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다로운 유럽의 식품 안전성을 설명하는 UPEMI 관계자지난 8일 고양특례시 소노캄 호텔에서 열린 'EU Good Food' 프레스 이벤트에서 폴란드 육류 산업 생산자 및 고용주 연합(UPEMI) 대표가 유럽산 돈육 및 우육의 우수성과 엄격한 위생 기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고양e뉴스
"삼겹살 1인분 2만 원은 이제 기본이죠. 장사하는 입장에서도 손님들 눈치가 보여 국내산만 고집할 수가 없습니다."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52)씨의 한숨 섞인 토로다. '국민 외식 메뉴'로 불리던 삼겹살마저 금값이 되면서 지갑이 얇아진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고물가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외식업계와 가정의 밥상에는 가성비를 내세운 수입 농축산물들이 빠른 속도로 파고드는 추세다.
이러한 물가 대란의 틈새를 노리고 유럽연합(EU)이 한국 식탁을 향한 거센 공세에 나섰다. 지난 8일 고양특례시 일산동구 소노캄 호텔에서는 유럽연합이 자금을 지원하는 'EU Good Food' 프레스 이벤트가 열렸다. 단순한 홍보를 넘어, 거대한 자본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수입 농축산물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경제적 포석이 깔린 자리였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엄격 통제"... 자신감 넘친 유럽연합
'EU Good Food - Good Life' 캠페인은 2024년부터 2027년까지 한국과 베트남을 타깃으로 진행되는 3년짜리 대형 프로젝트다.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육류 산업 생산자 및 고용주 연합(UPEMI)'과 그리스 이마티아(Imathia) 지방의 8개 과일 생산 조직이 뭉친 '이마티아 농업협동조합 협회(ASIAC)'가 컨소시엄을 이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핵심 경쟁력은 가격 이전에 '안전성'과 '전통'이다. 이날 과일 부문 발표자로 나선 스텔리오스 판텔리디스(Stelios Pantelidis) ASIAC 프로젝트 매니저는 그리스 북부 이마티아 지역의 100년 복숭아 재배 역사를 강조했다.
그는 주요 발언을 통해 "이마티아는 그리스의 통조림 복숭아 수출 리더십의 중심에 있습니다. 세대를 이어온 전문성과 협동조합, 가공 시설 간의 긴밀한 협력이 결합된 결과입니다"라며 "수확 후 단 몇 시간 만에 가공 및 보존되어 천연의 맛과 영양, 신선도를 그대로 가둬둡니다"라고 제품의 차별성을 강하게 어필했다.

▲그리스산 과일의 경쟁력을 설명하는 ASIAC 측스텔리오스 판텔리디스 매니저가 그리스 과일의 철저한 이력 관리와 수출 현황을 경제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 고양e뉴스
폴란드산 육류를 대표해 나선 UPEMI 측 역시 동물 복지와 위생을 강조했다. 유럽연합은 2004년 도입된 '위생 패키지'를 통해 재배, 도축, 유통 전 단계에서 자체 모니터링을 강제하며, 사료 내 항생제 및 합성 성장 촉진제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홍보는 '유럽산', 식탁 위엔 '호주·캐나다산'... 현실적 유통의 벽
하지만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던 만찬 테이블에서는 촌극이 벌어졌다. 유럽산 식재료의 우수성을 직접 입증하겠다며 제공된 코스 요리 메뉴판에는 '유럽산 목살구이', '유럽산 안심 스테이크' 등이 버젓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결과, 실제 만찬 테이블에 오른 돼지고기는 '캐나다산'이었으며 메인 요리인 안심 스테이크는 '호주산' 소고기였다.
대대적인 자금을 투입해 폴란드산 우육과 돈육의 수입을 장려하는 국제 행사에서 정작 제3국의 고기를 대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진행상의 실수가 아니라, 현재 수입육 유통 시장이 가진 구조적인 한계와 진입 장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무리 현지에서 질 좋고 저렴하게 생산된다 한들, 깐깐한 국내 수입 검역 절차를 통과하고 외식 업장까지 대량으로 납품할 수 있는 B2B(기업 간 거래) 유통 물류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소비자의 식탁에 오를 수 없다는 경제적 현실을 증명한 셈이다. 특히 폴란드산 소고기는 검역 문제 등으로 수입이 제한적이었던 터라 유통망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보여준 메뉴판메뉴판에는 '유럽산 목살구이', '유럽산 안심 스테이크' 등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실제 만찬에 제공된 고기는 각각 캐나다산과 호주산으로 확인되었다. 수입 유통망 확보의 현실적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 고양e뉴스
'서울푸드 2026'서 B2B 돌파구 모색... 시민들 "가성비 좋다면 환영"
이러한 유통의 벽을 넘기 위해 유럽 연합은 9일부터 12일까지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아시아 4대 식품산업 전시회 '서울푸드 2026'에 대규모로 참가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번 서울푸드 박람회는 총 49개국에서 1,800개사가 참여해 3,400개 부스를 꾸린 역대 최대 규모다. 행사 개막식에서 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서울 푸드 전시회는 음식을 매개로 서로의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자리"라며 "오늘 세계의 코드를 체험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더 확대해 나가길 바란다"고 축사를 전했다.
EU 굿푸드 캠페인 측 역시 이 박람회에 4C701 부스를 마련하고 46건 이상의 집중적인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하며 국내 수입업체 및 유통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실용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양시 덕양구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43) 씨는 기자의 질문에 "유럽이 동물복지나 항생제 규제가 엄격하다는 건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며 "물가가 너무 올라서 한우나 한돈만 고집하긴 어렵다. 무항생제에 철저한 관리를 거친 수입육이 합리적인 가격에 마트에 풀린다면 안 먹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높은 물가라는 파도를 타고 한국 시장의 문을 강하게 두드리고 있는 유럽산 농축산물. '안전성'이라는 무기는 갖췄지만, 견고한 기존 수입육 시장(호주·미국·캐나다산)의 점유율을 뺏고 안정적인 유통망을 구축하는 것이 이들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으로 남았다.

▲전방위적인 홍보 공세굿푸드 캠페인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버스 정류장 옥외 광고, B2B 간담회 등을 통해 한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 고양e뉴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비자의 밥상 물가와 직결되는 수입 농축산물 시장의 변화를 짚어보기 위해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홍보 행사 이면에 있는 실제 유통 구조의 한계점과 경제적 파급력을 시민의 시각에서 전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