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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지를 담그려고 백오이 반 접을 1만 5000원 주고 샀다. 우리 집이 여름철에 먹을 분량이다.
오이지를 담그려고 백오이 반 접을 1만 5000원 주고 샀다. 우리 집이 여름철에 먹을 분량이다. ⓒ 이혁진

요즘 동네 시장에서 사고 싶은 채소들이 많다. 5월에 탐나는 제철 채소들이 욕심을 동하게 한다. 그중 오이에 자주 눈길이 갔다. 가격이 싸고 때깔도 좋다. 이참에 여름을 대비한 오이지를 담가보기로 했다. 아내도 얼마 전 오이지가 갑자기 먹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 전 시장에서 싱싱하고 튼실한 오이지용 백오이 반 접을 샀다. 50개들이 오이 반 접은 무거워 배달도 서비스해 준다. 배달원이 집에 가져온 오이는 하나같이 모양이 고르다. 일반 오이는 크기가 제각각인데 오이지용 오이는 거의 똑같다. 농부들의 반듯한 손길이 느껴진다.

 오이를 맑은 물에 담갔다가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한다.
오이를 맑은 물에 담갔다가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한다. ⓒ 이혁진

오이지 작업은 유튜브에서도 여럿 소개되고 있지만 핵심은 두 가지. '뉴슈가'와 '데침'에 있다. 먼저 맑은 물에 오이를 잠시 두었다가 깨끗이 씻어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린다. 오이지 소금물도 준비한다. 오이 반 접에는 생수 5L와 천일염 6컵이 정량이다. 여기에 설탕보다 수십 배 강력한 '뉴슈가'를 반드시 넣고 끓여야 한다. 이른바 오이지의 매력인 '단짠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작업이 오이를 데치는 것이다. 오이를 뜨거운 소금물에 20~30초 정도 살짝 익혀야 한다. 데치면 오이 색깔이 곱고 투명한 초록으로 변한다. 오이 반 접을 모두 데치는 데 10여 분이 걸렸다. 데친 오이를 끓이고 식힌 소금물에 다시 담가 숙성하면 맛있는 오이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오이 데침 작업, 뜨거운 소금물에 30초 정도 데치면 색깔이 투명하게 변한다.
오이 데침 작업, 뜨거운 소금물에 30초 정도 데치면 색깔이 투명하게 변한다. ⓒ 이혁진

담근 다음 날 살펴보니 '누름돌'이 오이를 아래로 밀어내면서 소금물에 절여진 오이지 주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이지가 노란 모양을 띄며 익어갈 것이다. 이런 상태로 일주일이 지나면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손수 오이지를 담가 먹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울 수 있다. 그러나 김치 담그는 노력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 재료 준비도 간단하고 '가성비'는 월등하다. 무엇보다 오이지는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오이지를 담근 다음 날 오이지가 소금에 절여진 모습, 누름돌이 오이를 누르고 있다.
오이지를 담근 다음 날 오이지가 소금에 절여진 모습, 누름돌이 오이를 누르고 있다. ⓒ 이혁진

얼음을 띄운 시원한 냉국은 기본이고 양념에 무쳐 먹어도 맛있다. 우리 집은 여름에 국 대용으로 '오이지 냉국'을 자주 올린다. 가끔 물 좋은 생오이를 무채처럼 썰어 '오이냉채'를 해 먹기도 하지만 오이지 냉국에 비할 바 아니다. '오이지무침'은 입맛이 떨어져 물 말아 밥 먹을 때 필수 밑반찬이다.

오이지 맛을 살려주는 어머니 '누름돌'

 오이지 담근지 일주일 오이지가 노란 형태를 띄었다. 시간이 갈수록 곰삭아 맛이 깊어질 것이다.
오이지 담근지 일주일 오이지가 노란 형태를 띄었다. 시간이 갈수록 곰삭아 맛이 깊어질 것이다. ⓒ 이혁진

나이 들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건강이다. 그중에서도 먹는 음식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같은 초여름에는 식욕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더워지면 무얼 먹을지 고민이 깊어지는데 오이지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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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랄 때 어머니는 여름이면 '오이지 냉국'을 자주 만들었다. 식초를 시원하게 뿌리고 통깨를 얹어주면 오이지 냉국은 맛도 모양도 그만이었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 특히 삼복더위에 오이지 냉국이면 행복했다.

어머니의 오이지 손맛에는 누름돌이 한몫했다. 어머니는 오이지를 만들 때 장독대에 보관 중인 둥근 돌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돌을 씻어 오이지에 올리면 보다 졸깃하고 아삭한 오이지를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누름돌을 장아찌와 메주를 담글 때도 두루 사용했다.

오이지에서 누름돌이 있는 것과 아닌 것의 식감 차이는 확연하다. 어머니에게 누름돌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손맛을 살려주는 비장의 무기였다. 이번 오이지를 담글 때도 어머니가 물려준 누름돌을 사용했다.

 오이지 한개를 양념해 무쳤다. 식감과 오이지향이 살아있다.
오이지 한개를 양념해 무쳤다. 식감과 오이지향이 살아있다. ⓒ 이혁진

어머니는 또한 오이지를 담그면 이를 이웃들과 조금씩 나누었다. 어린 마음에 오이지까지 품앗이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그게 당시 어른들의 여름 나는 정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어제 시험 삼아 오이지를 한 개 꺼내 들기름, 마늘, 파 다진 것에 고춧가루 조금 넣어 무쳤다. 역시 예상한 대로 식감과 오이지향이 살아있다. 어머니 손맛 그대로다. 올해 여름은 오이지 냉국으로 충분히 무더위를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오이지를 담그고 나니 여름에 대비한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아내도 내가 만든 오이지 맛을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면서 며칠 전 옥상에서 키운 상추를 갖다준 이웃에 오이지를 조금 건네자고 한다. 이 말은 오이지를 제대로 담갔다는 뜻도 있다. 나는 아내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백오이#오이지#오이지냉국#오이냉채#누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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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살림하는 남자’(은살남)

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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