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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10대 청소년 자살예방 범정부 추진 대책을 브리핑하고 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10대 청소년 자살예방 범정부 추진 대책을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부가 청소년 자살 예방 대책을 발표했다. 배경은 충격적이다. 10대 청소년 자살 사망자는 2016년 273명에서 2025년 396명으로 늘었다. 10년 사이 45.1% 증가한 것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청소년 자살률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관련기사: 청소년 자살 10년간 45% '급증', 재탕 대책? "죽음의 경쟁교육 고쳐야" https://omn.kr/2imwi).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대책이 낯설지 않다는 데 있다. 교육부가 내놓은 것은 새로운 진단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반복되어 온 '위기 학생 조기 발견, 상담, 치료 연계' 체계를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청소년 자살 예방 5대 전략은 예방, 감지, 개입, 회복, 기반 조성이다. 특히 '개입' 대책에는 위클래스 설치와 공간 재구조화, 위센터 기능 고도화, 모든 학교 전문상담인력 배치, 마음바우처, 병원형 위센터, 청소년 전용 병동·병상 확충이 포함됐다. 겉으로는 그럴듯하다. 위험한 학생을 빨리 찾고, 상담하고, 치료로 연결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

왜 학교 지원 체계가 확대됐는데도 청소년 자살은 줄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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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 학교는 이미 학생 정서·행동특성검사, 관심군 선별, 위클래스·위센터 연계, 정신건강 치료비 지원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그러나 그 방식은 청소년 자살 증가를 막지 못했다. 그 사이 10대 청소년 자살 사망자는 45.1% 증가했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책 발표가 아니다. 실패의 점검이다. 왜 학교 정신건강 지원 체계가 확대되었는데도 청소년 자살은 줄지 않았는가. 왜 학생을 더 빨리 찾아내고, 더 많이 상담하고, 더 많이 치료로 연결했는데도 아이들은 더 많이 죽어갔는가.

교육부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같은 처방을 더 큰 규모로 반복하겠다고 한다. 2023년 학생 정서·행동특성검사를 받은 초중고생 173만여 명 중 4.8%인 약 8만 명이 '관심군'으로, 1.3%인 약 2만 명이 '자살위험군'으로 조사됐다는 국정감사 자료도 공개된 바 있다. 학교가 이미 상당한 규모로 학생을 정신건강 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2030년까지 모든 학교에 전문상담인력을 100% 확보하겠다고 했다. 위기학생 조기 발견, 마음건강 실태조사, 학생 자살 심리부검, 상담 기록 표준화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 흐름은 분명하다. 교육부 대책 안에서 학교는 아이를 이해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를 분류해 넘기는 곳이 된다. 학생을 교육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선별하고, 기록하고, 상담하고, 치료기관으로 연계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청소년 자살 예방 대책이라기보다 학교 교육의 외주화다. 교육부 대책의 행정 언어에는 학생의 삶이 없다. 있는 것은 위험군, 조기 발견, 상담 기록, 연계, 병상뿐이다. 학생은 학교 안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아니라, 발견되어야 할 위험 신호가 되고, 분류되어야 할 관심군이 되고, 연계되어야 할 치료 대상이 된다.

이런 정책의 마음은 낯설지 않다. 저출산 문제를 출산장려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과 닮아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의 불안, 관계, 일자리, 주거, 삶의 전망은 제대로 묻지 않은 채 "돈을 더 주면 낳겠지"라고 생각하는 행정의 습관 말이다.

학생이 아니라 관리 대상, 이것이 학교의 병원화

청소년 자살 대책도 비슷하다. 아이가 왜 자기 삶을 더 이상 살아낼 수 없다고 느끼는지 묻기보다, "상담비를 지원하고 병상을 늘리면 해결되겠지"라고 믿는다. 마치 삶의 절망도 영수증 처리가 가능한 항목처럼 보는 셈이다.

