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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세석평전의 구상나무 군락지
지리산 세석평전의 구상나무 군락지 ⓒ 주간함양

(기사수정 : 16일 낮 12시 3분)

영원히 늙지 않는 곳.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아이로 살면서 끝없는 모험과 상상을 이어갈 수 있는 '네버랜드'는 동화 <피터팬>에 등장하는 환상의 섬이다. 지리산 자락 함양에서 동화 같은 삶을 꿈꾸는 3명의 청년이 재미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생에 지친 사람들에게 지리산이 '네버랜드'가 되길 바라는 이들은 동화 속 하이디처럼, 알프스 대신 지리산과 대자연의 품을 사람들과 함께 누비고 싶다.

숲에서 노는 인간 '호모 루덴스 인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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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의 농촌문화기획자 양성과정에서 만난 김아라(39), 최윤아(37), 온유경(35) 씨는 최근 '지리산 네버랜드'라는 이름으로 자연과 사람을 잇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유희(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호모 루덴스라는 말에 '숲'을 가미해 '숲에서 노는 인간, 호모 루덴스 인 포레스트(Homo Ludens in Forest)'를 지향점으로 뒀다. 자연이 주는 회복과 치유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5월 2일 해발 1500m 세석평전에서 '지리산 하이디 원정대 제1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환경·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백년숲사회적협동조합이 주관하고,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한국여성재단이 운영하는 '여성 기후돌봄 지원사업: 기후 살림 메이커스'의 하나로 진행됐다. 이 사업은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생명과 삶을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돌봄 활동에 주목하고, 그 책임과 부담을 공정하게 나누는 성평등한 기후돌봄의 확산을 목적으로 한다.

백년숲은 이러한 취지에 따라 자연을 돌보는 일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돌보는 일로 이어지도록 '지리산 하이디 원정대'를 운영했다. 기후위기로 위기에 놓인 구상나무를 직접 만나고 기록하며 돌보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자연과 자신, 지역사회의 관계를 함께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프로그램을 통해 형성된 관계와 활동을 지리산권에서 지속하고, 프로젝트의 정체성과 이야기를 발전시키기 위해 조합 내부에 '지리산 네버랜드' 프로젝트팀을 구성했다. 지리산 네버랜드는 '하이디 원정대'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여,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석평전에 펼쳐진 구상나무 군락지를 둘러보고, 구상나무와 1:1 관계 맺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알려진 구상나무가 한반도 남부 고산지대에 자라는 자생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상나무는 'Abies koreana(아비에스 코레아나)'라는 학명에서 알 수 있듯 한라산·지리산·덕유산 등 높은 산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고유 수종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지구의 온도가 점차 뜨거워지면서 자생지가 점점 줄어 멸종위기에 놓였다.

우리나라 고유 수종 '구상나무'와 관계 맺기

 지리산 하이디 원정대 2탄이 거창에 위치한 금원산생태수목원에서 진행됐다.
지리산 하이디 원정대 2탄이 거창에 위치한 금원산생태수목원에서 진행됐다. ⓒ 주간함양

전국 각지에서 참여한 지리산 하이디 원정대는 이러한 구상나무를 알리고 자연의 소중함을 공유하기 위해 세석평전에 위치한 구상나무 군락지를 탐방하면서 나무에 이름을 붙여주고 편지도 쓰는 활동을 진행했다.

온유경 씨는 "이름을 지어주면 더 의미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고, 기억하고, 다시 생각하는 일. 그것은 거대한 기후위기 담론을 내 삶 가까이로 데려오는 이들의 방식이다.

세석평전에 이어 5월 31일에는 해발 고산지대에 위치한 거창 금원산생태수목원을 찾아 전문가와 함께 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구상나무에 대해 더 깊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점심식사는 온유경 씨가 친구 정나래 씨와 함께 준비한 주먹밥을 제공했다. 일본의 매실장아찌 우메보시와 취나물로 만든 주먹밥 25인분을 뻥튀기 접시 위에 올리고, 대나무 집게를 젓가락 대신 사용했다. 쓰레기를 줄이고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담긴 식사였다.

