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두 번째 독서 모임에 선정된 도서는 이서수 작가의 소설집 <그래도 춤을 추세요>(2025년 8월 출간) 였다. 토론을 시작하자마자 지난번 김영하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 때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이런 분분한 의견조차 '독서클럽'의 오프닝 음악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 다만 지난번보다는 거부감의 온도가 미세하게 내려간 듯했다. 다들 조금씩 '불편한 책' 읽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독서클럽 두 번째 책, 이서수 작가의 소설집 <그래도 춤을 추세요>
독서클럽 두 번째 책, 이서수 작가의 소설집 <그래도 춤을 추세요> ⓒ 차유진

이번 책은 마치 KBS <드라마 스페셜>이나 tvN 'O'PENing' 같은 단막극 연작을 보는 듯했다. 흔들리는 청춘들, 위태로운 관계, 어딘가 고장 난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번갈아 등장한다. '춤'이라는 소재는 몇몇 에피소드에서만 직접 드러나지만, 책 제목이 품은 진짜 의미는 결국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도 살아내라는 것.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는 것. 그래도 자기만의 방식대로 몸을 흔들어보라는 것. ​

'불안'이라는 동반자를 대하는 방법

 참여했던 배우들 모두 공감했던 문구였다.
참여했던 배우들 모두 공감했던 문구였다. ⓒ 곽준이

각자 기억에 남는 문장을 열 개씩 적어오기로 했는데, 직업이 배우여서일까. 유독 서로의 마음에 겹쳐 든 문장이 있었다. ​​

AD
"춤은 테크닉이지. 근데 테크닉은 누군가 정해놓은 규칙이야. 우스꽝스럽게 움직이지 말라는 규칙. 그러니까 테크닉보다 진심이 더 중요해." - 59p, <춤은 영원하다>

배우 역시 늘 같은 고민을 한다. 매번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며 기술을 연마하지만, 무대와 화면 너머 끝내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건 결국 '진심'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테크닉보다 진심'이라는 말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늘하게 내려앉은 또 하나의 문장.

​"앞날을 예측하기가 어려울수록 불안과 우울감이 증가하는 법."- 230p, <미식생활>

배우라는 직업은 늘 미래를 알 수 없다. 다음 작품이 있을지, 이 일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지금 통과하고 있는 이 시간이 어디로 흘러갈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어느 정도의 불안과 우울을 동반한 채 살아간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내며, 저마다의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참여했던 배우들 모두 공감했던 문구였다.
참여했던 배우들 모두 공감했던 문구였다. ⓒ 곽준이

한 동료 배우(정다은)는 '분노도 활기'라는 문장 앞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우울 속에 가라앉아 무기력해지기보다 분노할 수 있다는 건 아직 무언가에 반응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남아 있다는 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면 '나를 정의하는 세 개의 명사'라는 질문 앞에서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들이 부정적인 것들이어서 자신이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같은 질문들을 너무 오래 미뤄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는 고백이었다.

선의와 자존심 사이, 그 미묘한 결

특히 <청춘 미수> 속 김아혜 선생과 미수의 관계를 두고는 자연스럽게 인물 해석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매달 300만 원을 주며 책을 읽어주고 산책을 함께하자는 재력가 노인의 제안은, 비현실적이고 의심스러워 읽는 내내 흥미와 걱정이 교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선생님의 진짜 속내가 밝혀진다. 홍제천에서 현실의 무게에 주저앉아 몇 번이고 서럽게 울던 미수를 보고, 일부러 할 일을 만들어주었다는 것. 그 장면에서 미수가 느꼈을 감정을 두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과연 감사함이었을까, 아니면 수치심이었을까."

대체로 배우들의 의견은 미수의 복잡다단한 감정 쪽으로 기울었다. 단순히 "좋은 귀인을 만났다"로 끝내기엔 인간의 자존심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선의가 때로는 따뜻한 구원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자존감을 건드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소설 속 미수 엄마의 말은 유독 여진이 길게 남는다. ​

"쉽게 돈을 벌면 나중에 다른 노동을 못하게 된다." - 278p, <청춘 미수> ​

미수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천만 원이라는 거금도 모았다.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시간을 보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수는 설명하기 힘든 배신감, 그리고 굴욕감과 마주해야 했다.

선생님에게 자신의 눈물이 그저 '돈으로 해결 가능한 슬픔'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이해한다고 말할수록, 이상하게 더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드는 순간들. 그 미묘하고 서글픈 감정의 그림자를 한동안 밟고 있었다. ​

배우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달라진 것

또 다른 배우(이연신)는 처음엔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아 작품과 인물들에게 거리감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다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책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만약 이 인물을 내가 맡아 연기한다면?" ​자신의 잣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했던 타인의 삶을, 배우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해하려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은 신기하게도 하나의 인물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과 꼭 닮아 있었다. ​

처음엔 낯설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찰한다. 어떻게든 이해하려 애쓴다. 그리고 결국 온전히 품어내고 만다. 배우에게 작품이 늘 읽기 쉽고 명확한 캐릭터만 건네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물은 끝내 이해되지 않고, 어떤 대사는 좀처럼 입에 붙지 않는다. 그럼에도 배우는 포기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읽고 또 읽어내야 한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사람을 향한 마음의 폭은 조금씩 넓어진다. 어쩌면 독서야말로 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본질적인 훈련인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로 함께 읽을 책은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로 정해졌다. '인문학 서적'이라는 말에 다들 살짝 긴장한 눈치다. 며칠이 지나고, 책이 난해해서 서두르지 않으면 다음 독서 모임 날까지 완독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기 시작했다.

왜 이 책을 골랐느냐고 선정자(허연주)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혼자 읽기 힘들어서 다 같이 읽고 싶었단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오케이! 같이 읽어줄게!" 잠깐의 침묵을 깨고 터져 나온 호쾌한 답변에 끈끈한 전우애가 피어올랐다. 책의 재미와 상관없이 끝까지 읽어내는 것, 그리고 그 약속을 함께 지켜내는 것, 독서클럽의 진짜 백미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결국 이번에도 마지막 페이지에서 만날 테니까.

독서 토론일 : 2026년 5월 14일
선정 도서 : 그래도 춤을 추세요
선정자 : 곽준이
참석자 : 차유진, 정다은, 최선한, 아인, 이연신, 허연주, 곽준이, 김도은

그래도 춤을 추세요

이서수 (지은이), 문학동네(2025)

이 책의 다른 기사

엄마는 왜 막춤을 추게 됐을까

#배우들끼리독서클럽#이서수#그래도춤을추세요#독서모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배우들끼리 독서클럽

차유진 (mayaok) 내방

직업은 배우이며, 끄적끄적 글쓰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