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위대한 스승이고, 숲은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그 품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배우고, 성장해가는 순간들을 글로 담아 전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5월 말, 이른 더위로 30도에 육박하는 기온 속에서 아이들과 숲으로 향했다.
학교를 나서자마자 가방을 벗어 던진 8명의 아이들은 가벼운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나비처럼 팔랑 거리며 걷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전날 내린 비 덕분인지 길 옆으로 난 계곡의 물은 불어 있었고, 나무들의 잎들은 더 무성하게 우거져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숲 수업을 진행하는 백사실계곡 별서터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평평한 돌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도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아이들을 곁으로 가서 미카 아처의 <바람관찰자>라는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끔 바람에게 말을 걸어요. 바람아, 오늘은 어떻게 불 거야?"
그림책의 첫 구절을 읽자마자, 바람이 응답이라도 하듯이 불어와 나뭇잎들이 몸을 뒤집으며 흔들렸다.
"우와와아, 진짜 바람이 대답해요."
아이들은 마치 선풍기 앞에서 바람을 쐬며 소리를 내는 것처럼 신난 얼굴로 입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아이들에게 "관찰이 뭘까요?"라고 물었다.
"음, 과학 시간에 하는 거요."
"돋보기 같은 걸로 자세히 보는 거요."
잠시 흐르는 침묵을 깨고 몇몇 아이들이 대답했다. 대답을 듣고서 "그럼 관찰은 눈으로만 할 수 있는 걸까요?"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또 다시 잠시 고민을 하다가
"눈 말고도, 귀나 몸으로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이어서 내가 "오, 그럼 오늘은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바람을 관찰해볼까요?"라고 했더니,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리현이가 달려나가 마치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처럼 두 팔을 높이 들고 가슴을 활짝 열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아이들도 바람이 부는 곳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바람관찰자 ⓒ 이정현
"바람이 어떻게 불지, 우리는 전혀 몰라요. 바람이 휘이잉- 크게 대답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요!"
아이들은 마치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여러 방향으로, 다양한 강도로 부는 순간 순간의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가슴을 열어 맞이했다. 그 순간, 아이들은 바람을 타고 나풀 거리는 나뭇잎이나 활공하는 새처럼 보였다. 그것은 바람과 나누는 대화이자, 바람의 리듬에 맞춰 추는 춤이기도 했다.
가볍고, 걸림 없이 자유로운 작은 몸들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 자연스럽게 내 주변으로 모여든 아이들에게 "이번에는 숲 전체를 잘 관찰해볼 거예요. 사실 이 숲은 있는 그대로 예술품이거든요. 우리가 잘 관찰한다면 숲이 만든 작품들을 잘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이성원 선생님의 책 <자연 미술> 작품들의 예시를 몇 개 보여주었다.
"오, 재밌겠다!", "나 이거 잘 할 것 같은데?"
아이들은 다시 빠르게 흩어져서 숲 곳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리현이가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와서 훌라춤을 추는 자신을 찍어 달라고 했다. 그를 지켜보던 하진이는 도토리 뚜껑을 주워와서 모자로 씌워 달라고 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웃고 있는데 연제가 크고 작은 돌을 쌓아서 봐 달라고 했다.
"오, 개구리야?" 라고 했더니, "강아지인데요?"란다. 다른 아이들 몇 명도 와서 "개구리 같은데?"
라고 하니, "그렇게 보이면, 그냥 개구리 할게요" 한다. 아이는 해맑게 웃더니, 이내 다른 작품을 만들러 장소를 옮긴다.
자림이는 마른 낙엽들을 모아 벽돌 안에 넣더니 벽난로도 만들었고, 한 편에 있던 우물 뚜껑에 긴 막대기를 저으며 수프를 끓이는 시늉을 한다. 민호는 돌멩이들을 모아 여러 표정의 평면 얼굴들과 입체적인 사람을 만들었고, 은수는 돌을 쌓아 섬과 파도를 표현했다.
가람이는 어디선가 찾은 빵끈과 나뭇가지로 어린왕자를 만들었다가, 모닥불과 개미를 만든다. 시경이는 처음부터 나무 아래 땅에서 비슷한 길이의 나뭇가지들을 모으더니 같은 자리를 오래 지키며 무언가를 계속 만들었다 바꾸었다 집중하고 있었다.
그 사이 연제는 낙엽을 모아 포근한 둥지를 만들었고, 자림이는 죽은 뒤영벌을 발견하고선 벌을 땅에 묻고, 풀로 십자가를 엮어 무덤을 만들었다. 하진이는 빨간 흙이 흩뿌려진 돌 중앙에 아까 썼던 도토리 모자를 놓더니 꽃이라고 보여 준다. 그리고 나서는 몇몇 아이들이 나뭇가지나 돌을 잡고 흙 위에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 등을 그리기 시작했다.

▲숲 속 미술관 작품들 ⓒ 숲탐험대
아이들이 내 손이나 옷깃을 가만히 잡고 끌어갈 때나 "선생님!" 하고 손을 번쩍 들 때마다 나는 신이 나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혼자만 보기 아까운 작품들을 나누기 위해 나는 다시 아이들을 모았다. 종을 한 번 "땡" 치며 "자, 숲 속 미술관에 온 여러분 환영합니다. 우리 함께 여러 작품들을 감상해볼까요?"라고 했더니 하나둘 내 뒤를 따른다.
"우와!" "멋지다!" "잘 만들었다."
감탄을 하던 아이들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시경이의 작품 앞에 멈춰서 "이게 뭐야?"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이건 집이야" 라는 작가의 소개를 듣고서 "우와, 그러고 보니 식탁도 있고, 의자도 있고, 그릇에 반찬까지 있네!"라며 입을 쩍 벌린다.
아이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때는 나도 관람객이 되어 함께 놀라며, 감탄했더니, 그 때마다 아이들은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는다. 그러면서 <자연미술>이라는 책에 인용된 레이첼 카슨의 말처럼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아이들 곁에서 '자연에 대해 함께 놀라워 해 줄 어른'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자연의 커다란 운행을 피부로 느낄 때 우리는 그 속에서 내가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대자연(mother nature)이 지켜보는 앞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듯한 평화를 얻는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레이첼 카슨이 말한 것처럼 어린이에게는 자연에 대해 함께 놀라워 해 줄 한 명 이상의 어른이 필요하다."
모든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서는 아이들과 만들었던 작품들을 다시 숲에게로, 자연에게로 돌려주자는 얘기를 했다. 도토리 모자와 나뭇가지와 낙엽과 돌들을 다시 땅으로 돌려 보내고 나니 "자연미술은 접착제 없이 대지에 붙어 있고 바람에 흩날리거나 새소리 속에 있다"는 책의 구절이 실감이 났다.
동시에 예전에 히말라야 지역을 여행할 때 티베트 사원에서 보았던 모래 만다라가 떠올랐다. 오랜 시간 여러 명의 승려들이 정교하게 만든 커다란 색 모래 작품이 바람에 흩어지며 날리던 모습에서 느꼈던, 어딘가 슬프고, 안타깝고, 허무하면서도, 자유로웠던 복잡한 감정이 오랜만에 밀려왔다.
모든 것은 모였다가 흩어진다. 자연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속에서는 '무상(無常)'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바람처럼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세월을, 인연을 어떻게 맞이하고, 보낼 것인가. 그것은 내 삶에서 계속되는 질문이자, 과제이다. 그리고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숲에서, 아이들에게서 찾는다. 언제나 반갑게 나를 환대 해주고 따스하게 안아주는 작고도, 위대한 존재들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