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천문학> 2002년 봄호.<실천문학> 2002년 봄호. ⓒ 실천문학
무크 <실천문학>이 자유실천문인회의 기관지로서 1980년 3월호로 창간되었다.
발행인 김진홍, 편집위원 고은·박대순·이문구·송기원·이시영 등이다. 창간호 발행은 전예원에서 2권 이후에는 실천문학사 이름으로 발행하였다. '역사에 던지는 목소리', '민중의 최전선에서 새 시대의 문학운동을 실천하는 부정기간행물'이란 메시지를 표지 위아래에 명시했다.
시·소설·평론을 중심으로 시사특집을 꾸미는 등 진보적 종합지 성격으로 꾸몄다. 흔히 서두를 차지하는 창간사 대신 말미에(책 끝에) '보천보 뗏목꾼들의 살림'을 실었다. 창간사를 대신하는 글이다. 다소 장문에서 앞부분을 싣는다.
돌아보건대 우리는 어떤 시러배아들놈의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험한 밤길이어도 늘 기뻤다. 오늘도 기쁜 오늘이다. 이 쓰라리기 조차 한 기쁨은 우리들의 문학적 염원이 실천되는 언제까지라도 순결하고 통렬하게 그칠 새 없으리라. 80년대는 우리에게 우리 문학의 주제인 민중의 자성되어진 출현을 이같은 기쁨으로 환영한다.
이렇게나마 한 변죽으로 얘기를 꺼내어보자...
그런 곳에서는 으레 사람의 마음 쓰임새가 허약하기 마련이어서 이를테면 어젯밤에는 무슨 꿈, 또 어젯밤에는 무슨 꿈... 하는 식으로 그 꿈의 풀이에 하루의 징역살이를 들어맞추는 짓을 하게 된다. 이런 꿈에 대한 집착은 첫째 그 꿈이란 게 어느 정도 실지를 예시하는 바가 있는 성 부르기도 하고 또 쇠창살에 갇힌 수인으로서는 심심풀이로도 적지 않은 값어치가 되기 때문에 무조건 마다할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바로 이런 자위의 값어치 따위야 말로 타파해야 할 전투적 의지의 중요함도 드러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한 꿈을 안 꾸기로 작정하고 꿈을 증오했다. 그랬더니 꿈속에서도 그 자신이 꿈과 싸우는 꾼을 꾼 일이 있었다.
그는 이런 일을 집념으로 삼아 애를 썼더니 이윽고 한달 내내 꿈을 안 꾸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예로부터 지극한 곳에 이른 사람은 꿈이 없다는 말이 있기는 있다.
그런데 두어 달 뒤에는 슬슬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그것은 재수꿈도 아니고 내일의 특별면회나 반가운 소식이나 재판에 이로운 무슨 기해 따위를 위한 그런 이해 예시의 꿈도 아니었다. 대개가 그가 간 곳이나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 꿈이었다. 그것은 그가 매일매일 우리 고려 땅 한 고장 한 고장을 마음에로 새겨 마음 깊이 정들이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였으므로 이번에는 꿈꾸는 것을 꿈꾸어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다고 해서 회령·아오지·초산·만포 그리고 부전호·대동강·구월산 장산곶 같은 데야 그가 가본 곳은 아니지만 그런 고장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민족통일의 과제로서의 한지학 공부가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꿈이라고 해서 아침마다 마음 속에 새겨두는 이 고장 저 고장을 그대로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반평생을 해맨 휴전선 이남의 여러 고장도 퍽이나 진지하게 추억했는데 이 정작 그의 발이 디디어졌던 그런 고장은 꿈꾸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낱 꿈이건만 그 꿈에는 욕망과 염원이 들어차는 것인 모양이다. 아 압록강 뗏목 일행이 백두산 밑에서부터 멀고 먼 여정인 만포·초산·벽동까지 흐르는 물에 맡겨 떠나려가는 꿈은 그 꿈이 설쳐대는 감옥의 기상나팔에 깨어버린 것에 화가 날 정도로 안타까웠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잡지 창간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