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포카치아 피자 ⓒ 김선아
5월의 마지막 주는 유난히 습했다. 흐리고 비까지 내리니 체감온도는 더 높았다. 아직 5월인데도 낮 기온은 27~30도를 넘나들었다. 매년 더위가 빨리 찾아오는 것 같더니 올해는 유독 더 빠른 것 같다. 날이 더워지면서 친정엄마의 열무김치로 콩 담백 면 열무국수를 매일 한 그릇씩 해 먹고 있었다. 다이어트 겸 매일 먹다 보니 어느새 김치가 바닥을 드러냈다.
열무김치를 직접 담가볼 생각에 시장을 찾았지만, 그날은 마땅한 열무가 없었다. 눈에 들어온 건 제철 채소들이었다. 커다랗고 잘 익은 토마토가 열개에 4000원, 오이는 세 개에 1000원, 붉은 고추는 한 바구니에 2500원이었다. 열무김치는 친정 엄마의 맛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기로 하고 세 가지를 집어 들었다.

▲시장에서 사온 만원의 행복 ⓒ 김선아
총 만 원 남짓이었다. 커피 두세 잔이면 사라질 돈이지만, 양손 가득 제철 채소를 들고 나오니, 마치 한 계절을 사 온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 손질하고 저장해두면 앞으로 몇 달 동안 식탁을 든든하게 채워줄 재료들, 바쁜 날 꺼내 쓸 여유를 미리 마련한 셈이었다.
오이피클로 아삭함을 저장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이는 피클로 담갔다. 나는 해마다 초여름과 늦가을, 두 번 피클을 만든다. 그럼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다. 오이는 여름 제철 채소로, 대체로 5월~8월이 가장 맛있고 가격도 안정적이다. 특히 6~7월 오이는 수분이 많고 아삭해서 냉국, 무침, 김치로 많이 먹는데 피클로 담기에도 제격이다.

▲오이피클이 완성되었다 ⓒ 김선아
원래 파스타에 곁들이려고 조금씩 만들던 피클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 때 매운 김치 대신 줬더니 이제는 간식처럼 집어 먹는다. 샌드위치에 넣기도 하고, 다져서 타르타르소스에 활용하기도 하니 쓰임이 꽤 넓다. 어느새 우리 집 냉장고의 기본 반찬이 되었다.
여름 햇볕을 저장하다, 토마토소스의 무한 변신
다음 날 아침에는 토마토를 손질했다. 깨끗이 씻은 토마토의 꼭지를 떼고 십자 칼집을 낸 뒤, 뜨거운 물을 부었다. 껍질이 살짝 벌어지면 손으로 벗겨 냄비에 넣고 푹 끓인다. 토마토는 6월부터 8월까지가 제철이다. 초여름부터 한여름까지 햇볕을 충분히 받고 자란 토마토는 맛도 진하고 과즙도 풍부하다. 여기에 양파, 당근, 마늘을 넣고 뭉근하게 끓이면 물 한 방울 넣지 않아도 소스가 된다.

▲잘 익은 토마토로 토마토소스를 만들다 ⓒ 김선아
아이가 어릴 때는 양배추와 버섯도 잘게 넣었다. 채소를 잘 먹지 않는 아이에게 더 먹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끓이다 보면 토마토소스인지, 한때 유행한 마녀스프인지 경계가 흐려진다. 그래도 맛있다. 토마토만으로는 맛이 가벼워 토마토페이스트도 넣었다. 큰 냄비 가득 끓인 뒤 곱게 갈아두면 완성이다.
이 소스 하나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그대로 데워 치즈와 올리브유를 더하면 토마토스프가 되고, 차갑게 식혀 생채소를 올리면 냉스프 가스파초가 된다. 파프리카와 소시지, 버섯, 달걀을 넣으면 샥슈카 영어로는 에그인 헬이 되고, 피자 위에 바르면 피자소스가 된다. 고기를 넣으면 볼로네제, 크림을 더하면 로제소스가 된다. 냉동실에 나눠 담아두면 바쁜 날 한끼가 조금 쉬워진다. 그래서 토마토소스를 만들고 나면 늘 마음이 든든해진다. 냉동실에 담긴 소스 몇 통이 앞으로의 맛있는 메뉴를 책임져 줄 것 이기 때문이다.
붉은 고추 한 바구니, 매운 단맛이 되다
냉동실에 얼릴까 하다 고추청을 만들었다. 고추를 잘게 다져 동량의 설탕에 재우면 끝이다. 단맛이 꽤 세니 요리할 때 설탕 대신 넣으면 된다. 고춧가루에 더해주면 매운맛에 깊이가 생긴다.

