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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은 누구를 뽑아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누가 누군지 몰라서 투표용지에 첫 번째 적혀 있는 이름을 찍었다."
"그냥 아무도 안 찍고 버렸다."
"찍긴 했지만 누군지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내 주변 유권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었다. 심지어 모 유튜브 방송에서는 전국의 민주진보교육감 후보자 명단이라며 "잘 모르겠으면 일단 이름이라도 외우고 투표장에 가라"고 말하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헛웃음마저 나오는 이번 교육감 선거는 누가 당선되느냐를 떠나서 '과연 교육감 직선제는 유효한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남겼다.

교육감 선거는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투표하는 모습(AI생성 이미지).
투표하는 모습(AI생성 이미지). ⓒ AI생성 이미지

교육감 선거에는 정당도 기호도 없다. 대의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그 자체로 '가장 고도화된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이며 곧 정당 민주주의이다. 시민들은 정당을 통해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고 실현해나간다. 정당은 민주주의에서 책임정치를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매커니즘이다. 정당은 민주적인 공천시스템을 통해 후보자를 검증하고, 후보자 당선 이후에도 법적·정치적 연대 책임을 지며 민의의 감시자, 대변자로 역할을 감당한다. 그런데 교육감 선거는 이 정당 민주주의의 '바깥'에 존재하고 있다. 이 문제는 다음의 두 가지 의문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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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정당 마크만 떼면 정치 중립적인가? 교육감 선거가 진보-보수의 격렬한 이념 대결장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행정편의적인 발상이 불러온 사회적 후과는 만만치 않다. 평상시 정당 정치활동을 통해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정책을 생산하고 해결해나가는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니, 4년만에 돌아오는 교육감 선거에서 시민들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어떤 정책을 지지할 것인지 결정하기 어렵다. 후보자들 면면에 대한 인지도는 차치하고서라도 '무상급식'과 같은 전국적인 이슈가 없는 이상, 교육 정책은 사회정치적 공론장에서 활발하게 다뤄지지 못한다.

교육 정책 아젠다는 보이지 않고 책임이 방기된 이념대결과 진영논리에 몰두하는 모습은 유권자를 교육감 선거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실제로 이번 6.3 교육감 선거에서 무효표는 108만 7120개로 다른 선거 무효표의 2.5배에 달했다. 선거를 치르면서도 정치는 아니라고 말하는 '위선의 정치', 교육감 선거는 정당 민주주의 바깥에서 '나쁜 정치'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둘째, 정당의 책임과 무관한 교육감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치적 '자영업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작동한다. 교육이 부당한 정치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한민국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가치가 오용되어 교육의 의사결정 권한을 시민이 아닌 교육 관료나 전문가에게 귀속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교육 관료조직의 정점에 있는 교육감은 인사권, 재정권, 정책결정권을 단독으로 행사한다. 지방의회가 교육청을 감시한다고는 하나, 지방의원들에게 교육 행정은 전문적이고 폐쇄적인 영역이어서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감에 집중된 독점적 권력을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이라는 헌법적 가치 구현의 산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제도 설계 당시 '교육 독립'이라는 명분이 지금에 와서는 관료적인 교육 행정을 강화하고 견제의 진공상태를 만든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교육의 당사자인 시민과 지역사회는 지역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교육거버넌스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교육은 사회와 괴리되고 주권자인 시민의 일상적인 통제로부터 멀어졌다. 어떤 제도와 정책은 도입된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왜곡되거나 변질되기도 한다. 정치의 실종과 교육감의 독점적 권력이 궁극적으로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할 시민의 참여를 배제하는 고착화된 구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한 진단이 필요하다.

'지역'이 실종된 교육자치는 자치가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시스템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현대 사회의 비극 중 하나로 꼽았다. 권력과 자본이라는 거대 시스템이 인간의 소통과 유대가 살아 숨 쉬어야 할 삶의 영역을 억압하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반자치와 교육자치가 분리된 이원화 된 관료 행정 시스템의 문제를 고찰해볼 수 있다.

교육감 선거는 일반자치와 교육자치가 분리된 이원적 구조 하에서 실시된다. 이러한 칸막이 구조는 협력보다 갈등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는 예산을 투입하지만 교육 정책 결정 권한은 교육청에 있고, 교육청은 사업을 추진하지만 지역의 다른 행정 영역과 연계하는 데 한계를 겪는다. 같은 지역 안에서 두 개의 권력 체계가 병존하면서 책임 소재는 불분명해지고 행정 효율성은 떨어진다. 주민 입장에서는 교육 문제든 돌봄 문제든 결국 지역의 문제인데, 고착화 된 분리 구조 속에서 이를 통합적으로 접근해 해결하지 못하니 교육자치의 효능감은 떨어지고 문제는 반복된다.

진정한 교육자치는 지역의 주민, 학부모, 교사, 학생이 서로 연결되어 삶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구조 속에서 완성된다. 지방정부의 행정력과 교육청의 전문성이 칸막이를 낮추고 하나의 생태계로 융합될 때, 교육은 비로소 관료제라는 억압의 굴레를 벗겨내고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유대를 회복하는 본연의 생활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

사는 지역이 어디인가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는 격차와 불평등의 시대이다. 교육, 주거, 의료, 복지, 문화, 일자리 등 삶의 조건과 전망을 좌우하는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지역은 단순한 행정구역 단위가 아니라 삶의 조건과 기회라는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도권 일극화와 지역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 더 이상 '지역 따로, 교육 따로' 일수는 없다.

아이 키우기 좋은 지역을 만드는 일은 교육청만의 과제도, 지방정부만의 과제도 아니다.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의 분리 구조가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할 때이다. 교육을 지키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교육을 지역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광역단위 교육 분권을 넘어 주민이 참여하는 기초단위 교육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책적, 제도적으로 무엇을 바꾸고 혁신해야 할까? 교육감 선거를 바라보며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 (https://blog.naver.com/xfile3408)에도 실립니다.


#교육자치#교육감선거#교육감#교육청#교육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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