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면 빚을 생각한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한강 작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늘 5월이 오면 현재를 돕고 있는 80년 5월 광주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다. 지난 12.3 내란 극복도 그렇고 현재의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한 빚으로 살아가고 있다.
5월이면 광주와 함께 꼭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빚이 있다. 바로 정태춘 선생이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정태춘 선생은 1991년 5월 7일 서울 대학로 흥사단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법을 어겨서라도 싸우겠다."
정태춘 선생은 결연한 의지로 정부와 전면전을 선포한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 정태춘정태춘 가수가 2022년 4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음악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 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는 모습.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서정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는 정태춘 가수의 음악과 삶을 담은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로, 그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이다. ⓒ 이정민
발단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정태춘 선생은 국가의 검열 제도에 저항하는 의미로 사전심의를 전면거부 하며 심의를 받지 않은 법적 불법 음반인 7집 앨범 '아 대한민국…'을 발매한다. 이에 노태우 정부는 1991년 2월, 기존 검열제도를 더욱 강화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을 발효시켰다. 개정된 법률은 심의를 받지 않은 음반을 제작 배포할 경우 처벌을 훨씬 무겁게 한다는 개악 중의 개악이었다.
이에 정태춘 선생은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의장을 맡으며 전면전에 나섰다. 그 전면전 선포가 바로 1991년 5월 7일 서울 대학로 흥사단에서 있었던 '음반법에 관련된 정태춘 기자회견 및 비합법 음반 발표회' 기자회견이다. 기자회견의 중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대중예술에 대한 사전심의제도를 강력히 규탄하며 제도를 철폐하라. 둘째,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은 비합법 음반 '아 대한민국…'의 존재와 제작 취지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공표한다. 셋째,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이 음반을 집회 현장, 대학가 서점, 전국 순회공연 등으로 시민들에게 직접 배포, 판매하며 정면 돌파하겠다.
정태춘 선생은 이렇게 결연한 의지로 '예술에 대한 국가의 검열은 위헌'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며 마이크를 잡고 정부라는 거대한 산과 싸움을 시작했다.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주의가 진전되었다고 했지만 1991년은 여전히 독재자 전두환의 친구인 노태우가 정권을 잡았던 살벌했던 시절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이후 6년여 걸친 지난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힘겹고 외로운 이 싸움은 결국 법률 개정안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정부는 기존 법률의 수정안을 만들어 사전 검열 폐지 수순을 밟았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이로서 우리나라 대중음악은 정부의 사전 검열 제도가 사라진 완전히 창작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를 맞게 되었다.
군부독재 시절 영화, 연극, 음악, 출판 등 우리나라 문화계는 사전심의를 통해 정부의 철저한 통제를 받았다. 수많은 책들이 금서 목록에 올랐고, 수많은 노래들은 노래 가사가 개사되어 버리거나 금지곡에 묶여 빛을 보지 못했다. 영화는 가위질을 당하거나 희고 검게 칠해진 채 상영되기 일쑤였다. 이런 암울한 시절을 겪은 창작자들에게도 민주화 운동과 함께 예술의 자유가 찾아왔다.
6.29 선언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항쟁 이후 연극, 대본에 대한 사전심의가 철폐되었고, 1996년 영화 및 음반 사전심의가 철폐되었다. 이어 1999년 공연물 각본 사전심의가 정말 폐지되었다. 예술의 자유가 실질적인 문화정책으로 반영되어 큰 방향이 정해지게 된 시기는 사실상 1998년 출범한 김대중정부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는 자신감의 토양에서 성장한다는 민음으로 문화 투자예산을 늘렸으며 '정부는 문화와 문화인들에게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는 말아야 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물론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침은 있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부산시는 영화제 예산을 삭감하며 집행위원장에게 압력을 넣었다. 영화인들의 투쟁으로 행사는 마무리되었지만 영화제 진행에 많은 차질을 빚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나 2022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있었던 '윤석열차' 사태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버젓이 돌던 지난 윤석열 정부 시절은 회상하기도 싫다. 정권의 방향에 맞춰 자행되는 문화예술에 대한 몰지각한 간섭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자유 없는 예술품은 영혼 없는 공산품이다. 문화예술의 거름은 바로 창작의 자유다. 창작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아름다운 문화가 꽃피웠다는 사례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창작의 고통은 자유를 통해 통증을 완화해 줄 수 있고 자유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한때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진출한 홍콩영화는 중국에 홍콩이 반환된 후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 많던 예술가들은 공산품 만드는 직업인이 되었거나 자유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다.
수만 명이 모인 멕시코 대통령궁 앞마당에서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일본의 도쿄돔에 11만 명이 모여 아리랑 떼창을 부른다. 미국의 심장부에서도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BTS의 든든한 지원군 아미들은 말한다. '그들의 노래가 큰 위로입니다'.
K팝 전성시대다. 예술창작의 자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K팝 팬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K팝의 매력은 바로 영혼을 울리는 가사를 꼽고 있다. 만일 그때 정부의 '사전 검열 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처럼 자유로운 K팝 가사는 없었을 것이며, K팝 융성이 있었을까 싶다. 그러므로 지금의 K팝 전성시대를 연 데는 어느 정도 정태춘 선생의 지분이 있다.
5월이 간다. 문화강국 K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싸워준 정태춘 선생을 추앙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