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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28 14:51최종 업데이트 26.05.28 14:51

귀농 2년차, 이제야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기분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관련기사 : 밭일하다 졸리면? 여기로 들어가면 됩니다]

지난 26일, 남편 손님 두명이 우리 밭을 다녀갔다. 이제 귀농한 지 2년차, 이 넓은 고향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밭으로 찾아온 첫 손님들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왔다지만 30년 넘게 도시에서 살다 온 우리 부부에게 이곳은 아는 이 없는 낯선 타지나 다름없다.

처음부터 퇴직 후 정착지로 고향을 꿈꾼 건 아니었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키우고 길었던 직장 생활을 버텨내며 보낸 서울에서의 생활이 고향에서의 시간보다 훨씬 더 길었기에 이제 내게는 서울이 제2의 고향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고향으로 귀농을 반대한 건 사실 남편보다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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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토록 반대했던 이유는 고향이 내게는 그리움만을 주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닐 때 제 날짜에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이름 불리던 일, 수학여행 날 김밥 한 줄 대신 김치 반찬을 싸 도시락을 친구들 앞에서 감추고 싶었던 일 같은, 숨기고 싶고 아팠던 어린 시절이 고향 구석구석에 숨어 있어서다. 아무도 없는 서울에서 30년을 넘게 숱한 일들을 겪으며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때의 아린 기억들과 다시 마주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주위의 이목도 큰 고민이었다. 도시와 달리 한 다리 건너면 누구네 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아는 좁은 시골이라 건너 건너 소식이 빠르게 퍼진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퇴직할 나이도 아닌데 그만두고 농사를 짓는다고 내려왔다는 소식이 금방 퍼질 거라 걱정이 앞섰다. 나는 나름대로 35년 직장 생활을 잘 마치고 결정했는데 부모님을 아는 분들의 관심 어린 시선과 그 궁금함에 수군거림이 지레 겁났기 때문이다.

우리 밭을 방문한 손님은 남편의 새 직장 동료들이다. 도시에서 길었던 직장 생활을 끝내고 귀농을 했지만, 남편과 내가 하루 종일 매달려 농사를 지을 만큼 넓은 땅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아직은 일하고 싶어 하던 남편이 귀농 후 재취업에 성공했다. 치열했던 도시에서의 직장 생활이 몸에 밴 남편은 비교적 여유롭게 지금의 직장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도시에서 이른 아침 서두르던 출근길이, 지금은 아침 일찍 밭에 나가 잠깐 밭일을 하고 출근 준비를 해도 되는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 만난 새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는 동료 두 명이 우리 밭을 찾아온 날, 나는 참으로 기뻤다. 웃고 떠드는 남편을 보며 이제야 우리가 잘 정착하고 있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귀농을 준비하고, 결정하고, 실천에 옮기면서 알 듯 모를 듯 불안감, 두려움, 조급함에 늘 마음 한편을 졸이곤 했다.

'잘할 수 있겠지? 여기서 뿌리내리고 잘 살 수 있겠지?' 스스로 늘 의심하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동료들과 환하게 웃으며 떠드는 남편의 웃음소리가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무거운 돌덩이를 단번에 깨주었다. 어쩌면 이런 날을 그동안 기다려온 게 아닐까. 그동안 마음 졸이던 귀농 정착에 대한 부담을 한결 가볍게 해준 날이다.

올해 우리 밭의 작업환경은 지난해와 확연히 다르다. 지난해는 모든 게 처음이라 좌충우돌하느라 바빴다. 퇴직 이후의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오로지 밭 가꾸기와 귀농 정착하는 것에만 온 마음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두 번째 맞는 올해는 확실히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컨테어너 창 너머 밭풍경 귀농을 고단했던 마음을 안고 일군 밭, 창너머 밭 풍경이 내겐 큰 사치이자 위로다.
컨테어너 창 너머 밭풍경귀농을 고단했던 마음을 안고 일군 밭, 창너머 밭 풍경이 내겐 큰 사치이자 위로다. ⓒ 김희

특히 올해는 밭 한쪽에 우리가 잠시 숨 돌리며 낮잠 한숨 잘 수 있는 컨테이너 한 동을 설치했다. 지난해 밭에 나와 일을 하면서 휴식할 공간이 없어 힘들었는데 남편과 나는 우리를 위한 선물이라 치자며 큰 창까지 하나 더 내어 떡 하니 들여놨다.

지난해 같았으면 햇볕 아래에서 허리 한번 펴지 않고 흙만 파고 있었을 텐데 올해는 일하는 사이사이 한 번씩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와 잠시 쉼을 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특히 큰 창 너머 우리 밭을 가만히 내다보는 시간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큰 사치이자 위로다. 창문이라는 사각 틀에 담긴 밭의 풍경이 지난 2년간 남편과 내가 겪어온 감정 변화와 고단함을 싹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흙 묻은 장화를 벗어두고 창가에 앉아 밭을 가만히 바라보면 '내가 잘 적응하고 있구나' 해보지 않고 가졌던 불안감이, 두려움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걸 이제는 실감한다. 아는 이 없는 고향이 두려워 고민하고 고민하던 날들도, 주변 사람들의 관심 어린 시선에 미리 걱정하던 날들도, 창을 통해 일군 밭의 풍경이 보상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여기서 나는 남편과 함께 또 다른 희망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일찍 밭에서 커피한모금 이른아침 밭으로 나와 커피한모금이 꿀맛이다.
아침일찍 밭에서 커피한모금이른아침 밭으로 나와 커피한모금이 꿀맛이다. ⓒ 김희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귀농#완전한귀농#귀농걸리는시간#마음까지귀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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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noheene) 내방

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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