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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지인 중 유난히 살가운 딸이 있는 집들이 있다. 출근한 엄마에게 '점심은 먹었냐, 힘든 일은 잘 정리됐냐' 카톡을 보내는 지인 딸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물론 딸같이 살가운 아들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제 성인이 된 자식이 지인들의 자녀와 비교될 때가 있다.

딸이 자라는 동안 늘 나는 직장에 있었다.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두 달이 끝나고 바로 복직해 퇴직할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던 워킹맘이었다. 직장 생활과 살림으로 늘 바빴던 탓에 아이는 일찌감치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해야 했다. 유치원에 늘 가장 먼저 등원해 제일 마지막에 하원하고, 학교 다닐 때 준비물이 빠진 게 있으면 혼자 문구점에 가 사서 등교하곤 했다.

서른이 된 딸은 지금도 여덟 살 때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오후 시간에 집 근처 미술학원을 다닐 때다. 학원에 아이마다 간식 지갑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간식 지갑에 돈이 있어서 학원 선생님이 동전을 꺼내서 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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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받은 아이들이 근처 문구점에 가 과자를 사 먹곤 했는데 그때 동전을 받아 과자를 사러 가던 친구들이 참으로 부러웠단다. 나는 학원에 간식 지갑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 왜 말을 하지 않았어"라고 하니 "왠지 엄마한테 돈 얘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았어"라고 했다. 그렇게 일찍 철이 들어버린 딸이기에 어쩌면 성인이 된 지금도 엄마에게 살갑게 굴지 않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때 일하랴 살림하랴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바빴지만, 늘 딸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엄마로서의 최선과 딸에게 엄마의 부재는 다르다. 엄마인 나는 딸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 청춘을 바쳐 일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일찍 철들고 혼자 있었던 딸에 대한 미안함이 채우고 있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된 지금도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고 주고 싶다. 하지만 나의 이런 노력에도 딸은 여전히 이웃의 살가운 딸과는 거리가 멀다.

서른 된 딸의 기억 속 주말 오후

 투박하고 무덤덤해도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귀한 딸
투박하고 무덤덤해도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귀한 딸 ⓒ 김희

지난 6일, 집 근처에 양귀비 꽃밭이 있어 딸과 다녀왔다. 하남 미사경정공원 근처였는데 초여름의 싱그러운 잔디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붉은 양귀비꽃이 소담스럽게 피어있었다. 주변의 초록빛과 붉은 꽃, 푸른 하늘의 색깔 대비가 참으로 선명하고 예쁜 오후였다. 주말이라 텐트를 치거나 돗자리를 깔고 여유를 즐기는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다정한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딸이 어렸을 때 가끔 이 공원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주말 오후를 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중에는 늘 시간에 쫓겨 아이들과 보내기 어려우니 주말이라도 아이들에게 바람을 쐐주고 싶어 찾던 곳이었다.

그 시절을 추억하며 미소 짓고 있는데 딸이 옆에서 한마디한다. "엄마, 여기 기억나? 여기 우리 자주 왔잖아. 김밥 싸고 샌드위치는 와서 만들어 먹고, 자전거도 타고 그랬잖아." 늘 바빠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을 안고 있는데, 서른이 된 딸의 기억 속에 가족들과 와서 놀던 주말 오후가 남아 있었다.

잔디밭에 다정하게 앉아 있는 가족을 보며 딸은 덤덤하게 옛날 추억을 말하고 있었다. 순간, 며칠 전 딸이 내게 차갑게 던진 잔소리가 생각났다. "엄마는 이게 맞다 싶으면 절대 남의 말을 안 들어. 그게 문제야."

그날 던진 딸의 말에 며칠을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으로 있었던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푸른 나무와 붉은 양귀비꽃밭을 앞에 두고 어린 시절 주말 오후를 고스란히 기억하는 딸과 추억을 소환하며 서운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엄마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딸이 자신의 말에 엄마가 혼자 오해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까 외출을 제안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당당하게 마주했으면

딸은 지인의 딸들처럼 살갑거나 다정한 애교는 없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엄마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지인의 살가운 딸이 아무리 부러워도 내 딸이 남의 집 딸이 될 수 없고 남의 집 딸이 내 딸이 될 수 없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걸 알면서도 왜 자꾸 살가운 남의 집 딸과 내 딸을 비교해 서운한 감정을 담고 있었던 걸까.

양귀비꽃밭을 걸으며 두런두런 나눈 대화 중에 일하는 동안 아이와 함께하지 못했다는 부재에 대한 미안함의 시간을, 딸은 이미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주말이면 엄마 아빠가 짬을 내 함께 뛰어놀던 잔디밭에서의 기억으로 혼자 스스로 단단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온 것이었다.

표현의 온도와 방식이 다를 뿐, 워킹맘으로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를 딸이 인정해 주었듯, 투박하긴 해도 엄마가 상처받았을까 봐 무심하게 챙기는 내 딸의 방식을 그대로 인정해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 나 사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다정하게 안아주고 어르지 못했어도, 제 자리에서 굳건히 잘 자라준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잘 자라줘서 고맙고 사랑한다.

지금도 직장과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수많은 워킹맘이 떠오른다. 나의 지난 31년 워킹맘 시절을 견주어볼 때 자녀에게 늘 죄인 같은 미안한 부채감을 마음에 담고 있을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다.

엄마의 부재가 자식에게 결핍으로 남을까 두렵고 미안하겠지만 내가 겪어보니,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니,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강하다. 엄마가 직장에서 치열하게 최선을 다하는 뒷모습을, 자녀는 자신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엄마를 인정한다는 거다. 그러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당당하게 마주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미사경정공원#양귀비꽃밭#워킹맘#딸#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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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noheene) 내방

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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