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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EBS에서는 매주 수요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철학 프로그램 <어린 철학자>가 방송되고 있다. <어린 철학자>는 초등학생 6명이 출연해 그날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매회 죽음, AI 등 성인들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를 다룬다.

<어린 철학자>가 어떻게 기획된 프로그램인지 들어보고자 지난 5월 27일, 경기도 고양시 EBS 사옥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이지현 PD를 만났다. 다음은 이지현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철학 한다는 소신

 EBS <어린 철학자>
EBS <어린 철학자> ⓒ EBS

- <어린 철학자>는 초등학생들이 출연해 주제를 주고 대화하는 거예요.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2022년부터 〈딩동댕 유치원〉을 했는데, 그 시절에 우연히 교보문고 신간 코너에서 〈왜 하면 안 돼요?〉라는 책을 봤어요. 에스파냐 동화 작가가 쓴 어린이 대상의 철학 동화였는데 어린이 대상의 철학 동화라는 게 생소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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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님은 원래 철학에 관심이 있었나요?
"대학 전공이 철학이에요. 철학이란 학문이 어려워서 업으로는 못 하겠다는 생각에 언론학을 복수전공하고 PD가 됐죠. 그래도 계속 철학에 대한 욕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 철학은 뭘까요?
"어원으로 따지면 철학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그리스어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에서 유래한 말이죠. 프로그램 아이템을 20개 넘게 해오면서 느낀 건, 지혜를 사랑하고 스스로 사유하고 싶은 거라면 아이들이라고 못할 건 없다는 거예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자기만의 답을 내려보고, 자기 기준과 소신을 만들어가는 작업, 그게 철학인 것 같아요."

- 이 프로그램 결정 나고 맨 처음 뭐부터 취재하셨나요?
"구성을 어떻게 할지 생각했어요.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여주고 스튜디오에서 아이끼리 토크하고, 그 뒤에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미술이나 음악, 역할놀이 같은 예술 활동까지 이어지는 구성도 생각했어요. 프랑스에서는 철학 수업에서 그런 활동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근데 방송으로까지 하기엔 사족일 것 같았어요. 학부모나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활용하실 수는 있겠지만요. 그런 걸 덜어내는 등 구성 잡는 작업을 오래 했어요."

- 방송 러닝 타임이 9분이잖아요. 요즘 짧은 콘텐츠를 소비해서인지 아니면 어린이 프로그램이라 그런 건가요?
"EBS 어린이 프로그램들은 보통 15~20분 정도라 작가님과 끝까지 고민했어요. 방송으로서 철학을 한다는 게 뭘까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시청자들에게 결말까지 내려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저희 목표는 이런 철학적 주제가 있으니 아이들과 토론해 보라는 화두를 던지는 거거든요. 그러기에 9~10분이면 충분하고, 열린 결말로 끝내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 진행자가 따로 없잖아요. 모험이었을 것 같은데.
"저희 프로그램이 '3무 프로그램'이에요. 정해진 대본도 없고, 성인 진행자도 없고, 정답도 없어요. 어린이 프로에서 꽤 혁신적인 방향이었죠. 아이들 데리고 녹화하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인데 그 세 가지가 없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저도 어린이 프로를 오래 해봤지만 되게 불안했어요.
그래도 철학을 한다는 소신이었어요. 사전 취재는 열심히 하고, 뽑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고 장을 깔아주는 게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촬영 현장에서 아이들이 쉬는 시간도 달라고 하지 않고 2~3시간씩 신나게 떠드는 모습이 너무 좋거든요. 나중에 편집은 괴롭지만, 그 장을 마련해 준 것 자체가 보람이고 프로그램의 본질적 취지에 맞는다고 생각해요."

- 어린이 진행자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역 엔터테인먼트 출신 아이들도 출연하고 있어요. 근데 방송에 능숙해서가 아니라 철학적 주제에 대해 사전 취재했을 때 저희 커트라인을 통과했기 때문이에요. 6명이 동등한 입장에서 대등하게 토론하길 원하지, 누구 하나가 대장처럼 리드하는 건 저희 취지에 맞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얻는 영감

 EBS <어린 철학자>를 연출하는 이지현 PD
EBS <어린 철학자>를 연출하는 이지현 PD ⓒ EBS 홍보부

- 출연자는 어떻게 선발해요?
"기획사에 추천받기도 하고, 독서 토론 학원에 연락해서 추천받아 전화 취재를 해요. SNS나 네이버 블로그에 아이와 책 읽고 토론한 후기를 올리는 부모님들을 찾아 취재하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150명 넘게 취재한 것 같아요."

- 녹화장 분위기는 어때요?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아이들끼리 신나서 얘기해요. 충분히 얘기했다 싶으면 다음 질문으로 전환해 주는 정도의 역할만 해요. 카메라 팀 등 제작진은 세트 벽 뒤에 다 숨어 있어서,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기들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고 있어요."

- 토론 주제가 대부분 성인도 생각해 볼만한 거 같아요.
"인식론, 미학, 형이상학, 윤리학 등 철학의 영역별로 최대한 골고루 섞으려고 했어요. 저와 작가님이 아이디어를 많이 내기도 했지만, 초등학생을 실제로 가르치는 자문 선생님들에게 아이템을 받았어요. 거기에 재미를 위해서라기보다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아이들 눈높이에서 공감할 만한 것들을 얹어요. 첫 화 감옥 탈출 편도 트롤리 딜레마라는 유명한 철학적 논쟁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가져온 거예요. 자문받은 아이템에 방송적인 양념을 쳐서 스토리 라인을 만드는 거죠."

- 어린이들에게 죽음을 이야기하라고 해서 좀 놀랐어요.
"그것도 편견인 것 같아요. 제 둘째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1학년 때 주말에 같이 놀다가 갑자기 '엄마도 나중에 이 세상에서 사라져?'라고 묻더라고요.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딩동댕 유치원〉에서도 '잘 가 금붕어야'라는 표현을 했는데, 아이들도 살면서 죽음을 맞닥뜨리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실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사고도 있고요. 그 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마음속에서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잘 가르쳐 주지 않아요. 그런 것들을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뤄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렵다고 생각했던 주제들도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영감을 얻어요. 우리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다른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싶은 거죠. 생각을 안 해봤더라도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것, 그것도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역할이에요."

- 어린이들의 생각을 보며, 성인도 여러 생각할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애들 이야기를 들을 때 희열 같은 게 있어요. 철학적 주제들은 성인도 어려운 질문들인데 애들이 단순하고 순수하게 대답하거든요. 최근 AI 시리즈 편에서 AI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면 인간의 쓸모가 뭐냐고 물었는데, 한 여자아이가 '나는 그냥 살아 있어. 그래서 뭐든지 할 수 있어. 그게 내 쓸모지'라고 하더라고요. 세상을 몰라서 그렇게 단순하게 대답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어요."

- 앞으로 계획은 뭘까요?
"연말까지 방송을 이어가게 될 것 같아요. 당장은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템을 발굴하는 게 가장 큰 계획이에요."

- 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나요?
"그게 제일 어려운데요... 아이들이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 그 두 가지가 잘 섞인 아이템을 찾는 게 계획이에요."

 EBS <어린 철학자> 포스터
EBS <어린 철학자> 포스터 ⓒ EBS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


#이지현#어린철학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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