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표지조승리 작가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책 ⓒ 달 출판사
잠시 눈을 감고 자판을 두들긴다. 눈을 떴다. 내가 입력한 글을 읽어 보니 오타가 없다. 이럴 수도 있네. 자판기로 글을 쓰는 게 익숙하여 눈을 감고도 글을 입력할 수 있다. 다시 눈을 감는다.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당장에 하늘과 구름을 볼 수도 없다. 도로 위에 지나가는 차 소리가 요란하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순간도 눈을 감고는 살 수 없겠다. 그런데 앞을 볼 수 없는 조승리 작가는 세상을 훑어볼 줄 알며 마주한 일상에서 사유와 철학을 담아 글을 빚어낸다.
지인의 추천으로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었다. 첫 페이지 첫 문단부터 '내가 에세이를 읽고 있는 게 맞나?'라고 생각했다. 혹시 소설이 아닌가? 에세이를 이렇게 쓴다고? 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 선배의 전화는 샤워 후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고 있을 때 걸려 왔다. 나는 수신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을지 말지를 고민했다. 퇴근 후 걸려 오는 전화는 대다수가 유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사이 전화가 끊어졌다.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냈다. 그때 다시 전화가 울려댔다. (13P)
이렇게 출발하는 글이 에세이라니. 에세이라면 너무 과장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수신자'가 아니라 '발신자'라고 해야 맞지, 라며 첫 문단부터 내심 지적질도 했다. 그래서 글을 이어서 더 읽을까 말까 고민했다. 지지리 궁상맞고 힘든 이야기가 책 한 권에 가득하겠지, 라는 선입견도 있었다. 내 코도 석 자인 마당에 또 다른 아픔을 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선배가 왜 전화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니 계속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에세이에 기승전결로 엮어가는 구조적 글쓰기를 기법이 담겨 있었다. 에세이는 소설처럼, 소설은 리얼리티를 담은 에세이처럼 써야 맛이 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전화 연락을 했던 선배가 피치 못한 사정이 생겨 선배 대신에 마사지할 곳으로 출근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장애인 콜택시와 일반 택시, 흰 지팡이, 여의도 불꽃 축제 등에 대한 썰을 풀고 있었다. 앞을 못 보는 작가를 통해 독자에게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달리는 택시 바깥은 화려한 불꽃 쇼가 한창이었지만 작가에게는 강 건너 불구경도 못 되고 남의 나라 일 같은 거였다. 그런 참에 작가는 '너'를 생각한다. 열여섯 살 너의 고달픈 삶을 돌아보고 그때까지는 하늘의 찬란한 별 무리를 볼 수 있었던 아련한 그리움을 반추한다. 이 부분에서 찡했다. 택시가 가다 서다 멈추는 동안에 작가가 가정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게 된 사연을 풀어놓는다. 귀찮다고 거절할 수도 있었을 선배의 부탁을 들어주며 나선 길에서 추억을 떠올리는 글에 몰입하고 말았다.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독자를 붙들어 앉히는 마력이 있는 글이었다.
나는 일이 끝난 뒤 김선배에게, 덕분에 나만의 별과 불꽃을 꺼내 볼 수 있었노라고. 내 안에 살아 있는 별과 불꽃들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여전히 아름답고 생생하게 잘 있더라고, 말해야겠다. (20P)
그다음 글부터 빨려 들어가듯이 읽었다. 그런데 이 작가의 글은 결코 바삐 읽도록 채근하지 않았다. 독자가 충분히 생각하며 읽게 하는 속도를 제공하는 모터가 장착된 듯했다.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을 매만지며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글이지만, 마음은 짠했다. 특유의 위트로 사회 단면을 냉철하게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다. 이 작가의 매력은 탄탄한 자존감에 있다고 본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그런 자신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당당함이 글 행간에 보였다.
