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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멕시코 오악사카에서 만난 테레사(Teresa)는 열아홉 살에 인도를 떠나 17년째 국경과 정체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온 인도계 캐나다인이다.

그녀의 말 속에는 1970년대 한국인들이 감내하며 지나온 시대의 풍경과 닮은 점이 많았다. 여성을 옭아매는 인도의 인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녀는 인도 밖에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겠다는 꿈을 품었고, 생선 가게를 운영하던 가난한 부모는 대출받아 딸의 모험과 도전을 뒷받침했다. 그렇게 그녀는 신경과학 박사가 되었다. 물가 높은 영국과 캐나다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 아르바이트와 공부의 무게를 동시에 짊어진 채 학위를 손에 쥘 때까지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제 삼십 대 중반,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할 시점에도 부담은 가시지 않는다. 개인의 행복을 찾는 일, 인도 가족을 경제적으로 돌봐야 하는 일, 그리고 더 큰 부를 향한 욕망이 지배하는 북미의 직장 생활 사이에서 그녀는 여전히 갈림길에 서 있다. 그 사이에서 그녀는 물리적 대안과 심리적 깨우침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고민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테레사는 영국에서 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11년째 사는 신경과학 박사다. 2개월째 멕시코 여행 중인 그녀와 브런치를 함께했다.

늘 함께하는 걸 좋아하는 멕시코

지난 6월 5일, 전날 내린 비로 청명해진 하늘 아래, 호스텔 옥상에서 삼십대 인도계 캐나다 여성 테레사 씨와 브런치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탐험했다. 그녀가 도전하고 감당해온 이야기는, 우리나라 1960~70년대 상경한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월급을 고향으로 송금하던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지난 6월 5일, 전날 내린 비로 청명해진 하늘 아래,호스텔 옥상에서 삼십대 인도계 캐나다 여성 테레사 씨와 브런치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탐험했다. 그녀가 도전하고 감당해온 이야기는, 우리나라 1960~70년대 상경한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월급을 고향으로 송금하던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 이안수

"엄밀히 말하면 일하는 중이에요. 1년에 2달 혹은 3달은 이렇게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어요. 인터넷만 연결되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원격근무인 셈이죠. 하지만 멕시코만 오면 제 고향에 온 듯 편안해서 객지에서 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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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녀가 멕시코를 찾은 것은 10년 전이라고 했다. 그때 바로 멕시코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인도와 문화가 너무나 닮았어요. 공동체가 우선이고 나눔을 소중히 하고 늘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서 고향이 느껴졌어요. 인도나 멕시코나 아주 오래 정복당한 세월을 살고도 여전히 주려는 사람들의 나라죠."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가 멕시코를 다섯 번 다시 찾아온 것도 그녀가 말한 그런 정서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체류 연장을 위해 국경을 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이, 이 나라는 자꾸 우리를 붙잡았다.

"이번 방문에서도 이미 4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우리를 놓아주지 않아요. 마음에 두고 있는 곳만 방문해도 몇 개월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그래서 6번째 방문이 필요할 것 같아요."

테레사의 부모는 글을 읽지 못했다. 딸의 교육에 무관심한 것이 인도 사회의 관행이었음에도, 그녀의 부모는 딸의 배움에 대한 열망에 어떻게든 함께하고 싶어 했다. 덕분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동물학을 공부하다 유전학으로 옮겼고, 영국으로 건너가 석사를 했다. 아버지가 대출을 받아 학비를 댔다. 그녀도 영국의 물가를 감당하려면 공부와 함께 일을 해야 했다. 파트타임으로, 생활비를 벌며 석사를 마쳤다. 박사과정을 위해 캐나다로 건너갔다.

그때부터는 한 가지 일이 더 늘었다. 학비와 생활비에 인도의 가족에게 송금까지 해야 했다. 부모님의 벌이로는 대출상환에 두 동생의 학비까지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내내 쉬어본 기억이 없었다.

19세에 홀로 영국으로 떠난 여성이 36세가 되어 오악사카의 우리 곁에 있었다. 어떻게 홀로 영국으로 떠날 용기를 냈는지 물었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원래 맨손으로 떠났으니 실패해서 맨손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억울한 건 없잖아요. 무엇보다도 내게 어려운 것은 이 모든 결정을 나 혼자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유학이나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거예요. 부모님의 사랑 어린 걱정에 내가 방법을 찾아내겠다고 부모님을 안심시켜야 했어요."

일뿐만 아니라 삶의 여유도...

그녀는 곧 몬트리올을 떠나 샌디에이고로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스키도 타고 스케이팅도 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추위가 두려워진다고 했다. 샌디에이고에는 박사과정을 함께 했던 좋은 친구가 있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멕시코 사람들도, 멕시코 음식도 있다. 더구나 곁에 두고 싶은 멕시코까지는 삼십 분이면 닿을 수 있다. 샌디에이고에서 5년을 보내고 아시아로 향할 계획이란다.

"하지만 인도는 아니에요. 지금은 아니고 은퇴 후에나 가능할 것 같아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거든요. 물론 인도도 가능할 수 있어요. 인도가 지금 많이 변하고 있으니까요. 혹시 회사를 차리게 되면 인도로 갈 수도 있겠죠. 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없어요. 인도의 가족과 시차가 12시간이나 나서 가족과 전화 통화조차 불편한 곳 대신, 그리고 북미에서 일하기는 아주 좋지만 그래서 일만 하는 삶 대신, 아시아 어느 곳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싶어요."

테레사는 예전에는 큰 계획을 세우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더 유연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따를 예정이다.

"예전에는 계획을 세우면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좀 달라졌습니다.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제 손에 달린 게 아니라는 걸 알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하고 싶은 걸 그냥 먼저 하고 봅니다. 만약 안 되면, 안 되는 거죠."

자리에서 일어설 때 그녀가 이름과 함께 연락처를 주었다.

"아버지가 고아에서 생선 가게를 하고 계세요. 바닷가 마을이에요. 언제든 인도에 가신다면 연락 주세요. 도움이 필요하다면 잘 아는 이웃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하셔도 좋아요. 고아에 가시면 바다도 있고, 아버지가 고른 싱싱한 생선도 있고, 아쉬람도 있어요."

그녀는 힌두교도가 대부분인 나라에서, 가톨릭 3세대로 태어났다. 조부모가 배고픔 때문에 수녀원 문을 두드렸고, 수녀들이 내민 밥 한 그릇으로 인연이 시작됐다고 했다. 그렇게 가족이 개종했고, 그 이름이 그녀에게 왔다고 했다. 아낌없이 주었던 그 사람의 이름이었다.

테레사는 인도의 인습에 맞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온 사람이었다. 부모는 가진 것 전부로 딸의 도전에 함께 달렸고, 그녀는 성취의 무게와 가족의 기대를 동시에 지면서 낯선 땅 위에 자신의 삶을 일궈왔다.

이제 그녀에게 '일만 하는 삶 대신, 아시아 어느 곳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싶다'는 아주 당연한 소망이 그녀의 것이 되기를. 인도에 우리를 기다리는 생선 가게가 하나 있다고 생각하니 세계가 한 마을같이 다정해진 느낌이다. 언젠가 그녀 아버지의 생선가게가 있는 바닷가를 그녀와 함께 걷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도전#인도#캐나다#오악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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