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멕시코 오악사카의 중심부, 소칼로(Zócalo)와 카페·갤러리·서점·공예품 상점이 줄지어 있는 보행자 전용 중심거리인 안다도르 투리스티코(Andador Turístico) 어디에서도 스타벅스 매장이나 스타벅스 로고가 들어간 컵을 든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오악사카는 인구 약 30만 명 규모이지만, 오악사카 주의 주도이자 멕시코 남부의 문화 중심지로서 문화적·역사적 영향력은 대도시급이다. 그러나 오악사카의 도심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없다. 이곳 사람들이 그들의 입점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거절의 이유, 공동체
오악사카 도심에는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은 글로벌 체인점들이 들어오지 못했다. 맥도날드는 2002년, 스타벅스는 2010년대 초 개장 시도에 시민들이 맞섰고, 그들은 결국 도심 외곽 지역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스타벅스의 경우 시내 중심부로부터 떨어진 도심권 북쪽의 상업·주거 지역, 레포르마(Reforma)에 한 곳 매장을 내고 있다. 오악사카 중심부는 여전히 글로벌 패스트푸드 체인점 진입을 막아낸 상징적 공간으로 남아있다.
이 저항의 출발점으로 프란시스코 톨레도(Francisco Toledo)를 꼽는데 이견이 없다. 그는 판화·회화·조각에서 토착적 상징과 현대적 기법을 결합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오악사카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미디어 모니터링 회사 '시플라 뉴스 에이전시(SIPLA Agencia de prensa)'의 라파엘 디아스 페루초(Rafael Díaz Perucho) 대표는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는 2002년 맥도날드가 도심에 매장을 내려고 했을 때 맥도날드의 존재가 오악사카 사람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위협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사유를 담은 서한을 미국 본사 경영진에게 보냈습니다. 또한 오악사카 공동체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전통 음식과 음료인 타말레 (Tamales)와 테하테(Tejate)를 글로벌 체인에 맞서는 문화적 무기로 삼았습니다. 서한에는 무형 문화유산의 일부로서 오악사카의 전통 요리를 준비하고 즐기는 데 할애하는 느린 시간의 가치를 강조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광장에서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원주민 여성들이 준비한 타말레와 테하테를 무료로 시식할 수 있게 했습니다."
타말레는 옥수수 반죽을 직접 갈아서 준비하고, 속 재료(고기·치즈·채소 등)를 넣은 뒤 옥수수 껍질이나 바나나 잎에 싸서 찜솥에서 장시간 증기로 찌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수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곧 공동체의 가치였다. 공장에서 사전 가공된 패티와 빵, 소스가 매장에 공급되고 수 분 내 조리가 가능하도록 한 패스트푸드의 핵심 가치와 무엇이 다른 지를 보여준 것이다. 광장에서는 이처럼 무료 시식 행사 등 여러 저항 이벤트가 이어졌다.
시간과 정성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보여준 이 이벤트를 통해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서명을 모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 덕분에 당시의 오악사카 시장, 가비노 쿠에(Gabino Cué 이후 오악사카 주지사가 됨)는 1년 후 오악사카의 중심지인 역사지구(Centro Histórico)에 맥도날드 매장의 허가 요청이 승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빠른 서비스와 대량 소비를 강조하는 글로벌 체인점들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고 느린 로컬의 문화와 충돌하면서 정체성을 위협한다. 더불어 지역 상권을 압도한다. 하지만 오악사카는 여전히 모든 글로벌 체인점들로부터 자유롭다.

▲타말레 나누기.지난 4월 25일, 오악사카 시 창립 494주년을 맞아 역사적 광장 알라메다 데 레온(Alameda de Leon)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시민들이 타말레를 나누고 있다. 톨레도가 시작한 '음식으로 하는 저항'은 이후 멕시코 각지의 문화 주권 운동에 영감을 남겼다. ⓒ 이안수
오악사카의 판화가, 마요 카리요(Mayo Carrillo)씨는 지난 5월 15일, 멕시코 스승의 날(Día del Maestro)을 맞아 교사들의 임금 인상과 연금 개선, 교육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교사들의 시위를 지원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왔다. 그는 글로벌 체인점들이 여전히 이곳에 발 붙이지 못한 이유를 자발적 시민 연대와 사회 운동 전통에서 찾는다.
