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원 장군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한 일행들 ⓒ 오문수
현충일(6일)에 지인들과 함께 손죽도를 방문했다. 면적 2.92㎢, 해안선 길이 11.6㎞인 손죽도는 임진왜란 때 녹도만호 이대원이 전사한 곳으로 큰 인물을 잃어 크게 손해를 보았다고 하며 손대도(損大島)라 불리다가 1914년 손죽도로 개칭했다.
유적으로는 이대원 장군의 사당이 있으며, 주민들은 해마다 3월 3일에 장군을 기리는 제를 지낸다. 북서쪽 돌출부 끝에는 무인 등대가 있고 동네 앞에는 길이 1㎞되는 손죽해수욕장이 있다. 선착장 건너편에는 아름다운 삼각산이 있고 손죽마을 남쪽에는 이대원 장군이 진을 치고 방어하면서 봉화를 올렸다는 봉화산이 있다.

▲이대원 장군 사당 모습 ⓒ 오문수
손죽도 경기가 한창일 때는 352세대에 인구가 1500여 명에 달했고 학생 수가 300여 명이나 됐다. 지금은 100세대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며 300명이나 됐던 학교는 학생이 없어 3년 전 폐교됐다.
손죽도는 1월 평균기온 3.2℃, 연평균 기온 15.0℃, 연 강수량은 1,433㎜이다. 온대 해양성 기후로 아열대 희귀 식물의 서식처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눈이 내리지 않아 이국적인 식생을 볼 수 있다.

▲손죽도 모든 집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가꿔져 있었다. 아름다운 정원가꾸기 붐이 일었다는 주민의 얘기다. ⓒ 오문수

▲"정원에 심어놓은 꽃들이 몇개인지 세어보지 않았다"는 장윤희씨가 멋진 찻집을 꾸며놨다. 아름다운 정원을 구경하러 온 일행에게 장윤희씨가 커피를 대접하는 모습 ⓒ 오문수
그래서일까? 마을 집 정원에는 온갖 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동네 집 정원에서는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100여 개의 유인도를 돌아본 필자의 눈에는 정원 박람회를 여기서 열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죽도 출신인 이민식씨에게 "모든 집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워 깜짝 놀랐다"고 하자 "그래서 손죽도를 '가가호호 정원 마을이라고 부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점심을 먹은 후 손죽도 둘레길 탐사에 나섰다. 산죽이 울창해 낮에도 깜깜할 정도로 우거진 대나무 숲을 지나 데크길을 따라 산 정상에 오르니 지중해 카프리 해안과 같은 절경이 펼쳐졌다. 태평양에서 휘몰아치는 강풍과 파도에 맞아 자연스럽게 형성된 멋진 해식애 모습이다.
그런데 소거문도와 평도, 광도가 보이는 전망대에 오르니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이 보였다. 보수 안 된 데크가 무너져 있어 잘못하면 인명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장면이다.
일행은 '지지미' 언덕에 있는 정자에 올라 잠깐 쉬며 이민식씨로부터 손죽도에 전해오는 화전놀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손죽도에서는 음력 3월 3일 삼짇날 화전놀이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여수 지역에서는 이 무렵 쯤 화전(花煎)을 부쳐 먹기 때문에 지져먹는다는 뜻으로 '지지미'라고 하는 데 꽃전의 다른 이름인 '지지미'가 지명이 된 것이다. 화전놀이가 열리면 남녀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끼리끼리 먹고 마시면서 즐기다가 해질 무렵에 남정네들은 농악을 울리면서 마을로 내려와 대갓집 마당에서 밤새 뒤풀이를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한글 지명을 가진 섬 손죽도
'독 보듬고 돈디', '배 찡긴디', '택걸이'
손죽도에는 재미있는 지명을 가진 곳이 여러 개 있다. '독 보듬고 돈디'는 바위로 이루어진 해안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독(돌, 바위)을 안고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데크가 부서져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전망대 모습 ⓒ 오문수

▲지중해 카프리 섬을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해변 모습 ⓒ 오문수
'택걸이'는 절벽이 심하여 독을 보듬는 정도로는 건널 수가 없고 턱을 바윗돌에 괴고 두 손으로 바위를 붙잡고 건너는 곳이라는 뜻이다. '배 찡긴디'는 지나가던 배가 바위 사이에 끼인 사건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꽃을 심었어요"
발전소 뒷길을 돌아 삼각산을 오르려는 데 길가에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염소들이 꽃을 뜯어먹는 걸 막기 위해 어망으로 둘러쳐진 울타리 앞에 '샤론의 꽂길'이란 팻말이 보였다. 잡초와 나무로 우거져 있던 도로변을 꽃길로 만든 이분조 여사를 만나 꽃길을 조성한 사연을 들었다.
경주가 고향인 그녀는 서울에서 살다가 물좋고 공기 좋은 손죽도로 귀촌해 26년째 살고 있다. 절망에 빠져 있다가 7년 동안 성경을 완독한 그녀는 깨달음을 얻어 꽃을 심기 시작했다. 그녀가 심은 꽃에는 수국, 장미, 동백, 모란, 꽃양귀비, 금계국, 작약, 달맞이꽃 등이 있다.
손죽도를 방문한 배낭족들이 "여기는 염소똥 때문에 다시 못 올 곳"이라는 얘기를 들은 그녀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꽃밭을 가꾸기로 했다. 그녀는 염소 주인들의 협조를 받아 염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삽목을 시작했다. 곡괭이도 3개나 부러뜨렸다.
큰 돌을 옮기며 페트병으로 물을 나르는 걸 본 발전소 직원들이 트럭을 이용해 물을 배달해주기도 했다. 서울에서 살던 그녀가 손죽도에 정착하게 된 사연을 들었다.

▲서울에서 살다 손죽도에 귀촌해 삼각산으로 가는 길 도로변을 꽃밭으로 가꾼 이분조씨 모습 ⓒ 오문수
"서울에 살면서 회사에 투자했는데 IMF 때 부도가 나자 옆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더라고요. 세상이 허무해져서 자살을 생각하던 중 <죽음에 이르는 병> 책을 읽어보니까 '당신도 마귀처럼 변했군요. 절망하고 있는 마귀보다 더 보기 싫은 마귀는 없다'라는 문장을 읽고 내 속에 있는 마귀한테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으며 하느님의 사랑을 만났고 새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감사한 마음이 생기면서 꽃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손죽도 해식동굴 모습 ⓒ 박근세

▲삼각산에서 바라본 일몰 모습 ⓒ 오문수
"천국은 하늘나라에도 있지만 내 마음속에 천국이 이뤄져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는 그녀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