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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책방에서 일하기 전까지 나 역시 이 말을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아이 어른할 것 없이 스마트폰과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종이책과 멀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하지만 책방에서 가끔 마주하는 아이들에게서 정말 그런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있다.

책방에 혼자 남아 책을 읽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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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한 아이가 엄마와 함께 책방에 왔다. 책 한 권을 골라 한동안 읽었다. 그러다 엄마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집에 잘 올 수 있는지 두어 번 확인했다. 아이는 "찾아갈 수 있어. 책 다 읽고 갈게"라고 대답했다. "너무 늦지 않게 집에 와"라는 말을 남기고 엄마는 가져온 접이식 쇼핑카트를 끌면서 책방을 나섰다. 그때부터 신경이 아이에게 향했다. 조용한 책방 안에 책장 넘기는 소리가 차분히 들렸다. 아이는 서두르지 않고 책 속에 머물렀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가 책방을 나서려 했다. 혹시 몰라 아이에게 몇 학년인지, 집이 어디인지, 혼자 찾아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4학년이고 집도 근처 아파트 단지라 혼자 찾아가는 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이렇게 아이를 책방에 맡기듯 두고 엄마가 근처에서 볼일을 보고 오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일하는 이 책방을 편안하고 믿을 만한 공간으로 여긴다고만 생각했었다.

어린이가 남긴 메모 예비 초등학교 5학년 아이는 어린이를 위한 줄글책을 비치해 달라고 건의했다. 깨끗한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는 말과 함께 친절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어린이가 남긴 메모예비 초등학교 5학년 아이는 어린이를 위한 줄글책을 비치해 달라고 건의했다. 깨끗한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는 말과 함께 친절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 신극채

읽고 싶은 책을 말할 줄 아는 아이들

책방에는 손님이 글을 남길 수 있는 공책이 2권 있다.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하고 햇살이 잘 드는 공간에 놓인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하나는 '베껴 쓰다'로 책을 읽다 눈길이 머문 문장을 옮겨 쓰는 공책이고, 다른 하나는 '머물며 쓰다'로 마음 내키는 대로 소회를 남기는 공책이다. 대체로 성인 손님들이 글을 남기는데 어쩌다 어린이가 남긴 글도 있다.

한 아이는 'Why? 시리즈'를 구비해 달라고 적어두었다. 그 글 아래에 '시립도서관에서 잘 갖추고 있으니 그곳을 이용해 주면 좋겠다'라는 답을 남겼다. 모든 요청을 책방에서 다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책방에 자기 목소리를 남긴 사실만으로도 고마웠다.

또 다른 아이는 '어린이를 위한 줄글책'을 준비해 달라는 건의 글을 남겼다. 아이들이 늘 그림이 많고 글이 짧은 책만 원하진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긴 이야기, 조금 더 깊은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 요청을 반영해 초등학교 고학년이 읽기에 적합한 책들을 새로 주문했고, 서가에 따로 코너를 만들어 비치해 두었다.

두 어린이가 남긴 글을 읽고 알았다. 아이들이 단순히 엄마와 아빠 손을 잡고 책방에 오는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읽고 싶은 책이 있고 자신의 요구를 말할 줄 아는 어엿한 독자라는 것을. 동네의 작은 책방이 그들의 목소리를 모두 들어줄 수는 없더라도, 가능한 귀 기울이고 반영하려는 마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새 책 표지판 새 책만 따로 진열하는 서가 위에 놓인 표지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새 책 표지판새 책만 따로 진열하는 서가 위에 놓인 표지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 신극채
새 책을 진열한 서가 서가에 새 책을 진열하는 동안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이들이 계속 다녀갔다.
새 책을 진열한 서가서가에 새 책을 진열하는 동안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이들이 계속 다녀갔다. ⓒ 신극채

새 책 앞에 몰려든 아이들

책방은 아파트 단지와 떨어져 있다. 소규모 공공기관들이 입주한 건물 안에 자리해 손님의 왕래가 많은 편이 아니다. 게다가 참고서도 판매하지 않아 매출이 적은 편이다. 책방에서 일한다는 즐거움과 별개로 그런 현실이 늘 마음 한편에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초등학교에서 발주한 700여 권이 넘는 책을 낙찰받았다. 2년 넘게 일하면서 처음으로 맞는 큰 수주였다. 책에 도장을 찍고, 스티커를 붙이고, 목록을 확인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책 한 권 한 권을 만질 때마다 새 책을 펼쳐 들고 제목을 살피며 환하게 웃을 아이들을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난 5월 29일, 책 배달을 자청하고 학교로 향했다. 승합차 뒷좌석을 접고 책을 차곡차곡 실었다. 운전도 하겠다고 나섰다. 아이들이 설레며 기다릴 새 책이었기에, 혹여 성급한 운전으로 구겨질까 천천히 차를 몰았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평소보다 두 배 더 걸렸다.

책을 손수레에 나눠 싣고 도서관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던지 복도는 아이들로 북적였고 소란스러웠다. 여기저기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다가오더니 한입처럼 외쳤다.

"와, 새 책이다!"

아이들의 시선은 곧장 손수레 위 책들에 꽂혔다. 책등을 살피고 제목을 보았다. 한 아이는 3층에서 내려 도서관 앞까지 따라오며 길을 안내했다. 사서 선생님이 지정한 서가 앞에 새 책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도서관 안에 있던 아이들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몰려들었다. 선생님은 "다음 주에 정리가 끝나면 볼 수 있어요"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책 읽는 아이들 도서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고 있다. 좋아하는 책이라면 장소나 자세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몰입해 읽었다.
책 읽는 아이들도서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고 있다. 좋아하는 책이라면 장소나 자세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몰입해 읽었다. ⓒ 신극채

먼저 우리에게 물어야 할 질문

아이들이 책을 바라보던 눈길이 계속 맴돌았다. 새로운 장난감이나 간식 앞에서만 설레는 건 아니었다. 새 책 앞에서도 아이들의 눈은 반짝였다. 우리는 아이들이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아이들이 책을 멀리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 곁에 책을 충분히 가까이 가져다 놓지 못했던 것을 아닐까 싶다.

물론 책이 가까이 있다고 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방학이 되면 책을 가져다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었지만 당시 나는 그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다음 방학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아버지는 더 이상 책을 가져오지 않으셨다. 내가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탓도 있겠으나 내가 고른 책이 아니라 읽어야 할 책처럼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방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면 그때 일이 떠올랐다. 원하는 책이 없으면 쪽지를 남기고 새 책이 들어오면 무슨 책이 왔는지 궁금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책을 주변에 많이 놓아두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고를 수 있도록 믿어주고, 책 앞에 머물 시간을 만들어주고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그러니 이제 "요즘 아이들은 책을 안 읽는다"라는 말은 조금 조심해서 하고 싶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 어른들이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책방#새책#책읽는아이#책안읽는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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