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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마당 한 켠에는 손바닥만 한 텃밭이 있다. 남들이 보면 웃을 만큼 작은 규모다. 고추 몇 포기, 토마토 몇 포기, 오이와 가지를 심어 놓은 것이 전부다. 그러나 내게는 그 어떤 넓은 농장보다 소중한 공간이다.

텃밭에 새 생명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텃밭에 새 생명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 이점록

비닐 옷을 벗어던진 땅, 배로 바빠진 손길

올해는 작은 실험을 했다. 해마다 덮어주던 검은 비닐 멀칭을 하지 않았다. 흙은 맨살을 드러냈고, 기다렸다는 듯 잡초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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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장갑을 끼고 쪼그려 앉는다. 손가락 끝으로 풀을 뽑아내고, 흙을 북돋아 주고, 마른 땅에 물을 적신다. 허리를 펴면 뻐근하지만, 다음 날 나가 보면 어제보다 조금 더 커진 잎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날은 손톱만 하던 오이 덩굴이 지지대를 감고 올라가 있고, 어느 날은 노란 꽃이 하나 둘 피어 있다. 그렇게 텃밭은 하루도 같은 모습인 날이 없다.

작은 오이 몇 개가 놓아준 따뜻한 다리

작년 여름이었다.

냉장고 채소칸에 오이가 가득 들어찼다. 가지도 연달아 열렸다. 초록의 결실들을 보며 문득 떠오른 단어가 바로 '나눔'이었다.

갓 따온 오이를 들고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텃밭에서 땄는데 드셔보세요."

비닐봉지를 건네 받은 이웃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며칠 뒤였다. 담장 너머로 작은 바구니 하나가 건너왔다. 작은 오이 몇 개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다리를 놓아준 셈이다.

이 나눔은 마당을 넘어 세상으로 이어졌다. '인생나눔교실' 멘토링 수업에 갈 때도 정성껏 수확한 채소를 챙겨 가곤 했다. 멘티들에게 건네며 "제가 텃밭에서 직접 키운 겁니다"라고 수줍게 건네면 모두 아이처럼 반가워했다.

채소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건강 이야기로 이어지고, 사는 이야기로 번져간다. 돈을 주고 사는 값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성과 시간의 가치를 마음으로 알아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텃밭이 알려준 또 다른 계산법

돌이켜보면 텃밭이 내게 준 진짜 수확물은 아삭한 오이나 탐스러운 가지가 아니었다. 그것을 매개로 피어난 환한 웃음이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걱정하며,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시간이야말로 텃밭이 맺어 준 가장 눈부신 열매였다.

요즘 세상은 무엇이든 숫자로 계산한다. 얼마를 들였는지, 얼마나 남는지, 효율이 있는지를 먼저 따진다. 하지만 텃밭에서는 계산이 조금 다르다. 씨앗 하나를 심으면 채소 몇 개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끈끈한 '관계'가 자란다. 물 한 바가지를 주면 작물만 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함께 자란다.

올해도 텃밭에는 고추와 토마토, 오이와 가지 등이 부지런히 자라고 있다. 아직 줄기는 가늘고 잎도 여리다. 그래도 아침마다 들여다보게 된다. 올해는 얼마나 많이 열릴까 보다, 그 결실을 누구와 나누며 어떤 이야기를 피워내게 될지가 더 궁금하다.

손바닥만 한 텃밭이 가르쳐준 것은 농사의 기술이 아니었다. 씨앗 하나가 채소로 자라기까지는 물과 햇볕이 필요하지만, 그 채소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선물이 되기까지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텃밭으로 향한다.

고추와 토마토, 오이와 가지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돈으로는 셀 수 없는 관계의 가치를, 흙 한 줌 속에서 다시 배우기 위해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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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인턴일기

33년간 공직에 몸담고 퇴직했습니다. 지금은 은퇴 이후의 삶을 다시 배우는 60대 인턴으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인생 2막의 의미를 발견하는 글을 씁니다.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중장년과 노년의 삶을 기록하며, 나이 들어서도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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