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 부산, 경기도 가평, 제주, 미국에 흩어져 사는 6인이 쩨쩨하지만 울고 웃고 버티며, 오늘도 그럭저럭 어른 행세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로 담습니다.
"나 지금 누워 있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집안일을 하며 넷플릭스 예능 <유재석 캠프>를 자동 재생시켰다. 출연자들(유재석, 이광수, 변우석, 지예은)이 식사 준비를 마치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고 있었다. 국민 MC 유재석의 '누워 있고 싶다'는 말을 듣고 집안일을 멈췄다.

정신없이 일하며 듣느라 몰랐는데, 자동 재생된 방송은 벌써 6회째를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몇 시간째 서 있었던 걸까?

AD
19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아이들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하루는 늘 빠듯했다. 세탁기도 청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부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사용하는 모든 가전제품은 사람처럼 돌봄을 필요로 했다. 계절마다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24절기에 맞춰 집안일을 나눴다.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은 계획을 세울 틈도 없이 해치워야 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집은 늘 손 볼 곳이 남아 있었다.

비슷한 일을 19년 동안 반복한 결과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오전 5시 50분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등교 시키며 하교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정리한다. 결혼 초기부터 지금까지 집안일은 모래성을 쌓는 일과 비슷했다. 반찬통을 채우고 비우고, 빨래를 개고 정리하는 등의 일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해도 집은 늘 어질러진 상태로 돌아갔다.

어제와 똑같은 상태로 집을 되돌리고 나면 그저 눕고만 싶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의욕이 사라졌지만 해야 하는 일이니 계속했다. 방송 출연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너무 익숙해져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해 온 일들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노동이었다.

살림은 계획하고 판단하는 기획 노동

'유재석 캠프' 스틸컷
'유재석 캠프'스틸컷 ⓒ 넷플릭스

<유재석 캠프>는 캠프 사장이 된 유재석씨와 직원들이 일반인 숙박객들과 함께 2박 3일 동안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다. MC 유재석씨는 방송에서는 뛰어난 진행 실력을 보여주고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캠프 운영은 달랐다. 출연진과 숙박객을 포함하여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돌아서면 밥"이라며 투덜거리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정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준비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며 필요한 물품을 챙기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뛰어난 진행 실력으로 오랫동안 사랑 받은 그에게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늘 빈틈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많은 사람들의 끼니와 생활을 책임지는 일 앞에서는 우왕좌왕했다.

캠프는 출연자들만의 노력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숙박객들은 자연스럽게 요리를 돕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다. 함께 준비하고 함께 치워야 모두 같은 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일과 육아에 지쳐 쉬러 왔다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캠프 2기에는 가수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캠프장 직원으로 합류했다.

두 사람은 식사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고 필요한 일을 찾아 움직이는 모습이 능숙했다. 그들은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살림은 계획하고 판단하는 기획 노동이라는 점을 각인 시키고 떠났다. 출연자, 참가자 구분 없이 각자 할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하자 캠프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제야 진행자 유재석씨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은 줄고 웃음은 늘었다. 유재석씨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진행에 집중할 수 있는 듯 했다.

참가자들을 모은 것은 유명 연예인들의 인기였지만, 캠프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숙박객들의 힘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왜 지쳐 있었는지 깨달았다. 아이들은 어렸고 배우자는 회사 일로 정신이 없다는 이유로 19년 동안 너무 많은 일을 혼자 떠안았다. 4인분의 일은 네 사람이 해야 정상인데 혼자 4인분을 감당하려고만 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이제부터라도 나를 위해

'유재석 캠프' 스틸컷
'유재석 캠프'스틸컷 ⓒ 넷플릭스

그런데도 여전히 집안일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누어야 할 책임이라기보다, 누군가를 돕는 일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일의 대부분을 여성이 맡고 있다는 통계 역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가족 모두의 몫을 자신의 책임처럼 떠안고 살아간다.

돌봄의 시작은 분명 사랑이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지속하기에 집안일은 성취보다는 유지에 가까운 노동이다. 완성을 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두는 일에 가깝다. 사랑의 이면에 누군가의 시간과 노동이 존재함을 알아주지 않으면 돌봄은 쉽게 외롭고 힘든 노동이 된다.

티도 나지 않는 끝없는 살림. 공부하고 일하며 사느라 살림은 나도 처음이었는데 왜 그렇게 잘하려고만 했을까. 캠프 숙박객들 가운데 전업주부는 없었다. 문득 각자의 집에서 일하며 이 방송을 보고 있을 이름 모를 전업주부들을 떠올렸다. 집을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일조차 쉽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그들을 안아 주고 싶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 살아볼 생각이다. 식구들의 집안일은 엉망이겠지만, 혼란 속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켜볼 생각이다. 미술관 세 곳의 연간 회원권을 구입했다. 헬스장도 꾸준히 다닐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기로 했다.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돈을 쓰는 것이 어색하지만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겠지?

쩨쩨하고 궁핍하지만, 울고 웃고 버티며 오늘도 그럭저럭 어른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로 담습니다.
#유재석캠프#넷플릭스#유재석#예능#돌봄노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노동자입니다. 좀 더 나은 세상,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합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