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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의 시초는 제주도 '올레길'과 '북한산 둘레길'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진다. 이를 기화로 전국에는 수많은 둘레길이 생겨났다. 지역마다 특성을 살린 둘레길은 건강 유지와 힐링을 위한 여행자를 불러들이면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2008년 처음 시범구간이 열리고, 2012년 지리산권역 5개 시군을 잇는 전 구간이 열렸다. 한때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구간마다 식당과 민박집도 호황이었다. 하지만 인기는 언젠가는 식는 법이다. 그럼에도 지리산둘레길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고 국내 최고의 둘레길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3월 시작한 사단법인 숲길 주관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열세 번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예전부터 혼자서 산행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20명 이상 참여하는 단체 걷기에 참여하는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길을 헤맬 필요가 없고, 다른 하나는 원점으로 회귀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이 길을 걷고자 했을 때, 혼자서 걸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혼자 걷기를 포기하고 단체 모임에 참여한 것은 앞서 밝힌 두 가지 이유에서다. 21개 구간을 하루 2구간씩 10여 일이면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시일이 걸리더라도 이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지금까지 참여해 오고 있다.

지리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 원부춘~대축 구간을 걷고 있는 토요걷기 회원들.
지리산둘레길지리산둘레길 원부춘~대축 구간을 걷고 있는 토요걷기 회원들. ⓒ 정도길

지난 6일, 지리산둘레길 원부춘~대축 구간 8.5km 걷기에 나섰다. 이 구간은 들머리부터 급경사가 시작되는 난이도 중급 이상에 해당하나, 윗재를 넘어서면 내리막길이어서 편한 걸음으로 종착지에 닿을 수 있다. 중간에는 산속에서 쉽게 보기 힘든 서어나무 숲도 만난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 들녘에서는 넉넉한 농심을 품을 수 있다. 입석마을 '선돌 미술관'에서는, <AFRICA, 인간과 대자연의 소리 없는 위로>라는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진다. 또, 이 마을은 '2023 마을미술프로젝트' 사업으로 골목 안길에서 다양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신선대구름다리 형제봉과 신선봉 사이에는 신선대구름다리가 놓여져 있다.(중간 움푹 패인곳)
신선대구름다리형제봉과 신선봉 사이에는 신선대구름다리가 놓여져 있다.(중간 움푹 패인곳) ⓒ 정도길

원부춘마을회관 앞 아스팔트길로 접어들면서 급경사가 시작된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오르막이다. 육안이나 체감으로 거의 70% 이상 느껴지는 급경사지만, 실제로는 30% 내외다. 15분을 걷고 잠시 쉬어간다. 이날은 사단법인 숲길 이사장이 직접 나섰다. 지금까지 팀을 이끌었던 팀장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2주째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분위기랄까, 참여 회원들은 활기찬 모습이다. 숲길은 그늘이 져 걷기 편하지만, 급경사로 인한 체력 소모는 피할 길이 없다. 이날은 현충일이라 10시 사이렌 소리는 듣지 못해도, 시간에 맞춰 묵념을 올렸다.

급경사길 지리산둘레길 원부춘~대축 구간 출발지인 원부춘 마을 뒤 급경사를 오르는 토요걷기 회원들.
급경사길지리산둘레길 원부춘~대축 구간 출발지인 원부춘 마을 뒤 급경사를 오르는 토요걷기 회원들. ⓒ 정도길

지리산둘레길 걷기... 혼자보다 단체 걸음이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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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열두 번째 토요걷기 가탄~원부춘 구간도 세 시간 이상을 오르막만 걸었다. 이날 걷는 구간 역시 지난주 못지않다. 숨은 목까지 차오르고 두 다리는 쥐가 날 정도로 뻐근하다. 집에서 냉동시켜 온 이온음료가 반쯤 녹았지만, 한 모금 마시니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근육운동에 이온음료가 도움이 된다는 것도 지난주에서야 알았고 그래서 챙겨왔던 것이다.