▲고추청을 만드는 과정 ⓒ 김선아
이렇게 전날 사온 만원어치 채소로 반년은 먹을 저장식품 세 가지를 완성했다. 토마토소스는 냉동실로, 피클과 고추청은 냉장고로 들어갔다.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완성된 든든한 만원이 행복들 ⓒ 김선아
토마토소스를 만든 김에 피자도 구웠다. 도우 반죽할 기운은 없어 포카치아 반죽으로 대충 두 시간 발효해 폭신한 피자를 만들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하와이안 피자로 정해 잠봉, 양파, 파프리카, 파인애플, 치즈를 올리고 어른 쪽 절반에는 고추청을 살짝 발랐다. 아이가 먹으면 맵다고 울상을 지을까 집에 있는 루꼴라로 표시를 하고 오븐에 피자를 넣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나며 피자가 다 구워졌다. 고추청의 맛이 궁금해서 어른쪽 피자를 한입 먹으니 토마토소스에 달큰한 매운맛이 더해져 감칠맛이 났다. 매운 바비큐소스 같기도, 양념치킨소스 같기도 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피자와 피클을 내줬다. 연신 맛있다 하더니 고추청 바른 부분은 한 입 먹더니 콜라를 들이켜고는 접시를 슬그머니 밀어냈다. 아직도 맵찔이냐고 놀리며 우리는 깔깔 웃었다. 피클은 식초 맛이 강하다며 제법 진지하게 평가했다.

▲포카치아 피자 ⓒ 김선아
만원의 행복이다. 반년치 저장식품을 만들고, 그 소스로 피자까지 구웠다. 시장에서 만난 세일 채소들이 오늘 하루를, 아니 앞으로의 반년을 든든하게 만들어줬다. 내가 만들고 저장한 것은 어쩌면 채소가 아니라 앞으로의 식탁이다. 거기에 아이와 마주 앉아 피자를 먹고, 맵다며 웃고, 피클 맛을 평가하던 행복한 시간까지 함께 저장됐다.
[포카치아 하와이안 피자]
▶ 재료
포카치아 도우, 토마토소스, 양파, 파프리카, 햄, 파인애플 통조림, 치즈
▶ 만드는 법
① 포카치아 도우를 준비한다.
② 도우 위에 토마토소스를 넓게 펴 바르고, 다진 양파와 파프리카를 올린다.
③ 그 위에 치즈를 뿌린 뒤 햄과 파인애플을 올리고, 다시 치즈를 한 번 더 뿌린다.
④ 20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약 30분간 굽는다.
*도우만드는 법 :
김장 하고 남은 대파 냉동실에 넣지 마요
[오이피클]
▶ 재료
오이, 물, 설탕, 식초, 소금, 피클링스파이스, 통후추
▶ 만드는 법
① 오이는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② 냄비에 물,설탕,식초를 2:1:1 비율로 넣고 소금, 피클링스파이스, 통후추를 넣어 끓인다.
③ 뜨거운 피클물을 오이에 붓고 하룻밤 실온에 둔후 냉장 보관한다.
[토마토소스]
▶ 재료
토마토10개, 양파2개, 당근1개, 토마토페이스트 3T, 설탕 1/2T, 소금 1t, 후추, 바질가루
▶ 만드는 법
① 토마토는 깨끗이 씻어 꼭지를 떼고 십자 칼집을 낸 뒤, 뜨거운 물을 부어 껍질을 벗긴다.
② 토마토, 양파, 당근을 모두 썰어 냄비에 넣고 소금과 바질가루를 더한 뒤 뚜껑을 닫고 끓인다.
③ 재료가 뭉근하게 익으면 토마토페이스트를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④ 마지막에 후추와 설탕을 넣어 간을 맞춘다.
⑤ 식힌 뒤 소분해 냉동 보관한다.
[고추청]
▶ 재료
홍고추, 설탕
▶ 만드는 법
① 홍고추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한 뒤 잘게 다진다.
② 다진 홍고추와 설탕을 1:1 비율로 넣고 골고루 섞는다.
③ 소독한 병에 담아 냉장 보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 인스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