물론 위급한 학생에게 치료와 보호는 필요하다. 이 점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치료는 마지막 안전망이어야 한다. 학교 교육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가 해야 할 일을 병원과 외부기관으로 넘기면서 그것을 '대책'이라고 부르는 순간, 학생은 학생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된다. 이것이 학교의 병원화다.

학교의 병원화란 학교 안에 상담실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상담교사가 배치된다는 뜻도 아니다. 학생의 고통을 삶과 관계와 배움의 문제로 읽지 않고, 정신건강 위험 신호로 처리하는 사고방식이다.
아이가 울면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니?"라고 묻기보다 정서 문제로 기록한다. 아이가 멈추면 "무엇이 너를 이렇게 멈추게 했니?"라고 묻기보다 기능 저하로 본다. 아이가 학교를 힘들어하면 학교생활을 살피기보다 외부기관 연계를 먼저 고민한다.

청소년 자살 문제를 두고 "죽음의 경쟁교육이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중요한 지적이다. 입시경쟁과 성적 압박은 아이들을 몰아붙인다. 그러나 그 말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학생을 환자로 보는 것도 문제지만, 학생을 단지 경쟁교육의 피해자로만 보는 것도 부족하다. 두 접근 모두 아이가 자기 삶에서 어떤 기준과 믿음으로 무너졌는지를 묻지 않는다.

아이는 시험 하나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시험 실패가 곧 자기 존재의 실패가 되는 순간 무너진다. 부모의 기대, 친구 관계, 성적 경쟁 자체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 안에서 굳어진 믿음이다. "실패하면 끝이다", "기대에 못 미치면 사랑받을 수 없다", "밀려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학교가 읽어야 할 것은 바로 이 마음의 구조다.

그런데 교육부는 학교가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기보다, 학교 밖 치료 체계를 더 촘촘히 만드는 데 집중한다. 마음바우처는 병·의원, 상담센터, 검사비, 약제비, 입원비, 심리치료비 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학생의 마음 문제를 학교 안 교육상담의 책임이 아니라 치료비 지원과 외부기관 이용의 문제로 전환하는 셈이다.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은 오래된 경고다. 2024년 9~24세 청소년 사망원인 1위도 자살이었고, 2011년 이후 14년째 1위로 집계됐다. 청소년 인구와 전체 사망자는 줄어드는데 자살 문제는 여전히 가장 심각한 사망 원인으로 남아 있다.

정책 실패부터 인정해야

그렇다면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더 많은 선별, 더 많은 상담 기록, 더 많은 병원 연계를 말하기 전에 지난 정책의 실패부터 인정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학교 정신건강 정책은 선별·상담·치료 연계 중심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그 방식은 청소년 자살 증가를 막지 못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이 실패를 검토하지 않고 같은 처방을 더 크게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예방이 아니다. 책임 회피다.

청소년 자살 예방의 출발점은 병상 수가 아니다. 학생을 다시 학생으로 보는 학교다. 교사는 진단자가 아니고, 학교는 병원이 아니며, 상담은 위험도 평가가 아니다. 학생의 아픔은 병명으로 번역되기 전에 삶의 언어로 읽혀야 한다.

교육부가 정말 청소년 자살을 줄이고 싶다면, 병원형 위센터와 병상 확충을 말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학교는 아이의 삶을 읽고 있는가. 교사는 아이의 흔들림을 교육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가. 교육부는 학교가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책임지고 있는가.

청소년 자살 예방은 아이를 더 빨리 위험군으로 분류하는 일이 아니다. 학교가 아이의 삶을 읽는 책임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 책임을 병원과 외부기관에 넘기는 한, 그 대책은 예방이 아니라 외주화된 관리일 뿐이다.

#학교교육의외주화#학교의병원화#청소년자살대책#외주화된관리#교육부의자살책임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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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민 (swhang) 내방

심리학자이자 심리상담사. WPI 심리상담 모델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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