"APPO(오악사카 민중총연합 Asamblea Popular de los Pueblos de Oaxaca)를 말하지 않고 지금의 오악사카 정체성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이 단체는 2006년 오악사카에서 전국교원노조(SNTE )의 교사 파업을 강제 진압하려는 정부에 맞서 결성된 300개 이상의 사회운동 연합체입니다.
수백 개의 사회단체·노동조합·원주민 조직이 참여해 최대 80만 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와 행진으로 부패정치인 퇴진, 교육 조건 개선, 민주적 자치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가장 상징적인 축제인 겔라게차(Guelaguetza)를 보이콧했습니다. 그렇게 (축제가) 공동체의 축제로 남을 수 있도록 요구하는 문화적 저항으로 이어졌습니다."
오악사카만의 커피들

▲카페 라 오르가니사시온.한 잔의 커피는 단지 향미만 나르지 않는다. 그 한 잔이 내 손에 닿기까지 거쳐온 모든 과정의 기억을 함께 나른다. 그 지역의 로스터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원두와 씨름했던 흔적, 카페 주인이 개인의 취향으로 빚어낸 공간의 섬세함까지. 균질화된 공정으로는 결코 나를 수 없는 것들이다. ⓒ 이안수
우리 부부는 오악사카 역사 중심지에 위치한 마세도니오 알칼라 극장(Teatro Macedonio Alcalá)을 종종 찾는다. 멕시코 아르누보 건축의 대표작으로, 오악사카 시민들에게 '예술의 신전'으로 여겨지는 극장이다. 오악사카 특유의 녹색 석재(칸테라 베르데)를 사용해 지은 아치형 주 출입구로 들어서는 순간마다 가슴이 뛴다. 오랜 역사를 품은 이 극장에서 수시로 오악사카 주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콘서트가 무료로 열린다. 이따금 2층 박스석이 우리 차지가 되기도 한다.
이 극장의 1층 천장 높은 공간은 '카페 라 오르가니사시온(Café La Organización)'이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이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하는 것만으로도 극장으로 들어설 때의 설렘을 느낀다. 많은 나라의 도시들에서 이런 목 좋은 공간의 카페는 스타벅스 차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악사카 소규모 생산자들의 커피를 취향에 맞게 맛볼 수 있다.
부드럽고 균형 잡힌 한 잔을 원한다면 '플루마 오악사카(Pluma Oaxaca)'가 제격이다. 오악사카 남부 해안 산악지대 화산토에서 자란 이 커피는 코코아·캐러멜·견과류의 향기로운 풍미에 부드러운 질감이 더해져, 자극 없이 오래 머무는 여운을 남긴다. 섬세하고 생기 있는 맛을 찾는다면 '이툰두히아(Itundujia)'로 눈을 돌려볼 만하다. 해발 1600~1700m 고지에서 재배되는 이 커피는 청사과·망고·구아바를 연상시키는 열대과일 풍미와 꿀 같은 단맛이 어우러져 마치 과일 그릇을 컵에 담은 듯 산뜻하다.
더 복합적이고 강렬한 경험을 원한다면 '믹스테카 알타(Mixteca Alta)'가 기다린다. 오악사카 북서부 믹스테카 원주민 공동체 소농들이 그늘 재배로 키운 이 커피는 라즈베리·체리 같은 붉은 과일 풍미와 시트러스 산미, 정향·바닐라 향신료 뉘앙스가 겹겹이 쌓인다. '예술이 도시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극장 카페의 영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땅에서, 이 땅의 농부들의 땀으로 영근 커피 원두에 있지 싶다.
'라 오르가니사시온'은 1989년 커피 가격 폭락이라는 위기 속에서 소규모 농가들이 흩어진 힘을 모아 하나의 조직으로 연대한 3500여 농가의 연합 조직이다. 107개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중 85%는 원주민 집단이다. 농민들은 생산에서 유통까지 스스로 통제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대형 기업이 좌우하는 시장에 맞서 커피 농업의 자율성과 존엄을 지켜낼 수 있게 한 것이다. 거대 시장 지배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이익을 나누는 호혜적 구조이다.
오악사카의 글로벌 프랜차이즈에 대한 거절과 저항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소비에 담긴 욕망은 무엇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