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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참 좋지?"

캠핑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손자 로리가 툭 던진 한마디였다. 그 해맑은 물음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손자 로리가 캠핑 이야기를 꺼낸 건 꽤 오래전이었다. 다섯 살 아이의 세상은 늘 새로운 탐험의 무대였고, 그 무대 중 하나가 숲속에서의 하룻밤이었을 테다. 하지만 어른들의 시간은 아이의 시간과 속도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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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엄마와 아빠는 바빴고, 주말마다 크고 작은 일정이 쉼 없이 생겨났다. 아이는 기다렸고, 캠핑은 자꾸 뒤로 밀렸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아이의 '지금'을 의도치 않게 '내일'로 미루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처럼 시간이 났다. 우리는 지난 6월 초순, 충북 제천 월악산 자락의 작은 캠핑장으로 향했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계곡물이 흐르고 숲이 짙게 드리워진 곳에 도착했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자연 속에 몸을 던져 하루 이틀 쉬다 오자는 마음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

 캠핑장에서의 하루가 행복한 아이
▲캠핑장에서의 하루가 행복한 아이 ⓒ 신혜솔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들과 며느리는 텐트를 치기 시작했고 나와 로리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뜰채를 든 작은 손으로 송사리 떼를 쫓는 모습이 마냥 즐거워 보였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고기들과 밀고 당기는 시간 속에 아이의 웃음소리가 물살처럼 번졌다. 우리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평평한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 이렇게 앉아서 바라보니까 하늘이 참 멋지지 않아?"

로리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월악산 자락의 하늘은 넓고 깊었다. 산등성이가 겹겹이 두른 풍경 너머로 펼쳐진 파란 도화지는 오랜만에 막혀 있던 내 마음까지 시원하게 열어 주었다. 나는 로리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 어릴 적엔 저런 산을 보며 늘 궁금했단다. 산 뒤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저 꼭대기에 올라가서 산 뒤를 내려다보면 멋진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늘 그런 생각을 하며 산을 바라보았지."

로리는 한동안 산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우리는 하늘에 펼쳐진 구름을 구경했다. "저 구름은 뭐 같아?"라는 나의 물음에 아이는 "양털 같아"라고 답했다. 나는 "할머니 눈에는 강아지 같은데?"라며 웃었다. 같은 하늘을 보면서도 각자의 마음속에 다른 풍경을 그리는 일이 신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그런데도 그 시간만큼은 무엇보다 풍성하게 느껴졌다.

메마른 마음을 적셔준 시간

다음 날 새벽, 닭 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텐트 밖으로 나오자 숲은 새들의 합창으로 가득했다. 멀리 산 쪽에서는 재두루미 한 마리가 우아하게 물가로 날아와 내려앉았다. 새벽 하늘은 차갑고도 푸르렀다. 하얀 반달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한동안 새벽 풍경 속에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늘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살아왔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고, 시간은 늘 부족했다. 하루를 쪼개 쓰면서도 정작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여유를 잊고 지냈다. 그런데 그 새벽의 정적이 촉촉하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오랫동안 메말라 있던 마음을 적셔 주는 것 같았다.

삶의 여유란 이런 시간을 품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소리를 듣고, 하늘을 바라보고,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어쩌면 이런 순간들이 무너져가는 삶을 지탱하게 하는 가장 단단한 힘인지도 모른다. 자연은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나는 그동안 너무 먼 행복을 찾고 있었다.

들꽃 이름을 아는 아이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주인장의 권유로 보리수를 따러 갔다. 붉게 익은 보리수가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한 바구니 가득 보리수를 따며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집에 돌아가면 여름 음료로 좋은 보리수청을 담글 생각에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로리는 그 시간에도 신이 났다. 캠핑장 주인의 손녀와 금세 친구가 되어 들판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둘은 "나 잡아 봐라"를 외치며 질주하고, 이름 모를 작은 꽃 앞에 멈춰 서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이건 애기똥풀꽃이야."

주인집 손녀가 말했다.

"이건 개망초꽃이야."

로리도 지지 않았다. 들꽃 이름을 부르는 두 아이의 모습이 들꽃처럼 순수하고 예뻤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려 애쓴다. 하지만 자연은 아이들에게 이미 충분한 교실이 되어 주고 있었다. 꽃 이름을 배우고, 곤충을 관찰하고, 처음 만난 친구와 눈을 맞추며 뛰어노는 일. 그 모든 것이 가르침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연을 통해 이미 세상을 읽고 있는 듯 했다.

캠핑장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아쉬움이 밀려왔다. 로리는 버들치를 잡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다음에는 꼭 물고기 잡는 도구를 챙기자고 다짐했다. 캠핑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보리수 나무야, 안녕!" 하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참 따뜻했다. 주인장 부부와도 다음 추석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로리가 창밖을 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할머니, 자연은 참 좋지?"

그 말에 차 안 가득 웃음이 번졌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삶의 질을 이야기할 때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많은 물질적 편의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그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캠핑을 통해 나는 다시 깨달았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비싼 무언가가 아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 계곡물 소리를 듣는 시간, 들꽃의 이름을 불러주는 아이들, 그리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월악산 자락에서 보낸 1박 2일은 그런 것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캠핑#자연#월악산#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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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육아와 놀이,그리고 삶

사람과 풍경 사이에서 이야기를 찾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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