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차별타파의 날'은 남성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임금이 어느 수준인지를 연간으로 환산해 정한다. 올해 임금차별타파의 날은 5월 24일이었다. 2025년 기준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정규직 노동자의 39.0% 수준에 그쳤다. 이를 1년으로 계산하면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은 5월 25일부터 사실상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여성의 노동을 어떻게 평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차별의 결과다. 성별임금격차는 개인의 경력 차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이 어떤 일자리로 밀려나는지, 어떤 업무를 맡게 되는지, 돌봄 책임이 누구에게 전가되는지, 경력단절 이후 어떤 일자리로 다시 진입하게 되는지가 모두 연결되어 만들어진 결과다.

▲2026 부산여성 성평등 인식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 부산여성회
지난 3~4월 부산여성회가 실시한 2026 부산여성 성평등 인식조사 결과는 이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부산 여성 1115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75.9%는 돌봄·서비스·판매 등 여성집중직종의 임금이 저평가되어 있다고 답했다. 또한 56.8%는 성별에 따라 업무 배치가 달라진다고 느끼고 있었다. 여성들은 여전히 보조·지원 업무에 집중 배치되고, 승진과 경력 형성의 기회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임금, 돌봄, 경력단절이 서로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들이 집중된 직종은 낮은 임금과 저평가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성별에 따른 업무 배치는 여성들을 '보조적 역할'에 묶어둔다. 여기에 육아휴직 사용 불이익과 돌봄 부담이 더해진다. 결국 여성들은 경력단절로 내몰리고, 이후 더 낮은 임금의 일자리로 다시 진입한다. 그렇게 성별임금격차는 다시 강화된다.
이 악순환 속에서 여성의 노동은 끊임없이 후순위로 밀려난다. 가족 안에서는 돌봄을 우선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노동시장에서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노동으로 취급된다. 여성에게 돌봄 책임을 내재화한 사회는 여성의 노동을 '온전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결과 여성들은 저임금·불안정노동의 최전선으로 밀려난다.
이번 조사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419명의 여성이 직접 남긴 주관식 응답이다. 전체 응답자의 37.6%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요구를 서술했다. 이는 매우 높은 참여율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현실을 직접 말하고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주체로 나섰다는 의미다.
주관식 응답은 여성들이 막연한 불만을 토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여성들은 이미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었다. 경제적 부담에 대해서는 비용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노동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육아휴직 사용 보장과 대체인력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임금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성별임금공시제 도입 요구가 강하게 나타났다.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차별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에 맞는 구체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정책·제도·대표성' 관련 주관식 응답이 26.5%로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응답자들은 "육아지원 확대와 휴가제도 강화", "장기요양 제도의 확대"와 같은 제도 강화 요구를 제시했다. 동시에 "중소기업과 서비스직 여성들에게는 정책이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며 정책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특히 "부산시에 성평등 정책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공공기관부터 질 좋은 여성 일자리를 늘리고 기업에 대한 성차별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개별 정책 몇 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지역의 정책 생태계 전반을 성평등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는 특히 40대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 40대 여성들은 자녀양육, 부모돌봄, 경력유지의 부담을 동시에 감당하는 세대다. 이들은 제도의 공백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한다. 돌봄은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겨지고, 노동시장에서는 경력단절의 책임이 여성 개인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이들은 단순한 위로나 일시적 지원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노동의 문제는 안전의 문제와도 분리되지 않는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82.9%는 '여성혐오가 여성 개인의 삶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전체 문항 중 가장 높은 동의율이다. 이는 여성혐오가 개인적 감정이나 일부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삶과 노동을 위협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이 넓게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일상 속 불안감을 느낀다는 응답도 61.2%에 달했다. 주관식 응답에서는 스토킹·여성혐오 범죄 처벌 강화, 귀갓길 CCTV 확대와 가로등 정비, 피해자 상담지원 등 실질적인 안전 대책 요구가 나타났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파악" 요구는 소규모 사업장 여성노동자들이 성희롱 신고 제도조차 제대로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낸다. 여성안전 정책 역시 노동현장의 규모와 고용형태, 지역적 조건에 따라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이라는 지역적 현실도 이번 조사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여성들은 반복해서 "부산에는 일자리가 없다", "회사와 산업 자체가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이는 성평등 정책 이전에 양질의 일자리 기반 자체가 취약하다는 문제제기다. 수도권과의 임금·산업 격차로 인해 청년 여성들이 부산을 떠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역의 성별임금격차 문제는 단지 남성과 여성의 임금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지역 산업구조, 청년 여성의 유출, 서비스직 중심의 여성 일자리, 중소·영세 사업장의 노동권 사각지대가 모두 함께 작동한다. 부산 여성들이 말하는 임금차별은 급여명세서 위의 숫자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어떤 일자리가 가능하고, 어떤 삶을 지속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동시에 응답자들은 막연히 새로운 정책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미 부산에서 시행 중인 좋은 사례를 확산하자는 현실적 제안도 내놓았다. 예를 들어 강서구 녹산공단의 '가족의 날', 즉 매주 수요일 5시 퇴근과 같은 가족친화적 제도를 부산 기업 전체로 확대하자는 요구가 있었다. 이는 여성들이 현장의 조건을 모른 채 추상적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 가능한 제도를 찾아내고 확산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번 조사는 여성들이 겪는 차별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성집중직종의 저임금, 성별 업무 배치, 돌봄 부담, 육아휴직 불이익, 경력단절, 낮은 임금의 재취업, 안전 불안, 정책 사각지대, 지역 일자리 부족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여성의 노동을 낮게 평가하고, 여성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하나의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남성정규직 노동자의 39.0%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여성의 노동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저평가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남성노동자 대비 조선인 여성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100 대 25'였던 역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오늘의 현실은 참담하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여성노동을 값싸게 쓰고, 주변화하고, 돌봄의 책임까지 떠넘기는 구조는 여전히 강고하다.
2026 임금차별타파주간은 이 구조를 다시 사회 앞에 드러내는 시간이다. 여성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은 우연이 아니다. 개인의 선택도, 능력의 차이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만든 차별의 결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여성들에게 더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이미 말하고 있는 요구를 정책으로, 제도로, 현장의 변화로 실현하는 일이다.
성평등공시제를 도입하고, 여성집중직종의 저평가를 바로잡아야 한다. 육아휴직 사용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대체인력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직, 5인 미만 사업장까지 닿는 노동권 보장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부산시에는 성평등 노동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며, 공공기관부터 질 좋은 여성 일자리를 확대하고 기업의 성차별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여성들은 이미 알고 있다. 임금차별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무엇이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지,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알고 있다. 이제 답해야 할 책임은 사회와 정치에 있다. 임금차별을 끝내는 일은 여성에게 시혜를 베푸는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더 이상 차별 위에 노동을 쌓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