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티켓링크 라이브 아레나(핸드볼경기장)에서는 개표소를 봉쇄한 채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1-3 게이트 앞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진행하는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티켓링크 라이브 아레나(핸드볼경기장)에서는 개표소를 봉쇄한 채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이번 시위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 용지 부족 사태를 기점으로 촉발됐다. 올림픽공원역 인근부터 핸드볼경기장까지 이어진 인파가 태극기를 들고 '재선거'를 끊임없이 외쳤다. 인파의 대부분은 10대부터 30대의 청년들이었다.
'자율 조직'이라는 자원봉사자들... 청테이프 어깨에 둘렀다
티켓박스 앞에서는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들이 A4 용지에 펜과 크레파스로 재선거를 요구하는 피켓을 직접 만들고 있었다. 외벽에는 '성조기 등 타국의 국기를 흔들지 말라', '평화롭게, 지성과 화합으로 문제를 해결하자', '휴식을 취하며 안전을 확보하라', '선동하거나 선동당하지 말라'는 시위 가이드라인이 빼곡히 붙었다. 밀집 지역에는 몇 미터 간격으로 안전요원이 배치돼 우측 통행과 빠른 이동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자원봉사자들은 이날 아침 쿠팡 트럭 10대 분량 넘게 배송된 물품의 포장을 뜯고 분류한 뒤 게이트마다 배분했다. 서로 통성명도 못 한 채 청테이프를 팔 위쪽에 둘러 서로를 알아봤다. 한 자원봉사자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아레나로 물품을 보내고 있다"며 "이번 시위에서는 후원계좌도 없고, 후원금도 일체 받지 않는다. 자원봉사자 모두 인스타그램의 모집 글을 보고 온 시민들"이라고 주장했다.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티켓링크 라이브 아레나(핸드볼경기장)에서는 개표소를 봉쇄한 채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현장 자원봉사자들이 물품을 배부하기 위해 안내하는 모습. 카페 트럭이 시민들에게 음료를 나눠주는 모습. 쓰레기를 정리하는 시민들의 모습. 티켓 박스를 가득 메울 정도로 A4 용지 피켓을 만드는 시민들의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태극기와 수제 피켓을 배포하던 박지홍(27)씨는 "참정권이 박탈당했다고 생각해 자원봉사에 나섰다"면서 "'시위대'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는 언어다. 우린 모두 평범한 시민이니 '시민'으로 호명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석주(27)씨는 "영어 시험 공부를 하다가 나라의 중대사를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화나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시위 규모가 3만 명은 족히 넘는데 MBC 등 언론이 2000명으로 축소했고, 송파 투표소에서 연행된 시민들을 극우 세력이라 했지만 실상은 동네 주민이거나 출퇴근하는 직장인, 대학생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시위의 핵심 어젠다는 참정권 박탈이며, 정치색이 드러나면 의도가 왜곡되니 자제해 달라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들 "참정권 침해, 필히 재선거 이뤄져야"
현장에는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달려온 청년과 가족 단위 시민들이 많았다. 이아무개(29)씨는 "인스타그램에서 '송파민주화운동'이 열렸다고 해서 왔다"며 "이 건은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 기본권 침해이기 때문에 모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이 있다면 필히 재선거가 이뤄져야 한다. 선관위가 법 때문에 안된다고 하지만,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반문했다.
