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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창간호 표지 차상찬이 참여한 『개벽』은 한국 최초의 종합월간잡지다.
『개벽』 창간호 표지차상찬이 참여한 『개벽』은 한국 최초의 종합월간잡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랫동안 책을 사 모았다. 주로 시사·역사·인문사회과학 계열이지만 지적 호기심에서 종교·예술분야도 포함되었다. 10여 년 전 한국출판인협회로부터 모범장서가상을 받기도 했다.

서가 한 면에는 잡지 창간호가 차지한다. 헤아려보니 200권이 넘는다. '창간호'에 관심을 갖게 된 지 오래이다. 간행되었다하면 구입하고, 때를 놓치거나 출간 사실을 몰랐다면 중고서점에서 매입했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시내 곳곳에 중고서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단골로 찾는 곳도 있었다. 낯 익은 주인이 모았다가 건네주기도 했다. 희귀본을 만날 때의 기분이란 최상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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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들은 글(文)의 나라답게 많은 책을 펴내고 한말에는<잡지>를 발간하였다. 귀한 글이 실린 책을 왜 '잡지'라 불렀는지 헤아리기 어렵지만, 잡지는 신문과 함께 각기 교양과 문화·시대정신을 담았다. 물론 '잡글'도 없지 않았다. '진글'이 더 많았다.

월간·격월간·주간 등 발행일자가 다르고 발행 주체도 개인, 회사, 동호인 등으로 다양하다. 이외에도 기업의 홍보지로 내는 경우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애국지사들은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잡지를 발행하고 극심한 탄압을 받았으며, 해방 후 독재정권 치하에서는 반독재 민주화의 매체 역할을 하였다.

잡지는 특히 1980년대 전성기를 이루었다.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으로 계승되는 폭압 정권에 맞서 비판과 저항의 횃불이 되었다. 잡지의 발행 조건이 어려워지자 부정기 간행물로 각종 <무크>지가 그 역할을 하였다.

신문과 방송이 미디어분야를 독점하고 있을 때 잡지는 2보단제를 넘어 새로운 영역을 개방하고, 정당한 언로(言路)가 막힌 사람·집단이 새로운 출구를 찾아낸 것이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4.19혁명과 6월항쟁 시기에 나온 잡지들을 보면 기존 언론들이 하지 못한 역할을 하였다. 6월항쟁과 촛불시위 당시 잡지와 무크의 활동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잡지는 출간하면서 창간호에 '창간사'를 싣는 것이 관행처럼 되었다. 잡지의 명칭에서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나지만, 창간사는 세상에 태어남을 알리는 출생신고서다. 이 고고지성을 통해 존재를 알리고 방향을 제시한다. 대체로 발행인이나 참여 주역이 집필한다.

내용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당대의 이슈와 시대정신을 담고, 잡지의 방향을 제시한다. 해서 문화사·전문성 등이 속깊게 담겨 독자들을 일깨운다.

여기서 취급하는 매체는 해방 이후에 발간한 잡지에 한정한다. 먼저 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주요잡지를 간략히 다루고, 해방 후 최근까지가 중심이다. 이 기간의 매체만 해도 헤아리기 어렵고, 현실적으로 입수가 어려운 잡지도 적지 않았다.

발간시기가 비슷해 잡지의 성격에 따라 선택하고자 한다. 유흥 잡지나 독재정권의 홍보지·기업의 선전지 등은 제외시켰다. 순서는 다소 진부한 간행연도 순을 따르지 않으려 한다. 해서 읽는 이들이 다소 긴장할 지 모른다.

해방 후 80여 년 간 발행된 잡지의 '창간사'를 통해 문화사와 시대정신을 살펴보자.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잡지 창간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잡지창간사#잡지#창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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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창간사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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