 일대, 옛 장승포 여객선터미널 부지에 흥남철수기념공원을 조성해 왔다.
장승포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어업자본가의 거점이었고,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과 포로를 동시에 품었던 곳이다. 흥남철수로 거제에 정착한 피란민들은 이곳에 삶의 터전을 일궜고, 그 후손들이 도시의 한 축을 이뤘다. 흥남철수기념관은 그 피란살이의 역사를 한 자리에 모으는 공간인 셈이다.

▲흥남철수기념관. @거제시 제공 ⓒ 거제신문
도시재생 끝에 피어난 기억의 공간
이번 개관은 장승포가 걸어온 도시재생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거제시는 2017년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1만4000 피란살이 장승포 휴먼다큐' 사업을 선정시켰다. 이는 주거지지원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는 전국 최초로 준공된 사례다.
쇠락했던 옛 항구 도시가 '1만4000명의 피란살이'라는 거제만의 서사를 중심으로 되살아났고, 흥남철수기념관은 그 재생의 마침표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라 할 만하다.

▲흥남철수기념관. @백혜인 ⓒ 거제신문
1만8000㎡ 부지에 154억…미디어아트로 되살린 그날
흥남철수기념공원은 2020년부터 2026년까지 총사업비 154억8000만원을 들여 조성됐다. 전체 면적 1만7964㎡에 전시관은 2768㎡ 규모로, 옛 장승포 여객선터미널 건물을 리모델링해 활용했다.
전시관의 핵심은 '미디어아트'다. 유물을 늘어놓는 대신, 한국전쟁 발발부터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 거제 정착까지를 영상·홀로그램·체험형 연출로 풀어냈다. 1·2층에 걸쳐 모두 12개의 전시 공간이 이어진다.
1층에서는 혹한의 장진호 전투를 강풍기와 냉각시설로 직접 체감하는 체험형 통로, 흥남부두의 긴박한 구조 작전을 담은 '위대한 휴먼작전'이 펼쳐진다.
특히 기네스북에 오른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대형 맵핑 영상으로 재현한 '1만4000명의 피란민 수송작전'이 눈길을 끈다.
2층은 거제의 이야기다. 장승포항 등대 불빛을 거울로 무한 반사시킨 '희망의 빛', 거제의 비경을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거제의 풍경'으로 이어지고, 바다를 조망하는 뮤지엄샵과 카페에서 관람이 마무리된다.
2층 '아픔을 치유하는 땅, 거제'에는 흥남철수와 인연을 맺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 가운데에는 흥남철수로 거제에 정착한 피란민의 아들로 1953년 장승포에서 태어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있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미국 방문 당시 "흥남철수작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개인의 삶을 넘어 거제라는 도시의 정체성에 흥남철수가 어떻게 새겨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원 곳곳에는 실제 도면을 바탕으로 복원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뱃머리 조형물이 상징물로 세워졌다.

▲흥남철수기념관. @백혜인 ⓒ 거제신문
기억을 넘어, 거제의 자산으로
기념관은 거제시가 직영한다. 관광과 내 운영관리팀을 신설해 공무원과 기간제 근로자 등 11명이 운영을 맡는다. 관람은 월요일을 제외한 주 6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며 주차는 무료다.
입장료는 어른 5000원, 군인·청소년 3000원, 어린이(7~12세) 2000원이다. 20인 이상 단체와 거제시민·65세 이상은 요금이 할인된다.
흥남철수의 기억은 그동안 거제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기적의 길, 피란살이 거리, 그리고 시민들의 기억 속에 흥남철수기념관의 개관은 이 기억들을 한자리에 모아 거제의 정체성으로, 나아가 지역의 문화·관광 자산으로 키워낼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75년 전 거제가 어디에도 닿지 못한 1만4005명을 품었듯, 이제 그 기억을 어떻게 품고 가꿔갈지가 새로운 과제로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거제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