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1976) ⓒ 뿌리깊은 나무
유신체제의 혹독한 시기에 문화적으로 유연한, 그러나 할 말은 하는 잡지가 있었다. 월간 <뿌리깊은 나무>다. 1976년 3월에 창간된 이 잡지는 제목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한글로만 제작되었다.
발행인 한창기는 영어학원을 운영할 정도로 영어에 능통했지만 한국어에서 일본어와 영어의 잔재를 싫어해 한글 글꼴을 연구해 만들고, 잡지는 순우리말로, 가로쓰기를 도입했다. 한때 구독률 1위를 기록할 만큼 대중성이 있으면서도 세련된 디자인과 알찬 내용을 유지했다.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한 한창기 선생 ⓒ 광주문화방송
전두환이 일으킨 1980년 5월 쿠데타로 탄압을 받고 8월 1일 폐간되었다. 한창기가 쓴 장문의 창간사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하고'의 전반부이다.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하고
좀 엉뚱해 보이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뜻이 넓을수록 훌륭한 이름으로 치는 터에, 굳이 대수롭잖은 '나무'를, 더구나 뜻을 더 좁힌 "뿌리깊은 나무"를 이 잡지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우선 이름부터 작게 내세우려는 뜻에서 그랬습니다. 이 이름은 우리 겨레가 우리 말과 우리 글로 맨 처음으로 적은 문학작품인 <용비어천가>의 "불휘기픈남..."에서 따왔습니다.
이 땅에서는 '어제'까지도 가을걷이와 보릿고개가 해마다 되풀이되었습니다. 열두 달 다음은 '오늘'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고 아들의 팔자는 아비의 팔자를 닮았었습니다. 아마도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의 걸음이 이 땅 사람들이 '어제'까지 일하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또 그들은 대체로 '숙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숙명'끼리 서로 아우름이 그들이 생각하던 삶의 술기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큰 변화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끝까지 그런 쳇 바퀴는 아닌 듯합니다. 이제는 "잘살아보자"고들 해서 사람들이 변화를 많이 받아들입니다. 이른바 개발과 현대화가 온 나라에 번져, 새것이 옛것을 몰아내는 북새통에서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마침내 "잘 살아보려고" 받아들인 변화가 적응을 앞지르기도 해서 사람이 남이나 환경과 사귀던 관계가 뒤흔들리기도 합니다. 이 변화 속에서 엇갈리는 가치관들이 한꺼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개발과 현대화는 우리가 겪어야 할 역사의 요청이라고 하겠습니다. 곧, 이것들은 우리에게 모자라던 합리주의의 터득 과정이겠습니다. 그런데, 합리주의는 개인주의나 물질주의의 밑거름이어서 그것이 그릇되게 퍼진 나라들에서는 인간성의 회복이 외쳐지기도 합니다.
'잘 사는' 것은 넉넉한 살림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도 누리고 사는 것이겠습니다. '어제'까지의 우리가 안정은 있었으되 가난했다면, 오늘의 우리는 물질가치로는 더 가멸되 안정이 모자랍니다. 곧, 우리가 누리거나 겪어온 변화는 우리에게 없던 것을 가져다 주고 우리에게 있던 것을 빼앗아 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사는' 일은 헐벗음과 굶주림에서 뿐만이 아니라 억울함과 무서움에서도 벗어나는 일입니다.
안정을 지키면서 변화를 맞을 슬기를 주는 저력 - 그것은 곧 문화입니다. 문화는 한 사회의 사람들이 역사에서 물려받아 함께 누리는 생활방식의 체제이겠습니다. 그런데 흔히들 문화를 가리켜 "찬란한 역사의 꽃"이라느니 합니다. 또 문화는 태평세월에나 누리는 호강으로 자주 오해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문화의 한 속성으로써 본질을 설명하는 잘못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이것은 예로부터 토박이 민중이 지닌 마음의 밑바닥에 깔려 내려와서 '어제'의 우리와 오늘의 우리를 이어온 토박이 문화가 외면되고 남한테서 얻어 와서 실제로 윗사람들이 독차지했던 조선시대의 고급문화와 같은 것만이 문화로 받들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문화는 역사의 꽃이 아니라 그 뿌리입니다. 그리고 정치나 경제는 그 열매이겠습니다. 정치나 경제의 조건이 문화를 살찌우는 일이 있기는 하되, 이는 마치 큰 연장으로 만든 작은 연장이 큰 연장을 고치는 데에 곧잘 쓰임과 비슷할 따름입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우리 문화의 바탕이 토박이 문화이라고 믿습니다. 또 이 토박이 문화가 역사에서 얕잡힌 숨은 가치를 펼치어, 우리의 살갗에 맞닿지 않은 고급문화의 그늘에서 시들지도 않고 이 시대를 휩쓰는 대중문화에 치이지도 않으면서, 변화가 주는 진보와 조화롭게 만나야만 우리 문화가 더 싱싱하게 뻗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 문화가 그렇게 뻗어야만 우리가 변화 속에서도 안정된 마음과 넉넉한 살림을 함께 누리면서 '잘 살게' 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문화가 세계 문화의 한 갈래로서 씩씩하게 자라야 세계문화가 더욱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화는 이 땅에 정착한 토박이 민중이 알타이말의 한 갈래인 우리말로 이 땅의 환경에 걸맞게 빚어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말과 이 땅의 환경은 문화발전의 수레인 교육과 문화의 살결인 예술과 함께 <뿌리 깊은 나무>가 돞아 보려는 관심거리입니다.
조상의 핏줄이 우리 몸을 빚는다면, 그 몸을 다스리는 우리 얼은 우리말이 엮습니다. 그런데도 여러 왕조 시대에 걸쳐서 받들리던 중국말과 일제시대에 우격다짐으로 주어진 일본말의 영향은 멀리는 세종 임금이 한글의 창제로 또 가까이는 개화기의 선구자들이 <독립신문>의 발행과 같은 운동으로 그토록 가꾸려고 힘썼던 토박이말과 그 짜임새를 얼마쯤은 짓누르거나 갉아먹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흔히 심각한 굴이라면 무턱대고 읽기를 꺼리는 탓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뿌리깊은 나무>는 그 안에 실리는 글들을 되도록 우리말과 그 짜임새에 맞추어서 지식 전달의 수단이 지식 전달의 수단이 지식 전달 자체를 가로막는 일이 없도록 힘쓰려고 합니다. 또 우리말과 그 짜임새를 되살려 새로운 시대에 알맞은 말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분들의 일에 보탬이 되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잡지 창간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