대구에서 달려온 김보준(31)·반지영(31)씨는 "투표를 못했던 게 나였을 수 있다. 함께 분노할 것"이라면서도 "부정선거가 실재하는지는 팩트체크가 되지 않았지만 과정에 부실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다만 부정선거로 시위 의제가 변질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했다. 반씨는 "이번 시위로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해지길 바란다. 나의 지인들도 정치색을 떠나 참정권 보장에 모두 동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다른 국민들도 시위 현장에 와봤으면 한다. 평화롭게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와 유아차를 끌고 나온 양아무개(44)·전아무개(36)씨는 "나의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지금보다는 더 공정했으면 한다"며 "재선거와 참정권 보장을 주장하는 이들이 현장 인파의 80%쯤 되는 것 같다, 부정선거는 소수다"라고 추산했다. 이들은 "이번 시위는 이전과 다르다. 국민들이 확실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국민의힘이 적극적으로 규명했으면 한다"고 했다.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티켓링크 라이브 아레나(핸드볼경기장)에서는 개표소를 봉쇄한 채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청년들아 고마워'라고 적힌 피켓을 든 중년 여성의 모습. 시위 가이드라인과 함께 '재선거'가 적힌 피켓을 든 시민들의 모습. 시위 참여를 기념하기 위해 셀카를 찍은 연인의 모습.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의미가 담긴 피켓의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13살 딸과 함께 나온 한아무개(38)씨는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는 힘을 가지기 위해 아이와 함께 나왔다"며 "절차가 잘못된 것은 확실하고, 선관위를 재건해야 한다"고 했다. 고향 친구들과 현장을 찾은 김아무개(26)씨는 "선거권을 주장한 시민들을 경찰이 폭력 진압해 분노했다. 정치 성향 관계없이 시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왔다"면서 송파 투표소 투표함 반출 과정에서 벌어진 일을 비판했다.
"경찰 강경 진압" 주장하며 분노... "선관위 물러나고 시스템 개편해야"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며칠 전 진압을 성토하는 시민들에 의해 둘러싸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명도(29)씨는 "송파 투표소에서 함께 밤을 샜던 30대 여성이 스크럼을 짜고 있다가 경찰에 끌려나오는 것을 목격했다"며 "공권력이 시민을 향하는 걸 보며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일행 이아무개(29)씨는 "오세훈 후보 당선으로 결과가 나왔다며 재선거가 의미가 있냐는 의견이 있지만, 참정권은 시민 누구나 행사해야만 한다. 이대로 흐지부지된다면 자라나갈 아이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일행 김아무개(30)씨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던 기성세대가 제도권에 고이면 이런 사달이 난다"면서 "대통령은 스타벅스 '탱크데이' 실수에 분노해 불매운동을 주도하면서 왜 이 사태에는 침묵하는가. 시민들이 대통령 탓을 하는 건 대통령의 업보"라고 꼬집었다. 그는 "선거 시스템을 개편하고 재선거를 투명하게 하면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내란 주체는 민주당","일루미나티 잡아갔으면"... 극단세력의 음모론
현장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곳곳에서 여과 없는 음모론과 극단적 주장들도 분출됐다. 빨간 'MAGA' 모자를 쓴 시민은 "전교조가 아이들에게 공산혁명을 세뇌시키고 있다", "경찰이 중국 공안처럼 시민들을 끌어내는 것을 보면 공산화에 대한 두려움이 든다"고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녔다. 건물 기둥에는 중국 공안과 MOU를 체결했다는 한국 경찰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게이트 한 켠에서 73세 노인은 "부정선거는 사실이며 내란 주체는 더불어민주당과 민노총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국회의원 다수가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는 "선거 절차에 부정이 있었다면 그 자체로 부정선거로 부를 수 있으며, 모든 근거는 유튜브에 나와 있다"고 했다. 옆에 있던 29세 청년도 "선거의 부실이 부정선거의 실체를 드러냈다"며 호응했다.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티켓링크 라이브 아레나(핸드볼경기장)에서는 개표소를 봉쇄한 채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태극기를 그리고 있는 시민의 모습. 방이1동 자유와혁신 소속 투표 참관인으로 임했던 시민이 증서를 꺼내든 모습. 자녀와 함께 시위 현장을 찾은 시민의 모습.