숲길 센터 직원이 먼저 올랐던 길을 내려오면서 말을 건넨다. 어느 분이 폰을 놓고 와서 찾으러 간다는 것이다. 제법 시간이 걸려 다시 합류했을 때 폰을 찾지 못해 빈손이었다. 결국 폰 주인이 하산해야만 했다. 이 같은 사례를 보면 당초 폰 주인이 나서야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놓고 온 위치를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 정도 오르니 능선길이다. 휴대폰 지도를 보니 실제로 윗재까지 등고선이 급경사가 아닌 평평한 선으로 나타난다. 한숨과 안심이 교차한다. 선두보다 10여 분 이상 늦게 도착했다. 점심은 음식이 쉴 것을 우려해 떡으로 준비했다. 여성 한 분이 봉지에서 뭔가를 꺼낸다. 비닐봉지에 채소와 문어 썬 것을 넣고 고추장을 섞어 칵테일 섞듯 멋진 폼으로 흔들어 댄다. 만들어진 음식은 폼 잰 것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멋진 문어무침이 탄생한 것이다. 산속에서 즉석 일품요리를 맛보는 즐거움이란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할 것만 같다.

윗재 즉석 요리로 문어무침을 해서 점심을 먹은 윗재.
윗재즉석 요리로 문어무침을 해서 점심을 먹은 윗재. ⓒ 정도길

길 아래 서어나무 고목 하나가 앙상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다. 주변으로 수령이 오래된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쓰러진 나무는 고령으로 뿌리가 약해 넘어진 것일까. 씨가 뿌려진 곳에 새로운 나무가 젊음을 과시한 채 잘 자라고 있다. 자연의 이런 현상을 접하면 인간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그럼에도 자연현상에서 철학을 배우고 깨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어나무 숲 지리산둘레길 원부춘~대축 구간에는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서어나무 숲지리산둘레길 원부춘~대축 구간에는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 정도길

요금 보기 어려운 마을 공중전화... 그 숨은 의미를 찾아서

입석마을 가까이에 들어서니 눈앞으로 구제봉 능선이 한 선으로 그어져 있다. 그 아래로는 평사리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 모습이다. 수령 몇백 년은 돼 보이는 서어나무 아래서 쉬어간다. 이곳에는 지리산둘레길 스탬프가 있어 확인 도장도 찍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산 정상에 구름다리가 보인다. '신선대구름다리'다. 점심을 먹었던 윗재에서 시간을 내어 가 볼 수 있었는데 아쉬울 뿐이다. 이 구름다리는 형제봉(1116.2m)과 신선봉(615.3m) 사이 중간 지점에 있다. 다음 기회가 생긴다면 이 능선을 걸으면서 구름다리 위를 걷고 싶다.

스탬프 입석마을 입구에서 지리산둘레길 원부춘~대축 구간 스탬프 확인 도장을 찍을 수 있다.
스탬프입석마을 입구에서 지리산둘레길 원부춘~대축 구간 스탬프 확인 도장을 찍을 수 있다. ⓒ 정도길

걸은 지 네 시간 반 만에 입석마을에 도착했다. 마을회관 옆에 자리한 공중전화가 눈길을 끈다. 요즘 도심 거리나 번잡한 곳이라도 공중전화를 보기 어렵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작은 마을에 웬 공중전화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직접 걸어보기로 하고 다가섰는데 동전이 없다. 이상하다 싶어 주위를 살피니 답이 나왔다. 전화기 부스 위쪽에 '선돌마을 이야기'라 표기해 놓았고, 벽면에는 설명문까지 붙여 놓았다. 다이얼 번호 1~6번까지는 수화기에서 나는 사람 목소리를 담았다. 7~0번, *, #는 천장 스피커에서 나는 새소리, 섬진강물소리, 대나무길 바람소리 등이 들리게 해 놓았다. 2번을 누르니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아줌마 소리가 웃음을 자아낸다.

