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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여돌을 사랑했지만 케이팝을 사랑하지 못한 덕후의 환희와 기쁨, 슬픈, 분노의 축약적인 기록이다.
얼마 전 알고 지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그 사람이 "예전에 아이오아이 좋아했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랬다. 10년 전 나는 아이오아이(임나영, 청하, 김세정, 정채연, 김소혜, 유연정, 최유정, 김도연, 전소미)에게 빠져 있었다. 기간을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이오아이가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를 '국민 프로듀서'로 만들며 문자 투표하게 했던 그 소녀들. 이들이 돌아왔다.

아이오아이는 지난 5월 19일 세 번째 미니앨범 'I.O.I : LOOP(아이오아이 : 루프)'를 발매했다. 이 그룹의 10주년을 자축하는 의미의 앨범이었다. 아이오아이의 타이틀곡 '갑자기'는 입소문을 타고 차트 순위를 갈아치우더니 멜론 TOP100, HOT100(발매 30일·100일) 모두 1위에 올랐다.

사라진 언니들

 아이오아이.
아이오아이. ⓒ 스윙엔터테인먼트

이들의 활동을 보며 어느 순간 사라진 몇몇 아이돌이 떠올랐다. 케이팝 1세대부터 여돌여덕(여자 아이돌의 여자 덕후)이라는 한 길만 걸어온 나에게 내 '언니들'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다. 인기를 먹고 사는 아이돌 그리고 연예인의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돌의 생태계는 좀 더 가혹했다. 인기를 끌 만하면 좀 더 어리고 귀여운 여자 아이돌이 나오며 금방 대체됐다. 그렇기에 여돌의 활동 수명이라는 건 대체로 길지 않았다. 나의 케이팝 첫사랑인 S.E.S.의 경우도 겨우 5년을 활동한 게 다였다. 지금의 아이돌이 기본 7년을 계약한다는 걸 생각하면 짧은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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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주 잠깐 활동하다 사라진 여돌까지 생각하면 그 수는 더 많다. 이는 아이돌 업계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아이돌 활동이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하기에 오래 이어가기 어렵고, 대중의 취향이나 관심이 바뀌면서 자리를 잃는 이들도 있다. 여러 명이 그룹으로 활동할 때 계약조건, 향후 계획 등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아이돌은 10-20대일 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의 영향에 아이돌의 의지와 달리 해체가 되는 일도 있을 거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 언니들도 있었다. 이효리가 대표적이다. 그가 속했던 핑클 활동은 4년 반 정도로 길지 않았지만, 이효리는 이후 솔로로 활동을 이어갔다. 성공을 거둔 그는 많은 여성들의 롤모델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최장수 걸그룹인 소녀시대도 그렇다.

 소녀시대의 효연, 유리, 수영이 자체 콘텐츠에서 만든 비공식 유닛.
소녀시대의 효연, 유리, 수영이 자체 콘텐츠에서 만든 비공식 유닛. ⓒ 효연 유튜브

데뷔 20주년을 앞둔 소녀시대는 여돌로 여러 기록을 갈아 치우며 '따로 또 같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소녀시대 멤버인 효연, 유리, 수영은 최근 같은 그룹의 유닛인 태티서(태연, 티파니, 서현)에 대항해 농담처럼 비공식 걸그룹 '효리수'를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 과장된 열창을 하고 음 이탈을 해도 웃고 말며 '신흥 개그 그룹'을 자처하는 이들은 완벽한 무대 위의 신비한 '소녀시대'가 아니어도 충분히 멋지며 자연스럽게 아름답다.

아이돌 활동이 그저 한 때의 활동이 아니라 이들 각자가 애정을 두고 했다는 것, 또 여러 상황이 바뀌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 버티고, 각자의 방식으로 활동한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 같아 소중하다.

장수 여돌의 수가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마마무도 올해 12주년을 맞이했고 트와이스도 11주년이 됐다. '마의 7년(아이돌 그룹의 수명을 가능하게 하는 시기가 7년이라는 뜻)'을 넘기는 여돌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감개무량한 일이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여돌을 오래 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사회가, 세상이 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거 같아 반갑다.

돌아온 언니들

 걸그룹 시크릿.
걸그룹 시크릿. ⓒ TS엔터테인먼트 제공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활동하는 여돌도 반갑지만 오랜만에 여돌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면 신난다. 사라진 줄 알았던, 이제는 못 보는 줄 알았던 이들이 '여돌'로 돌아왔을 때 벅찬 감정이 인다. 전 여친과 재회하는 오묘한 마음도 아니고 오랜만에 동창과 만나 추억을 들추는 감정도 아니다. 그보다 묻어둔 사랑과 미련, 함께 좌절을 경험했던 아픔, 서로를 보고 울고 웃으며 쌓아온 역사가 담겨있다고 느낀다.

몇 년 전 카라가 돌아왔을 때, 지난해 베이비복스의 무대를 봤을 때, 올해 에이핑크가 돌아왔을 때가 그랬다. 내가 응원했던 소녀들이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여성으로 무대에 다시 섰다는 게 기뻤다. 거기다 음악 차트 1위까지 달성하다니! 이들의 노력이 아름답게 보였다.

게다가 4일에는 걸그룹 시크릿(Secret)이 12년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RBW 측은 시크릿 컴백설에 "시크릿이 컴백을 준비 중"이라며 "구체적인 사항은 순차적으로 안내해 드릴 예정"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시크릿의 그룹 활동은 지난 2014년 발매한 미니 5집 '시크릿 서머(Secret Summer)' 이후 약 12년 만이다. 재결합 프로젝트는 원년 멤버인 전효성과 정하나를 주축으로 진행된다고 알려졌다.

최근 아이오아이가 출연한 여러 프로그램을 보며,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다른 여돌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자의든 타의든 아이돌을 이제 그만둔, 무대에서 사라진 여돌의 소식. 누군가는 휴식을 택했고, 누군가는 또 다른 곳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누군가는 여전히 분투 중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세상은 그런 곳이다,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정말 현실인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여돌이 무대에서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혹여나 무대에서 사라진 여돌이 있다면, 그게 자기 의사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열심히 들여다볼 작정이다.

무대라는 공간에선 사라졌더라도 또 다른 세계를 찾아 나선 소녀들, 언니들도 응원할 거다. 앞으로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럴거라 다짐한다. 무대를 떠난 여돌도 나와 같은 여덕의 응원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다. 돌아오는 소녀들을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약속한다.

#아이오아이#결그룹#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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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pjyspeed) 내방

책 "누가 나만큼 여자를 사랑하겠어","왜요, 아이돌이 어때서요?" 저자, 미디어일다 기자, 덕질에 진심인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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