올 가을에는 이러한 활동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생태·환경·자연을 주제로 '마음함양' 축제를 상림공원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자연이 우리들의 놀이터가 됐으면 해요. 어른도 아이처럼 자연 속에서 뛰놀며 회복하고, 자연을 돌보는 일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돌보는 일로 이어지기를 바랐습니다. 백년숲에서 지리산 네버랜드라는 팀을 꾸려 지속하기 위해 '지리산 하이디 원정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총괄운영했습니다. 기후변화로 고사 위기에 처한 구상나무를 알게 됐고, 함께 이 문제를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김아라 씨)

자연이 좋아 함양에 정착

한편 김아라 씨는 대구 출신으로 서울과 대구에서 일하다 함양에 정착했다. 2019년 여름, 비 오는 날 상림의 연꽃밭을 보고 "나 여기서 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던 게 몇 년 뒤 실현됐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함양 유림면에 자리 잡은 그는 수제잼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캄포데하먕'을 운영하며 로컬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그는 "내가 경험한 좋은 것들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함께하고, 그 기쁨을 나누는 일을 좋아한다"며 "선한 영향력을 통해 '같이의 가치'를 느끼는 활동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 출신인 최윤아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역을 떠나 부천에서 살며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삶을 10년 가량 이어갔다. 건축설계사무소와 NGO에서 일했던 그는 지친 삶을 뒤로 하고 1년간 세계여행을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난 뒤 삶의 중심에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전국을 다니며 어디에서 살 것인지 고민하던 그는 지인의 추천으로 함양을 알게 됐고, 2025년 3월 함양에 왔다. 그는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지역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고, 함양을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느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유경 씨는 함양이 고향이지만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지역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중이다. 안의면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역을 떠나 대구에서 일했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 2022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몸은 함양에 살면서도 마음은 정착하지 못해 주말마다 친구들을 만나러 대구와 서울을 오가던 그는 군청 SNS를 통해 청년모임 '이소'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비로소 마음도 함양에 머물게 됐다.

양봉을 하는 아버지를 도우면서 지역의 활동가로 살아가는 그는 "지역에 일자리도 없고 문화적 결핍도 많지만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함께할 친구'를 만들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자연 속에서 같이 이야기 나누고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어른도 아이도 자연 품에서

 지리산 하이디 원정대 2탄(금원산 생태수목원)에 참여한 사람들
지리산 하이디 원정대 2탄(금원산 생태수목원)에 참여한 사람들 ⓒ 주간함양

백년숲사회적협동조합은 '지리산 네버랜드'를 실행 기반으로 삼아, 하이디 원정대에서 시작된 자연 돌봄과 관계의 실천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리산권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의 삶을 살리는 지속 가능한 기후돌봄 활동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더불어 지리산 네버랜드는 기획·운영한 하이디 원정대와 같은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자연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정기적인 활동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자연 안에서 놀고, 쉬고, 돌보고, 연결되는 일. 그리고 그 경험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일 말이다.

함양은 이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이었지만 낯선 곳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우연히 발견한 정착지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도시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한 공간이었다. 그들이 함양에서 경험한 대로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산중턱 어느 한 지점에 오래 머물러도 그저 괜찮다고 말하며 위로를 전하는 것.

사철 변화하는 자연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지리산 네버랜드가 만들고 싶은 놀이터는 바로 그런 곳이다. 어른도 아이처럼 놀 수 있고, 기후위기도 다정한 돌봄의 언어로 다시 말할 수 있는 곳. 지리산의 하이디가 되어 구상나무를 만나는 이들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에도 실렸습니다.


#자연#속에서#동심으로…‘지리산#네버랜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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