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은 퀴어하다> 겉표지 ⓒ 에이도스
주택으로 이사 온 후 자연과의 첫 접점은 새였다. '새소리에 잠이 깼다'거나 '새소리에 눈이 떠졌다'는 둥의 상투적 표현을 읽으면, 미사여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였다. 서쪽으로 난 방 창으로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이라도 하는 양 크게 소리치는?(우는 건 분명 아닌 것 같다) 새소리에 깬 아침,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새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다고? 그랬다.
이사 오기 전 살던 아파트라고 새가 없겠는가마는, 고층까지 날아올라 수직으로 미끄러지는 창문에 깃든 채 지저귈 수는 없을 테니, 그렇게 가깝게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도시 소음도 새소리를 못 듣게 하는 데 한몫했을 테고. 이사 온 동네는 주택단지라, 낮게 자리 잡은 모든 집의 처마며, 지붕이며, 나무며 할 것 없이 마음만 먹으면 새들이 머물어 쉬는 곳에서 가깝게 지저귀니 크게 들렸던 것이다.
이사 온 때는 봄이었고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을이 깊어지자 대규모의 집단적 끼룩끼룩 소리를 듣게 되었고 또 한 번 놀랐다. 아마도 한반도가 추워지니 철새들이 따뜻한 곳으로 대규모로 이동하며 내는 소리일 텐데,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비행하며 자기들끼리 소통이라도 하는 것일까. 선두에 선 리더를 따라 몸에 새겨진 지도를 좇아 분명 정확히 계산하며 날아갈 것이다. 비행도, 여행도, 그 대단한 지저귐도, 경이로웠다.
주택에 이사 오고 얼마 안 있어, 한 10여 분 걸어 나가며 한 시간여 오르내릴 수 있는 높지 않은 산이 있는 걸 알게 됐다. 반가워 다니게 되었는데, 나처럼 등반가 체질은 아니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딱인 규모의 산이다. 처음에 산과의 접점은 당연히 나무며 꽃이며 시각을 통해서였지만 점점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너무 선명하게 '따다다다닥' 소리를 들었다. 이건 아무리 새를 몰라도 단박에 알 수 있는 딱따구리 소리가 아닌가. 어머 이 산에 딱따구리가 있구나, 하고 소리 나는 방향으로 머리를 쳐들고 아무리 살펴봐도 딱따구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서야 사람들이 망원경을 가지고 다니며 새를 보는 이유를 알았다.몇 년 산을 다니며 알아들을 수 있는 새소리가 적어도 10여 종이 넘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산에 이렇게 많은 새가 산다는 게 놀라웠다. 그런데 내 귀가 아둔해서 그렇지, 이 산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새가 살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왜 새타령을 하냐면, <자연은 퀴어하다>을 읽다 까마귀에 대해 알게 되며 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어서다. 한국에서도 까마귀는 상서롭지 못한 이미지이다. 까악까악 소리가 뾰로롱 등의 청량한 소리보다 듣기 좋지는 않지만, 이보다 미디어 등의 콘텐츠에서 편견을 만들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시체, 귀신, 무덤 등지에 거의 꺼림칙한 배경처럼 등장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는 대부분 자연의 진실이 아니라 만들어진 문화적 관념이다.
무지한 내가 까마귀에 대해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무척 똑똑하다는 사실과 암수 결합만으로 공동체를 구성하지 않는 퀴어함이다. 까마귀는 3400만 년 전 파푸아뉴기니에서 살았던 텃새의 후손으로 매우 오래된 혈통을 지닌 새다. 시체 등의 부패한 것을 먹는 장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잡식성인 때문인데, 이는 생존에 유리하도록 환경에 적응해 진화한 결과일 테다. 서식 분포도 매우 넓어서 남극을 빼면 지구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위에서 똑똑하다고 언급한 까닭은 까마귀들이 연장을 쓸 수 있고 정교한 사회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해서다. 지능과 의식이 있는 존재로 사람 얼굴을 식별할 수 있고 공감력이 있단다. 게다 다른 조류와 소통하는 능력까지 있는 뛰어난 조류로 영장류 수준의 지능을 보유하고 있으며, 보통 10년 산단다.
저자는 까마귀에 대한 서구의 부정적 관념이 매우 편향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퀴어함을 강조한다. 까마귀들은 동성 개체끼리 쌍을 이루어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여러 마리 까마귀가 같이 새끼를 키우는 공동육아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는 자연계가 오로지 암수 공동체로 구성된다는 관념을 위배하는 것으로, 이러한 케이스가 넘쳐난다는 진실이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까마귀 얘기를 늘어놓으니 <자연은 퀴어하다>가 새를 다룬 책이라고 오해할까 봐 일러두겠다. 이 책의 저자인 퍼트리샤 오노이우 케이시언은 새 학자가 아니라 균류학자다. 균류를 연구하는 학자는 극소수인데, 여성(으로 보이는 퀴어)은 말해 뭐 하겠나. 매우 귀하신 존재지만, 주류의 관심사를 연구하는 게 아니다 보니 연구자의 길이 외롭고 험난했다.
저자는 아르메니아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이성애 정상성 사회에서 위협을 느끼며 살아온 퀴어이기도 하다. 책 제목이 선명히 제시하듯, 그는 책에서 '암수', '자웅', '남녀'로 구분되는 이분법이 전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모든 '암컷'이 삽입당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수컷'에 남근이 있는 것은 아니며 모든 '암컷'이 새끼를 돌보는 것도 아니다. 모든 '수컷'이 지배 행동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암수' 이분법은 훨씬 다양한 생물학적 다양성의 압도적 증거 앞에서 논파된다..."
책의 많은 부분을 이러한 이분법을 해체하는 증거로 흥미롭게 제시하면서,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겪은 성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연구를 통해 확인하고 위로받음으로써 퀴어임을 당당하게 정체해가는 성장 스토리를 담고 있기도 하다. 젊은 퀴어 학자가 쓴 독특한 논문이자 에세이로 무척 흥미진진하다.
이 책을 읽고 있을 즈음 교육감 선거에 '퀴어 동성애 교육 추방'이니 '퀴어문화축제 반대'니 하는 망언을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퀴어가 누구의 무엇을 침해했다고 이렇게 반인권적 혐오를 조장하는 걸까. 보통은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을 누가 읽으면 좋겠다고 정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너무나 명확하게 그 대상을 선정하게 한다. 망언 제조기인 교육감 후보(낙선했다)와 안창호 인권위원장(하루 빨리 퇴진하라!)이 그들이다. 우리 사회가 성별 정체성에 대해 점점 더 극단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하고 혐오하는 경향이 강해져 걱정이다. 아는 우리라도 성소수자 혐오에 단호히 대응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게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