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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비 1억 3천만원을 들여 고향 마을인 손죽도 선착장에 이대원 장군 동상을 세운 이민식씨가 포즈를 취했다.
사비 1억 3천만원을 들여 고향 마을인 손죽도 선착장에 이대원 장군 동상을 세운 이민식씨가 포즈를 취했다. ⓒ 오문수

현충일(6일)에 지인들과 함께 손죽도를 방문한 일행 속에는 손죽도가 고향인 이민식(74세)씨가 있다. 손죽도 선착장에 배가 도착하면 맨 먼저 손님을 맞아주는 상징적 인물이 이대원 장군 동상이다. 높이 4.5미터인 동상은 이민식씨가 자비로 기증해 세워진 동상이다.

손죽도 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장군

이대원 장군은 평택에서 태어나 21세 때인 1586년 12월 녹도만호로 부임했다. 장군은 부임 이듬해인 1587년 2월 10일 경 왜구들이 배를 타고 흥양으로 침입하자 출병하여 왜구들의 목을 벤 수급을 들고 개선했다.

이대원이 당당히 개선하여 전라좌수사에게 수급을 바치자 좌수사 심암은 이대원의 전공이 탐이 났다. 왜구들이 재침하자 심암은 이대원에게 피로한 병사 100명을 주어 출전을 명령했다. 이대원이 심암에게 건의한 내용이다.

 이대원 장군 사당 앞에서 설명하는 이민식씨 모습
이대원 장군 사당 앞에서 설명하는 이민식씨 모습 ⓒ 오문수

"해가 저물었고 병력이 적으니, 병력을 규합하고 예기를 모아 날이 밝기를 기다려 싸우겠습니다."

앙심을 품은 심암은 허락하지 않았다. 적은 수의 피로한 병사들로 적을 이길 수 없음을 안 이대원 장군이 지원군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했다. 손죽도 해상으로 출전한 이대원은 박면 등 휘하 장수들과 함께 3일 동안 싸우다 사로잡혀 항복하라고 위협하는 왜구들의 요구를 거부하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에 일어난 손죽도 해전은 전라좌수영 수군으로 하여금 왜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전란에 대비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손죽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탑을 기증하고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이민식씨 모습
손죽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탑을 기증하고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이민식씨 모습 ⓒ 오문수

손죽초등학교 19회 졸업생으로 총동문회장이었던 이민식씨는 한참 때 350여호에 주민수가 1500여명이나 되었던 고향 마을에 주민이 줄고 학교가 폐교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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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대원 장군 성역화 사업과 화전놀이 문화사업을 꾸준하게 발전시킨다면 전라남도에서 실시하는 '가고싶은 섬'으로 지정되어 멋진 고향, 손죽도가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대원 장군 동상 건립에 나섰다.

수중구조와 수중 건설을 주로하는 해양산업대표였던 그는 정부의 부름을 받아 세월호 사건 때 민간 잠수사 16명과 보조원 포함 24명을 구성해 세월호 희생자 구조에 나서기도 했다.

대가로 받은 지원금을 의미있는 곳에 쓰자는 생각으로 이대원 장군 동상 건립 자금에 보탰다. 그는 사비를 들여 베트남 산 옥석으로 2015년 6월에 선착장 인근에 장군 동상을 세웠다.

 삼각산을 안내하던 이민식씨가 섬에 대해 설명하던 중 기념촬영했다.
삼각산을 안내하던 이민식씨가 섬에 대해 설명하던 중 기념촬영했다. ⓒ 오문수

 일행에게 멋진 집을 제공해준 이민식씨가 일행과 함께 기념촬영했다.
일행에게 멋진 집을 제공해준 이민식씨가 일행과 함께 기념촬영했다. ⓒ 오문수

손죽초등학교는 한 때 300명이 넘는 재학생이 있었지만 지금은 폐교됐다. 그는 학생이 1명 남았던 시절 학교에 100주년 기념탑을 세웠다. 폐교된 학교였지만 외관상 학교의 유지 보수를 위해 힘쓴 그는 "평생교육 차원에서 유능한 강사를 초빙해 마을 주민을 교육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마지막 목표는 북극과 남극 여행

진취적이고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30살에 세계 일주 계획을 세웠다. 그로부터 30년 후인 60살에 부인과 함께 이태리 사보나항을 떠난 배에 몸을 실었고, 100일만에 모항인 사보나항으로 돌아왔다.

그가 탄 크루즈선은 지중해를 출발해 대서양과 태평양, 인도양을 거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사보나항으로 귀항했다. 현재 자신의 여행기를 집필 중인 그의 마지막 목적지는 북극과 남극 여행이다.

 30세에 세계일주 계획을 세워 60세에 부인과 함께 크루즈 여행으로 꿈을 이룬 이민식씨가 여행기를 설명하고 있다.
30세에 세계일주 계획을 세워 60세에 부인과 함께 크루즈 여행으로 꿈을 이룬 이민식씨가 여행기를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이민식씨가 제공한 멋진 정원에서 식사와 함께 차담하는 일행들 모습
이민식씨가 제공한 멋진 정원에서 식사와 함께 차담하는 일행들 모습 ⓒ 오문수

점차 줄어드는 고향 주민수를 걱정하던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 나오시마를 모델로 문화공간을 구축해 손죽도를 떠나는 섬이 아닌 돌아오는 섬으로 만드는 게 꿈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이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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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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