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한 일행의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심지어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도 극단적 발언이 쏟아졌다. 현장에서 태극기를 그리던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부모님께서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며 시위 참여를 허락하셨다"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부정선거 주장을 못 펴도록 압박하고 있고, 중국과 짜고 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교회 담임목사 아버지를 따라 나온 유아무개(12)·(13) 남매는 "전교조 교사에 의해 역사를 거짓으로 배우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라 부르고 동성애 옹호 발언을 한다"면서 "미국이 한국에서 이재명과 가짜 국회의원, 일루미나티를 잡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스탑 더 스틸'과 성조기… 극우와의 불편한 동거
인파가 가장 많았던 1-3번 게이트 앞에서는 성조기를 든 시민이 난입해 부정선거를 외치자, 다른 시민 여럿이 제지하며 "타 국기는 내려놓고 재선거에만 집중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두 사람은 서로 언성을 높이다 주변 시민들의 제지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황을 살피기 위해 현장을 찾은 대학생 이인준(20)씨는 "지난 며칠간의 시위에 모두 참여했다"며 "민경욱과 전한길 등 부정선거 음모론자가 '스탑 더 스틸'을 외치는 걸 봤다. 차후 극단적 성향의 시민들만 남아 부정선거를 주된 의제로 띄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사태의 진상규명이 우선이며, 국정조사 이후 후속 입법과 사법부 내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부정선거 음모론이 계속 이야기 나오는 이상 진보 성향의 시민은 시위에 나오기 부담을 느낄 것이다. 여기 있는 시민들도 극우와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준영(22)씨는 "'남태령 대첩'처럼 우파에도 공공의 기억이 생기는 것 같다"며 "참정권을 보장하려는 목소리에 윤어게인이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까지의 의제는 재선거와 참정권 보장이지만 물밑에서 부정선거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고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진보 성향의 정치토론모임 참가자들도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현장이 편향되어 있고, 주최 측이 없어 통제되지 않아 혼란스럽다"며 "어제까지는 태극기만 보였는데 오늘은 성조기와 이스라엘기가 보인다. 곧 정치꾼들에 의해 극단화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티켓링크 라이브 아레나(핸드볼경기장)에서는 개표소를 봉쇄한 채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경찰이 시민들에 둘러싸여 성토를 받는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실제로 한 노인은 부정선거 구호 제창을 거부한 청년에게 '빨갱이'라며 욕설을 쏟아냈다. 이를 목격한 ROTC 애국동지회 소속의 김병태(70)씨는 "며칠째 시위에 왔는데 오늘 오후부터 부정선거 구호와 성조기가 보이기 시작해 불안하다. 재선거만 외쳐야지, 부정선거를 외치면 경찰이 개입한다"고 했다. 김건우(28)씨는 "'멸공' 등까지 말하는 사람들은 10%도 되지 않는다"며 "언론이 부정선거를 외치는 소수만 보도해서 현장이 극우 시위로 오해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건 시위 아닌 범죄"… 비판 목소리도 이어져
한편 시위 이면에 감춰진 폭력성과 모순을 지적하는 비판적 목소리도 높았다. 현장을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한 시민은 "시위대는 JTBC 취재진을 감금하고 폭행했다. 민간인을 붙잡아 신분증을 검사하고, 경찰 중에 중국인이 있다는 혐오 및 음모론도 퍼뜨렸다. 이건 시위가 아니라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아무개(30)씨는 "현행 선거법상 재선거를 하려면 선거소청을 제기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선거소송을 거쳐 법원의 선거무효 판단을 받아야 한다. 전면 재선거 주장은 현행 법규정을 부정하는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늦은 밤부터는 '재선거'에 집중했던 낮과 달리 성조기와 '스탑 더 스틸' 피켓, '부정선거' 구호가 현장을 덮었다. 며칠째 현장을 지켰다는 한 시민은 "일반 시민들이 많을 때는 재선거만 외치지만 밤이나 새벽이 되어 강경론자만 남을 때는 부정선거가 주된 의제가 된다"고 취재진에 설명했다. 8일 새벽부터는 시위 의제가 '부정선거'로 전면 변경되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공익저널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