앞을 못 보는 작가지만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각은 냉철했다. 그래서 독자인 우리는 작가의 신세 한탄을 읽지 않아도 되었고 특별함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작가만의 관점에서 일상을 해석하는 사유에 동참할 수 있었다. 자칫 감성 에세이로 쓰게 되었을 작가가 그걸 내려놓고 사회나 문화적 가치를 덧입힌 글로 확장했다. 자신이 수없이 많이 읽었던 텍스트를 횡단하여 시대정신을 짚어내는 지식 큐레이션으로 진화시켰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다고 본다. 작가의 기막힌 개인감정을 토대로 하되 독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었다. (브런치 배대웅 작가의 글 참고)
글마다 주제가 분명하고, 구성이 치밀했다. 논리 정연하고 문장 또한 잘 정돈돼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이 책은 1년 만에 17쇄를 찍는 '특, 베스트셀러'가 됐다. '21세기 최고의 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증쇄 본에는 평산 책방 책방지기, 문재인 전직 대통령이 '세상은 잔인하면서도 아름답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책입니다.라고 추천사를 썼다.
2023년 샘터 문예 공모전 생활수필 부문 대상을 받은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조승리의 첫 번째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장애인으로서, 마사지사로서, 딸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살아온 이야기를 시원시원하게 써 내려간 저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불꽃을 여실히 지켜냈음을 보여준다.
열다섯, 시력을 잃기 시작한 순간부터 저자는 시간에 쫓기듯 각종 문학에 탐닉해왔고 내면화된 깊은 문장들은 그의 인생과 더불어 뜨거운 감성이 가득한 에세이로 만들어졌다. 열 가구 집성촌에 더부살이하듯 자라온 알싸한 어린 시절, 휴먼 다큐가 어울리지 않고 코믹 시트콤에 가까울 정도로 얼얼한 모녀간의 대화, 그리고 마사지사로서 누군가에게 고된 삶을 견뎌내게 할 의지가 된 홧홧한 오늘날까지, 모든 이야기는 파편적이지 않고 하나의 줄기로 이어져 아름다운 불꽃으로 독자의 마음에 화려하게 피어날 것이다. (출처 : 예스24)
인상 깊었던 글
'유령 남매'라는 글은, 사춘기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던 한 남매와 있었던 에피소드다. 수련회 비용을 내지 못해 수련회에 참석하지 못한 그녀는 다른 친구와 함께 그동안 학교에 가서 출석 체크를 해야만 했다. 그런 후에 그 친구네 집에서 보내는 일상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해 명절에 어머니와 심하게 다툰 후 가출하여 그녀는 남매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나 새 학기가 되자 그 친구를 찾을 수 없었다. 하교 후, 상가에 있던 그 친구 집에 들렀지만, 설렁탕이란 간판을 마주한다. IMF 시절 가정 붕괴의 실상을 유령 남매를 통해 처절하게 드러냈다.
'돼지코'라는 글은 유치원 시절의 기억이었다. 돼지코는 아파트에 살았고 어린 작가는 아랫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빈부 차이에서 오는 애환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눈부시고 화려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걔네 아빠가 집으로 와서는 돼지코 엄마 뒈지게 팼다잖아! 아빠가 외양선을 타고 외국 나간 사이에 엄마는 노름으로 쫓겨 다니다 여기까지 왔던 거래. 난 이제 그 자식 꼴 안 봐서 좋은데 쟤는 하나뿐인 친구 없어져서 어떡한대."
작가의 언니가 한 말이다. 언니는 돼지코 형과 같은 반이었는데 설문 조사가 끝나고 나면 그 형이 작가 언니를 가난뱅이라고 놀려대어 치를 떨고 있던 차였다.
'비극으로 끝날 줄 알았지'에서는 작가가 상을 받아도 가족들은 심드렁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도 무관심한 혈육을 매콤하게 고발한다. 그러나 작가는 주눅들지 않고 현실과 마주하는 당당함이 있다. 어쩌면 엄마의 그런 육아 방식이 작가에게 근성을 덧입혀 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의 작가를 있게 한 샘터사 공모전에 입상했을 때 꽃다발 하나 정도는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남몰래 사무쳤다. 그런데 함께 지냈던 활동지원사마저 맨손이라 실망을 하던 차에 상상하지 않았던 크고 화려한 꽃다발을 안게 된다. 활동지원사가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몰래 준비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작가는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며 새로운 꿈과 함께 자신감이 피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이 글 끝에서,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
앞을 못 보는 작가, 그녀는 예사롭지 않은 시각으로 인생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지녔다. 그것을 글로 옮길 수 있는 필력을 갖춘 분이기도 하다. 인간과 사회를 보는 눈이 그 누구보다도 밝아 그것을 가감 없이 글로 풀어낼 줄 아는 작가였다.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사는 작가는 소설 같은 에세이로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