선돌마을 이야기 입석마을에는 '선돌마을 이야기'라는 공중전화가 있다.
선돌마을 이야기입석마을에는 '선돌마을 이야기'라는 공중전화가 있다. ⓒ 정도길

입석마을에는 '2023 마을미술 프로젝트'라는 사업으로 골목길 곳곳에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이 마을 골목길은 화개 부춘마을로 지나는 지리산둘레길 14번 길로, 씨감자, 누에 그리고 뽕잎이 오가던 생존의 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젠 생태의 길로, 힐링의 길로, 마을을 지나는 등산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로서 역할을 다하는 주민의 배려를 담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사롭게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담장 위나 벽면에는 예술작품이 설치돼 있음을 알게 된다. 회원 몇 명이 각자 멋진 폼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2023 마을미술 프로젝트 입석마을에는 '2023 마을미술 프로젝트' 사업으로 벽이나 담장에 예술작품(하얀 철제작품)이 설치돼 있다.
2023 마을미술 프로젝트입석마을에는 '2023 마을미술 프로젝트' 사업으로 벽이나 담장에 예술작품(하얀 철제작품)이 설치돼 있다. ⓒ 정도길

평사리 부부송... 농부의 고단한 삶과 행복이 동시에 느껴져

마을 중간 공터 주변에 자리한 형제봉막걸리 집이 발길을 끈다.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곳에서 막걸리 딱 한 잔만 걸치고 갔으면 좋겠는데 문이 잠겼다. 닭 대신 꿩이라고, 인근에 자리한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근사한 현대식 건물인 '마을미술관 선돌'이라는 작은 미술관이다. 이 전시관에서는 지난 5월 19일부터 7월 31일까지, <AFRICA, 인간과 자연의 소리 없는 위로>라는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시된 작품은 아프리카에서 촬영한 사람, 동물, 자연, 그리고 생명을 주제로 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미술전시관 선돌 입석마을 선돌 미술전시관에서는, 7월 31일까지 라는 주제로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미술전시관 선돌입석마을 선돌 미술전시관에서는, 7월 31일까지 라는 주제로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 정도길

마을에서 나와 들길을 걷는다. 땡볕이 내리쬐지만 종착지인 악양생활체육공원이 눈앞이다. 드넓은 평사리 들녘에 소나무 두 그루가 마주한 채 다정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름 붙여진 부부송은 평사리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고단하고 행복한 삶의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다. 애처롭기도 하지만 사랑스러운 풍경이기도 하다. 무딤이들(평사리 들녘)에는 세 가지가 없다는, '3무(無)'가 있다. 전봇대, 전깃줄, 그리고 비닐하우스로 경관 훼손을 막고 자연생태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취지라 한다. 그러고 보니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는, 탁 트인 풍경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평사리 들녘 평사리 들녘에는 전봇대, 전깃줄, 그리고 비닐하우스 등 세 가지가 없어 탁 트인 풍경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평사리 들녘평사리 들녘에는 전봇대, 전깃줄, 그리고 비닐하우스 등 세 가지가 없어 탁 트인 풍경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 정도길

지리산둘레길 원부춘~대축 구간 8.5km를 5시간 10분에 걸었다. 이 구간은 시작점부터 급경사로, 다른 코스와는 달리 길이는 약 3~4km 짧지만 고난이도로 힘든 걸음이었다. 휴대폰 분실과 즉석 명품요리 그리고 입석마을 프로젝트와 작은 미술관 작품 감상이라는 에피소드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만 같다. 다음 주는 지리산둘레길 대축~서당 구간 13.4km 걸음이 예정돼 있다. 휴대폰을 찾아 나섰던 분은 끝까지 동참하지 못했다. 휴대폰이 주인을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 구간거리 및 소요시간(총 8.5km, 5시간 10분)
원부춘마을(09:20) ~ 윗재(11:50, 3.6km) ~ 점심시간(11:50~12:40) ~ 입석마을(13:50, 2.7km) ~ 대축마을(14:30, 2.2km)/ 8.5km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티스토리 블로그 <여행, 인생여정>에도 실립니다. 사진은 개인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지리산둘레길원부춘대축구간#마을미술관선돌#2023마을미술프로젝트#입석마을#평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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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289.4km 한 바퀴 토요걷기

여행, 인생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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