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산방죽 관어정과 나산마을. 마을이 방죽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 이돈삼
담양 누정 가운데 관어정이 있다. 식영정, 송강정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손에 꼽히는 누정이다. 이른바 '담양 10정자(亭子)'에 속한다. 담양 10정자에는 관어정 외에 식영정, 소쇄원 제월당·광풍각, 면앙정, 명옥헌, 송강정, 독수정, 상월정, 연계정, 남극루가 포함됐다.
관어정은 병풍산과 삼인산 자락,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나산(羅山)마을에 있다. 풍치가 그다지 빼어난 곳도, 높은 구릉도 아니다. 금세 눈에 띄는 곳도 아닌, 마을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이 정자를 감싸고, 나무숲이 둘러싸고 있다.
관어정은 마을 앞 연못 한가운데에 있다. 조선 숙종 때 박문서가 쌓았다고, '박지(朴池)'로 이름 붙은 인공 섬에 들어있다. 물이 중요하던 시대, 연못은 농사에 큰 도움을 줬다. 마을사람들의 생명줄이었다.

▲담양 나산마을 전경. 나산방죽에서 본 모습이다. 6월 10일이다. ⓒ 이돈삼

▲연잎으로 덮인 나산방죽. 방죽은 한여름에 백련지로 탈바꿈한다. ⓒ 이돈삼
연못 가운데 정자는 1944년 주민들 휴식처로 처음 지어졌다. 담양 10정자 가운데 역사가 가장 얕다. 바쁜 농사철을 보낸 주민들이 쉬던 곳이다. 마을일은 물론 집안의 크고 작은 일도 여기서 논의했다. 동각(洞閣)인 셈이다.
봄날 아침, 방죽에 자욱하던 물안개가 아침햇살에 사라지면 콩잎붕어가 물살을 가르며 떼를 지어 노닐었다. 가물치와 잉어도 봄햇살을 즐겼다. 물고기를 보는 정자다. '관어정(觀魚亭)'으로 이름 붙은 이유다.
여름날엔 연잎 순이 방죽을 푸르게 뒤덮었다. 연잎은 비 내리는 날 우산, 햇볕 강하게 내리쬐는 날엔 양산이 됐다. 연잎 위 개구리가 목청을 높이면 꽃봉오리들이 키재기를 하며 피어났다. 어느새 방죽의 주인이 새하얀 백련으로 바뀌었다.

▲나산마을 풍경. 마당에서 블루베리가 익어가고 있다. ⓒ 이돈삼

▲하나씩 익어가는 블루베리. 6월 10일 담양군 수북면 나산마을에서다. ⓒ 이돈삼
동네 총각과 처녀들의 '몰래 데이트' 장소도 연못가였다. 달빛에 비치는 연꽃을 보며 오래전부터 품었던 마음을 수줍게 털어놨다. 관어정은 달빛 아래서 슬그머니 손 내밀던 그 순간도 다 지켜봤다.
청초한 백련이 활짝 피면 연꽃축제도 열렸다. 마을 청년들이 소소하게 준비하고 주민과 외지인이 한데 어우러졌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동네 수영장이었습니다. 날마다 깨복쟁이 친구들 모여서 헤엄치며 물놀이하던 저수지였죠. 물이 빠지는 겨울엔 넓은 축구장으로 변했어요. 볏짚을 말아서 공으로 만들어 차고 놀았습니다. 얼음이 꽁꽁 얼면 썰매 탔죠. 어린아이들한테는 사철, 자연 놀이터어요. 이 저수지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해기씨의 말이다.
덕분에 나산마을 어린이들은 물과 친숙하게 지냈다. 그때 소질을 꾸준히 계발했더라면... 훌륭한 수영선수도, 축구선수도, 빙상선수도 나오지 않았을까?

▲연잎으로 덮인 방죽. 연못 안 숲에 관어정이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관어정을 연결하는 철다리. 방죽 안 정자가 마을과 양쪽으로 연결돼 있다. ⓒ 이돈삼
연못 가운데 관어정은 양쪽으로 마을과 연결돼 있다. 마을회관 앞으로 이어지는 철다리가 멋스럽다. 병풍산과 삼인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마을이 물속에 반영돼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사방 어느 쪽으로 봐도 환상경이다. 반영된 풍치는 담양 10정자 가운데 으뜸이다.
삼인산도 명산이다. 산의 모양이 사람 人(인)자 셋을 겹쳐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이름 붙었다. 산세가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닮았다. 태조 이성계가 꿈에서 현인이 일러 준 삼각뿔 모양의 삼인산을 찾아 제를 올리고 기도한 뒤 왕위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몽성산(夢聖山), 몽선산(夢仙山)으로 불렸다.
관어정은 당초 우진각지붕의 정면 3칸, 측면 2칸이었다. 우진각지붕은 사방으로 경사를 짓고 있는 지붕 형식을 일컫는다. 방죽에 있던 3개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에 세워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반이 내려앉고 정자도 기울어 새로 지었다. 모양도 팔각지붕으로 바뀌었다. 담양군의 지원금에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보탰다. 지난 2007년이었다.
관어정은 마을과 자연풍광이 한데 어우러져 더 멋스럽다. 여느 누정과 달리 섬 속에 들어선 것도 비교우위다. 물 위에 떠있는 것만으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안겨준다. 지나가는 발걸음이 오래 머문다.

▲담양 관어정. 사방이 물로 들러싸인, 연못 안에 들어서 있다. ⓒ 이돈삼

▲집으로 가는 어르신. 해질 무렵 담양 나산마을 풍경이다. ⓒ 이돈삼
나산마을은 1530년 전후 형성됐다. 영성정씨, 연안김씨를 비롯 함양박씨, 장흥고씨, 영천이씨, 홍주송씨,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았다. 창평현 동서면에 속했다. 면사무소 격인 치소가 연못가에 있었다. 지금의 나산리, 고성리, 대흥리, 풍수리, 대남리, 성산리 일대를 관할했다.
나산마을의 글 읽는 소리는 어느 마을보다 높았다. 과거 급제자도 많이 나왔다. 문안(文案), 솟대배미 등 옛 지명이 지금껏 전해진다. 문안은 옛 서원이 있던 곳이다. 솟대배미는 과거 급제자를 맞아 솟대를 세운 논배미를 일컫는다. 1628년, 1663년, 1678년, 1726년에 급제자가 나왔다고 한다.
연안김씨 문익공 여지 등 3명을 모신 삼현사(三賢祠)도 마을에 있었다. 1868년 서원 철폐령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유허비만 남아있다.
나산마을은 1914년 4월 행정구역 개편 때 담양군 수북면에 편입됐다. 지금은 전원주택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전원주택단지도 만들어졌다. 자연환경이 좋은 데다 광주에서 가까워서다. 해마다 새로운 주민이 늘고 있다. 오늘도 원주민과 이주민이 어우렁더우렁 피우는 웃음꽃이 관어정을 맴돈다.

▲연안김씨 정착지비. 나산마을에 일찍 들어와 정착한 성씨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